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19장. 12년짜리 구멍]

권정선재 2016. 9. 20. 13:10

19. 12년짜리 구멍

. 알람 좀 꺼.”

 

알람 소리에 우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재필은 알람을 끄지 않았다.

 

. 임재필. 알람 끄라고.”

 

우리는 짜증을 잔뜩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자기 방에 있다는 사실에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미쳤네. 서우리.”

 

우리는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짓고 알람을 끈 후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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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정식의 차에 올랐다. 이게 익숙해진다는 게 그랬지만 정식의 어머니까지 타라고 성화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입니다.”

아니에요.”

 

우리의 묘하게 낮은 목소리에 정식은 미간을 모았지만 더 이상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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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너 뭐야?”

. 염소망.”

 

지하 주차장에서 소망을 만난 우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식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리의 뒤를 따랐다.

 

서우리 씨가 지하철 입구에 있더군요. 아무리 내가 냉혈한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해야죠.”

? 아니 그게 아니라.”

 

소망이 무슨 변명도 하기 전에 정식은 먼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소망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숙였다.

 

망했다.”

팀장님 그런 분 아니셔.”

?”

아니야. 우리도 얼른 가자.”

 

소망의 표정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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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네.”

 

우리는 갑자기 전화가 울리는 것 같아서 액정을 확인했다가 이내 아쉬워하며 다시 내려놓았다. 옆 자리에서 우리를 보던 소망이 입을 내밀며 살짝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다 미간을 모았다.

 

후유증이네.”

?”

 

소망의 말에 우리는 멍해졌다.

 

무슨 후유증?”

이별 후유증.”

뭐래?”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일 리가 없었다. 소망은 가볍게 으쓱하고 다시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이별 후유증이라고?

 

알 수 없는 텅 빈 감정.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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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

 

우리의 반응에 정식은 미간을 살짝 모았다.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무슨 말씀 하셨나요?”

아닙니다.”

 

정식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핸들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긁적였다.

 

때로는 고민 같은 거 그냥 이야기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고민이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고민 같은 거 없어요.”

거짓말.”

?”

됐습니다.”

 

정식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살짝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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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이랑 친하게 지내 봐.”

뭐래.”

 

은화의 말에 우리는 입을 내밀며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 나 재필이랑 헤어진지 얼마 안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 집 사정 다 아는 사람인데 내가 뭐 여자로 보이기나 하겠어? 그리고 나도 하나 마음에 안 드니까 괜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사람이 참 괜찮지 않아?”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은화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엄마는 저렇게 멀쩡한 사람이랑 네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를 잘 챙겨주고. 그게 좋지.”

재필이도 멀쩡했어.”

누가 뭐라니?”

지금 엄마가 뭐라고 하고 있는 거잖아.”

너 왜 생사람을 잡고 그래?”

 

은화가 날선 반응을 보이자 우리는 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은화는 곧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미간을 모았다.

 

괜찮은 거지?”

뭐가요?”

.”

괜찮아요.”

 

우리는 일부러 씩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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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무슨 일이야?”

아니.”

 

악몽이었다. 그리고 옆을 만져서 아무도 없어서 비명을 질렀다. 우리의 비명에 은화가 놀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괜찮아?”

. 괜찮아요.”

아우. 땀 좀 봐.”

 

은화는 우리의 이마의 식은 땀을 닦으며 혀를 끌끌 찼다.

 

요즘 안 좋은 일이 자꾸만 있더니 그런 모양이다. 엄마가 내일 가서 한약이라도 좀 지어야 겠어.”

뭐래.”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행동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불쾌한 기분이 들 따름이었다.

 

가서 주무세요.”

엄마랑 같이 잘까?”

아니요.”

 

은화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은화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미련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엄마 탓이다.”

엄마가 뭐?”

아빠를 잘 해주지 못해서.”

왜 자꾸 그러 말을 하고 그래. 나 정말로 괜찮아요. 그냥 무서운 꿈을 꾼 거야. 그게 전부에요.”

그래. 그럼 자고. 무슨 일 있으면 엄마 불러.”

. 주무세요.”

 

은화는 마지막까지 시선을 둔 채로 우리의 방을 나섰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슬픔이 그녀를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무릎에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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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안 좋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얼굴에 손을 가져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식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오늘 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정식의 제안에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팔이 다치고 쉬지도 않고.”

어차피 왼쪽이에요. 그리고 손가락을 쓰는 데는 무리도 없고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너무 괜찮은 척 하는 거 아닙니까?”

 

정식의 말은 그대로 우리에게 꽂혔다.

 

사람은 늘 괜찮을 수는 없습니다. 괜찮지 않을 때는 그냥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겁니다. 이해하고 있습니까?”

.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러니까요.”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정식의 말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신이 괜찮은 척 하지 않으면 엄마가 더 힘들 거였다. 엄마를 위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행동하는 게 옳았다.

 

고작 이별이에요.”

그리고 시간이 사라졌죠.”

?”

그 긴 시간을 함께 공유하던 존재가 사라진 겁니다. 그렇게 간단한 이별이 아니라는 거 나도 이해합니다.”

팀장님.”

 

정식은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크게 숨을 쉬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웃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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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야?”

.”

잊고 있었지?”

.”

 

소망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다 입을 내밀었다.

 

가야 하나?”

걔도 그런데 되게 웃기지 않니? 우리랑 뭐 얼마나 친했다고 우리 너한테 청첩장을 다 주고 그래?”

그러게. 그나저나 염소망. 너 기억력도 좋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었어?”

내가 놀러가자고 했는데 네가 결혼식이라 못 간다고 했잖아. 그래서 기억하고 있어. 후쿠오카는 우리 자기랑 단 둘이 가야지.”

뭐래.”

 

우리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달력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가기 싫은데, 가는 거 되게 이상할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직접 만나서 청첩장까지 받았는데 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냥 카톡으로 받았으면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하긴.”

아 싫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그냥 이것저것?”

 

소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괜히 분위기가 진지해진 것 같아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웃기지.”

뭐가 웃겨?”

우리도 이제 스물아홉인데. 이런 거 가지고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이상한 거잖아. 여중생도 아니고 말이야.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네 기분까지 망치고 그러는 것 같아서 그렇다.”

나 네 친구 아니야?”

?”

 

소망의 말에 우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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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우리는 멍하니 걸음을 걷다 재필의 집 앞에 와서 멈춰 섰다.

 

미쳤어. 서우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머리로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싫다.”

 

부끄러웠다. 이런 게.

 

서우리. 정신 좀 차리자.”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멈췄다. 재필이 지난 번에 그 여자와 있었다.

 

우리야.”

임재필.”

 

재필은 머뭇거렸다. 우리는 그런 두 사람을 보더니 그대로 옆으로 비켜나서 도망이라도 치듯이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