☆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16장. 어색한 만남]

권정선재 2016. 9. 12. 16:03

16. 어색한 만남

너 뭐야?”

뭐가?”

 

선재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재필을 바라봤다. 재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가장 안 쪽 자리에 엎드렸다.

 

시비 걸지 마라.”

시비가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거면 네가 접어.”

그런 거 아니야.”

 

재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무 초라한데 걔는 앞으로만 가는 거 같으니까. 우리는 어울리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만 앞으로 나갈 거니까.”

그런 걸로 헤어져?”

그런 거라니?”

미친.”

 

선재의 낮은 욕설에 재필은 인상을 찌푸렸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벽에 살짝 기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후회할 일 만들지 마라.”

뭐가 후회할 일인 건데?”

내가 너 우리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는데 정말 그렇게 그냥 헤어질 거야? 너 우리 없이도 정말 괜찮을 수가 있을 거 같아? 아니잖아. 우리 없으면 너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 아니야?”

개가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

뭐래?”

 

재필의 대답에 선재는 곧바로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재필은 순간 울리는 휴대전화를 보고 살짝 미간을 모았다. 선재는 그대로 재필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윤보미라는 이름에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이거 뭐냐?”

아는 동생이야.”

아는 동생?”

내놔.”

 

재필은 선재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서 가방에 넣었다.

 

남의 전화를 보고 뭐 하는 거야?”

너 바람 났냐?”

바람은 무슨.”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우리한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할 리가 없지. 네가 뭐가 잘나서 걔한테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해? 이모 이야기도 그냥 갑자기 나온 말이잖아.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려고.”

아니라고.”

 

재필은 선재를 사나운 눈으로 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얘는 우리랑 헤어진 거랑 아무 상관도 없는 애야.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아는 동생. 그런데 도대체 얘가 우리랑 내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야? 형 괜히 넘겨짚지 마. 그런 오해 불쾌하니까.”

네가 오해를 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

 

카페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자 재필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 뭐야? 정말 아니야?”

아니야. 그냥 아는 동생이야. 우리랑 헤어지고 만난 거고. 우리가 우리 엄마 만나기 싫다는 거에 괜히 기분이 그렇더라고. 앞으로도 얘가 엄마를 귀찮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싫더라.”

미친.”

 

선재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선재가 손님을 응대하러 간 사이 재필은 그대로 가게를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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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데려다 주셔도 돼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요.”

괜찮다니까요.”

 

우리의 거절에 정식은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살짝 입을 내밀었다. 그런 정식이 우리는 불편했다.

 

아니 오늘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사무실 사람들에게 했는데 왜 제가 팀장님 차를 타요?”

어차피 서우리 씨가 나랑 있어도 아무도 오해 안 하지 않습니까? 미친 개라고 불리는 사람하고 같이 가는데요.”

그래도 싫어요. 저 서점도 들려야 하고. 저녁도 먹고 들어갈 거라고요. 그러니 팀장님 혼자 가세요.”

위험합니다.”

뭐가 위험해요?”

 

우리가 단호히 대답하자 정식은 답이 궁해졌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먼저 성큼성큼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정식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랫입술을 물더니 그냥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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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여기 와도 되는 거죠?”

 

그럼.”

 

우리가 카페에 들리자 선재는 눈에 띄게 환영하며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았고 곧 선재가 우리가 늘 먹던 덮밥과 음료를 가져왔다.

 

오늘은 딴 거 먹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네가 언제 다른 메뉴 고른 적 있어? 늘 메뉴판만 엄청 보고 나를 옆에 세워두고 늘 같은 거 먹었지.”

. 그러네. 사실 여기 올까말까 되게 망설였어요. 수요일 저녁이면 꼭 오는 곳이기는 한데 늘 재필이랑 왔던 곳이니까. 재필이가 없이 혼자 오면 되게 이상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오늘 여기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여기에 오면 어떤 일이 생길 줄 알았나 봐요.”

미안하다.”

 

선재의 사과에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선재의 잘못이 아니었다. 관계를 더 꼭 붙잡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다.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붙잡지 않았다.

 

사실 저도 어느 정도 이별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냥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였어요.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니까.”

관계라는 거 어느 한 사람이 붙잡는다고 그냥 잡히는 게 아니잖아. 양쪽이 같이 잡아야 하는 거잖아. 너 혼자 잡는다고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재필이가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 한 거잖아. 맞지?”

 

우리는 고개를 들어 선재를 응시했다. 선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걔는 우리 너처럼 괜찮은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려고 그런 선택을 다 한 거냐?”

제가 뭐가 괜찮아요? 완전 이기적이고 그렇지. 진ᄍᆞ 싫다. 이런 말 오빠한테 하는 것도 너무 웃기고요.”

밥 먹어. 내가 있으니까 네가 괜히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나 가서 일 보고 있을게.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고.”

. 잘 먹을게요.”

 

우리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고 밥을 한 입 입에 넣었다. 익숙한 맛. 순간 뭔가 왈칵하고 올라왔다. 늘 같이 있던 곳. 같이 먹던 음식이었다. 그런데 혼자서 먹고 있었다.

 

서우리 왜 이러냐? 창피하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자꾸만 뭔가 위로 올라왔다. 자꾸만. 자꾸만 뭔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누군가가 우리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왜 울고 있습니까?”

팀장님?”

 

정식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런 정식을 밀어냈다.

 

이러지 마세요. 동정하지 마시라고요. 팀장님.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래요?”

서우리 씨는 내가 울고 있으면 위로하지 않을 겁니까?”

 

정식의 물음에 우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을 꺼내 우리에게 건넸다. 우리는 그의 손수건을 받아들다가 고개를 들어 선재를 찾았다. 다행히 선재는 주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가세요.”

왜요?”

아는 사람 가게란 말이에요.”

직장 상사라 있는 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남자잖아요.”

그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 긍정적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서우리 씨가 생각을 하기에 내가 그냥 직장 상사가 아니라 뭐 남자다. 대충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거든요.”

 

우리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노려보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꺠를 으쓱했다.

 

이제 눈물 안 흐르네요.”

? 그게. 정말이네요.”

 

정말 울음이 모두 멈췄다. 그렇게 서럽게 뭔가 치밀어 오르던 것이 사라졌다. 정식은 우리의 앞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여유롭게 손을 들었다. 선재가 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하는데 정말 선재가 나타났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이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거요.”

저희 가게는 다 맛있습니다.”

그럼 이 여성 분이 드시는 걸로 주시죠.”

 

선재는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살짝 내밀다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팀장님이세요. 뭐 숨길 일도 아니고. 제가 우는 거 보고 밖에서 들어오신 모양이에요. 참 오지랖도 넓으시죠?”

지금 오지랖이라고 했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재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우리는 미간을 모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뭐가 말입니까?”

여기 제 단골이에요. 다들 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요.”

뭐가 무섭습니까? 우리가 무슨 사이가 되는 겁니까? 우리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저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너무 예민하게 행동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선재의 말을 들으니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선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 이후로 어떤 대화를 내눈 것도 없었고 뭔가 진행이 된 것도 하나 없었으니까 그게 다였다.

 

그래도 좀 그렇다고요.”

뭐가 좀 그렇습니까?”

여기 되게 유명한 가게라 회사 동료들이 볼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무래도 저는 좀 그렇다고요.”

그렇게 유명한 가게니까 만날 수도 있는 거겠죠. 우리 지난번에 극장에서 만난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정식의 말이 맞았다. 지난번에 만나서 같이 영화도 보고, 놀이터에 가서 음식도 나눠 먹었던 사이였다. 이상할 거 하나 없었다.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합석하게 해줘서.”

 

정식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그를 살짝 노려봤다. 정식은 살짝 입을 내밀었다.

 

그런데 서우리 씨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아닙니까?”

?”

그래도 내가 상사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정식의 말에 우리가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서우리 씨가 나를 그렇게 편하게 생각해주는 거, 나 되게 고마워요. 거리 두지 않고 그래주니까. 그래서 회사 사람들하고 지내는 것도 조금 더 편해지는 거 같고요.”

불편하세요?”

직원들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죠. 37이나 먹고. 결혼도 안 하고. 성격도 까칠하고. 게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 . 어우. , .”

 

우리가 사례가 걸려 기침을 하자 정식은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는 급하게 물을 마시고 그를 노려봤다.

 

뭐예요? 정말.”

너 뭐냐?”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재필이 웬 여자랑 같이 서있었다. 재필은 그대로 정식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뭐야?”

너 뭐하는 거야?”

 

우리는 재빨리 재필이 정식을 놓게 만들었다. 소란에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꺼내들었고 선재가 재빨리 주방에서 나왔다.

 

임재필 너 뭐하는 거야?”

너 우리 형 가게에서 연애하냐?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너도 여자랑 왔으면서 뭐라는 거야?”

 

우리의 말에 재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가방을 챙겨들었다. 여기에서 더 있을 수 없었다.

 

나가. 나가서 이야기해.”

이거 놔.”

나가서 이야기 하자고!”

 

우리는 억지로 재필을 끌고 나갔다. 정식은 어깨를 으쓱하고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