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20장. 마주하기]

권정선재 2016. 9. 21. 09:50

20. 마주하기

바보.”

 

집에 와서 우리는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바보야.”

 

도대체 거기에서 왜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피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재필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냥 당당하게 마주해도 되는 거였는데 너무나도 한심하고 멍청했다.

 

서우리 멍청이.”

 

우리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왕왕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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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멍해?”

? 아니야.”

 

선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재필을 노려봤다.

 

또 이상한 생각이나 하는 거 아니지?”

형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재필이 뚱한 표정을 짓자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필은 그런 선재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간다.‘

밥 먹는다며?”

됐습니다.”

?”

어차피 형은 내 편도 아니잖아. 같은 가족 편도 안 드는 사람이 주는 밥 먹고 싶은 생각 하나도 없습니다.”

유치한 놈.”

 

선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재필은 그대로 가게를 나섰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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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빠 합의했어.”

정말?”

. 재산은 이 집 하나. 나머지 재산은 엄마가 하나도 달라고 하지 않았더니 바로 좋다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엄마는 평생 그저 주부로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 거였다. 자신이 번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빠듯할 텐데. 자신이 괜히 나서서 이런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뭐라는 거야? 그리고 엄마 일하기로 했어.”

?”

저기 편의점 있지. 거기에 낮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거기 낮 시간 하기로 했어.”

하지만.”

 

편의점 근무라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에 말려야 했지만 쉽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죄송해요.”

우리 딸이 뭐가 죄송해?”

내가 돈을 조금 더 잘 벌었으면 그런 문제가 안 생기는 건데. 엄마 그 동안 고생한 거 보상도 못 받고.”

그런 말 하지 마.”

 

우리가 입을 열려고 하자 은화는 우리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엄마는 정말 괜찮아. 오히려 여태 그런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게 더 우스운 거지 안 그래?”

하지만.”

 

정말로 괜찮다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네 일에만 신경 써. 자식이 부모 걱정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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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데 어디 갑니까? 병원에 갑니까?”

. 팀장님.”

 

우리는 순간 입을 막았다. 다행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우리의 반응에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니요. 어디 가세요?”

시내 나가려고요. 타요.”

아니요.”

 

우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출근 때 정식의 차를 얻어 타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그냥 나가는 것까지 타는 것은 무리였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어차피 나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내가 서우리 씨 좋아한다고 해서 피하는 겁니까?”

팀장님.”

 

우리가 당황하자 정식은 더욱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크게 심호흡하고 정식의 차에 올랐다. 그런 우리를 보며 정식은 한쪽 볼을 부풀리며 살짝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겁니까?”

뭐가요?”

내 차에 타는 거 말입니다.”

. 그런 게 아니라.”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뭐야. 이러면 내가 더 불편하잖아.

 

우리는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살짝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정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디에 갑니까?”

결혼식이요.”

하긴 이제 결혼식이 막 있을 시즌이군요. 식장에 데려다 줄게요.”

아니요.”

 

우리는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그냥 가까운 지하철 역이면 충분했다.

 

예민하기는.”

제가 죄송해서 그렇죠. 팀장님을 자꾸만 셔틀처럼 쓰는 거 같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정식은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그 손을 본 정식은 살짝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그렇게 부담스럽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정식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서우리 씨가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바로 가겠다는 거 아닙니다. 서우리 씨에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을 정리할 만큼 말이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거나 나를 밀어내기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섣부르게 다가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이웃이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서우리 씨의 어머니께서 반찬을 워낙 자주 해주시니까요. 그거 은혜 갚는 거라고 생각을 해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혼자서 적적하신데 말동무도 되어주시고요. 그걸로도 나는 서우리 씨에게 갚아야 할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정식의 말에 마땅히 대답을 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정식은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맞죠?”

그런 거 같기는 한데.”

그런 거 같으면 그냥 합시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럭다 이내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르 지으며 정식을 바라봤다.

 

늦으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어디에 가는 줄 알고요?”

? 그건.”

 

뭐야? 이 사람.

 

내가 어디에 가는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서우리 씨 데려다 주고 가도 되는 곳이고. 늦어도 되는 곳입니다. 친구 녀석 재혼하는 곳에 가는 거거든요. . 한 번 축의금 냈는데 또 내기도 귀찮고요.”

, 그럼 팀장님도 결혼식장 가시는 거예요?”

. 서우리 씨는 어디에 갑니까? 데려다 주고 가도 될 거 같은데.”

그럼.”

 

우리는 가방에 손을 넣어 청첩장을 꺼냈다. 정식은 우리가 꺼낸 청첩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정식에 우리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나도 거기에 가거든요.”

그럼?”

아닙니다.”

 

우리의 표정을 보고 정식은 고개를 저었다.

 

제 친구 놈 이름은 그 이름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같으니 식사는 같이 할 수 있겠네요.”

? .”

 

하긴 식장에 가도 아는 사람은 제대로 없을 거였다. 동창회 같은 곳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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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왜 이렇게 조용해?”

.”

 

우리의 질문에 기연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 미소를 지은 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드레스 너무 예쁘다.”

그렇지?”

 

기연의 자랑스러운 표정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 묘한 기분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도 결혼하고 싶지?”

?”

 

드레스 입은 거 보고 하고 싶었는데 이게 쉬운 게 아니더라.”

 

기연은 드레스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좋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 가족의 문제. 뭐 여러 가지. 특히나 정말 믿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 편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배신감 같은 거 엄청나더라고. 남편 될 사람도 그러고.”

그래?”

아우. 내가 왜 이러지?”

 

기연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도 그런 기연을 향해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애인은 있어?”

? 아니.”

그래. 천천히 해라. 백세 시대를 넘어서서 백이십 세 시대라는데 벌써 만나서 뭐 하겠니? 지겹기나 하지.”

뭐래? 그게 지금 신부가 할 말이야?”

그런가?”

 

기연은 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리는 기연의 손을 꼭 잡아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아.”

고마워.”

네가 못 살아서 아니야. 다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못 온 거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도 말고.”

고마워. . 울리지 마.”

 

기연은 눈 밑을 찍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기연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기연에게 뭐라고 한 게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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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안 봐요?”

. 한 번 봤으니까요.”

 

정식은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며 미간을 모았다.

 

그러다 오해를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직장 동료를 낯선 식장에서 만났는데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내 머리로는 그런데?”

그건.”

 

정식의 말에 우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서우리 씨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냥 있으면 되는 거예요. 아무도 우리 집중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우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랑도 정말 멋졌다.

 

두 사람 행복해 보여요.”

그러게요. 저도 곧 결혼을 할 줄 알았는데.”

하면 되죠.”

남자가 없잖아요.”

여기 있잖아요.”

 

정식의 말에 우리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걸 느꼈다. 정식에게도 들릴 것 같아서 우리는 몸을 살짝 옆으로 피했다. 정식은 혀로 입술을 적시며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피할 게 있나?”

그러니까.”

 

좋아합니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 정식은 고백했다. 우리는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마구 터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