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21장. 다시 보기]

권정선재 2016. 9. 22. 06:59

21. 다시 보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정식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정식처럼 좋은 조건의 남자는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고백을 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우습나?”

 

그런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 잘 해주는 거. 고마운 일이었다. 정말 그의 말처럼 더 이상 그녀가 연인이 아니기에 이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상했다. 낯설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우리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다 정식의 고백을 떠올리고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미쳤어.”

 

심장도 요란스럽게 뛰었다. 마치 처음 재필과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거짓말처럼 온 몸이 차갑게 굳었다.

 

미쳤나봐.”

 

우리는 심호흡르 하고 거울을 바라봤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정식과 만나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또 이상한 말들을 옮길 거였다. 공연히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너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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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리 씨.”

 

아침에 편의점에 가기 위해서 나서던 우리는 곧바로 다시 문을 닫고 집에 들어왔다. 심장이 미친 듯 요동쳤다.

 

도대체 일요일인데 저기에 왜 있어?”

너 나간다며?”

아니.”

 

은화의 물음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안 가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냥 집에 있으려고. 집에. 괜히 일요일에 나가서 군것질 사와서 뭐해.”

그럼 옆집 좀 다녀와.”

. 배가. 엄마 나 신호가.”

서우리.”

 

우리는 황당해하는 은화를 뒤로 한 채 화장실로 도망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재빠르게 사라졌다. 은화는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도대체 왜 이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애처럼. 설마. 쟤 조실 언니네 아들한테 무슨 실수했나?”

 

은화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고 이내 관심이 없다는 듯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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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도대체 뭐냐고?”

 

아무런 생각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백을 듣고 난 이후로 자꾸만 정식이 다르게 보였다. 심장이 뛰었다. 아직 그러면 안 되는 시간인데. 헤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래. 서우리 정신 차려. 팀장님이 뭐 고백 한 번 한 거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 건 없잖아.”

 

순간 머릿속으로 정식이 하던 고백이 떠올랐다. 그 낮은 음성.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아주 오래 전에 잊은 감정. 익숙함만 느끼기에 몰랐던 감정. 설렘. 그게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우리. 너 진짜 미친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팀장님은 아니야. 아니라고.”

 

우리는 베개에 얼굴읆 묻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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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겁니까?”

고집이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서우리 씨.”

내릴게요.”

 

갓길에 차를 세우라는 우리의 단호한 태도에 정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마 그의 고백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제 그 고백이 처음도 아니고.”

저는 그런 거 불편해요.”

 

우리의 단호한 대답에 정식은 뭔가에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봤지만 우리의 표정은 덤덤했다.

 

저희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팀장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해서 제가 이런 거 누리는 거. 되게 이기적인 거잖아요. 팀장님이 이상한 생각을 하실 수도 있고. 저는 그런 거 싫어요.”

하지만.”

내려주세요.”

 

우리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하자 정식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식은 차를 지하철역에 댔다. 우리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차에서 내렸다. 정식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차를 움직였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게 옳았다. 자신과 엮이게 되면 공연히 정식에게도 이상한 말들만 나오게 될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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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뭐가?”

오늘 팀장 아직 안 와서.”

?”

 

아까 차를 끌고 갔으면 분명히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어야 했다. 그리고 정식은 늘 출근 시간보다 한참 빨리 오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전화를 걸려다가 우리는 멈칫했다. 소망이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너 왜 그래?”

뭐가?”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 기연이 예쁘더라. 드레스. 확실히 여자는 드레스가 잘 어울려.”

그렇지.”

 

소망은 입을 내밀고 눈까지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어릴 적부터 꿈꾸는 드레스 있어? 내 꿈의 드레스는 말이야. 가슴은 그렇게 깊이 파이지 않았지만 가슴 선은 딱 드러나고.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그렇게 부풀리지 않고. 뒤는 짧게. 가다가 밟는 것 웃기니까. 그렇게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레이스는 좀 있었으면 좋겠어. 어깨는 살짝 드러나고. 아 결혼하고 싶다.”

남친몬한테 물어보지?”

뭐래?”

 

소망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밀려주면 절대로 주도권 못 가져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도 몰라? 남자는 처음부터 기를 탁 잡아놔야 하는 거라고. 안 그러면 나중이 괴롭다니까.”

. 그러세요.”

왜 웃으세요?”

대단하셔서요.”

 

우리의 대답에 소망은 입을 쭉 내밀었다. 순간 정식이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그가 묘하게 절뚝였다.

 

팀장님.”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식은 그녀를 잠시 보더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한 번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팀장 뭐야?”

그러게.”

다쳤나?”

그러게.”

 

우리는 자꾸만 걱정이 되어서 시선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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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에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니긴요.”

 

우리는 바깥의 눈치를 보면서 미간을 모았다. 정식은 그런 우리를 보며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하는 겁니까?”

당연하죠.”

기분이 좋네요.”

팀장님.”

 

정식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우리는 미간을 모았다. 그런 우리의 태도에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굽니까?”

무슨 일인데요?”

말하면 되게 미안해 할 텐데?”

?”

 

서우리 씨 내려다주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받더라고요. .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허리를 어디 다친 모양입니다. 걸음을 내딛으면 온 몸이 비명을 지르네요.”

도대체 왜?”

 

우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정식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아파요.”

나빠요.”

뭐가요?”

도대체 왜 나쁜 사람을 만들어요?”

서우리 씨.”

병원에서는 뭐래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별 이상이 없다고. 그냥 놀란 모양입니다. 병원에서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냥 놀란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서우리 씨도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정식은 조심스럽게 우리를 품에 안았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뒤로 물러난 채로 원망스러운 눈으로 정식을 노려봤다.

 

정말 크게 다친 거 아니죠?”

정말 크게 다친 거 아닙니다.”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정식은 입을 살짝 내밀며 미소를 짓다가 가슴을 손으로 문질렀다.

 

차에 박은 거보다 더 아파.”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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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났어?”

?”

눈물이.”

? 아니야.”

 

소망의 말에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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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어요?”

그 정도 아닙니다.”

 

우리가 부축을 하려고 하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우리가 물러서자 살짝 입을 내밀었다.

 

그렇다고 부축 안 할 건 없고.”

괜찮다면서요?”

그래도 아픈데?”

 

정식이 미간을 찌푸리자 우리는 속은 셈 치고 그의 옆에 섰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안 미안해하고 있어요.”

거짓말.”

 

정식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거 알죠? 사람이 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사람 미안하게나 하고 마음에 안 들어.”

미안합니다.”

아프지 마요.”

 

우리가 지나가듯 하는 이야기에 정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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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안 다치고?”

? . 나는 지하철역에 내렸지.”

그래 다행이다.”

 

은화의 말에 묘한 기분이 드는 우리였다. 은화는 정식이 자신을 태워다주느라 그랬다는 걸 몰라서 그랬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니. 뭔가 아팠다.

 

나는 좀 잘게.”

그래. 들어가 쉬어.”

 

우리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두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창가에 섰다. 정식의 집도 어두웠다.

 

팀장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리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재필이었다. 수신 거부를 하고 돌아보는데 창가에 정식이 있었다.

 

, 팀장님?”

 

정식은 입에 검지를 가져가고 씩 웃었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저아이 아요. 걱정하지 마요?

 

걱정하지 말라고요?”

 

우리의 물음에 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정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정식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팀장님 안녕히 주무세요.”

 

서우리 씨도요.

 

우리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정식의 배려에 우리는 해복했다. 그에게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정식에게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고 커튼을 닫았다. 곧 정식도 커튼을 닫았다. 우리는 묘한 설렘에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