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사랑하는 중입니다.
“너 오늘 갈 거야?”
“그래도 가야지.”
“너도 속 참 좋다.”
화장을 고치며 소망은 입을 내밀었다.
“너한테 한 거 그거 성희롱이야. 그래서 잘려야 하는 사람 그냥 다른 지사로 가게 되는 거. 뭐가 좋다고 그거 회시게 나가려고 하냐? 그냥 가지 마. 가봤자 네가 뭐 좋은 소리 들을 거라고.”
“그래도.”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괜히 자신이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한 분위기가 될 거였다.
“그러고 나서 사과 했잖아.”
“그 마지 못해서 하는 사과?”
“그것도 사과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니?”
“그러게.”
“뭐가 자꾸 그러게야.”
소망은 자기가 더 속상해서 입을 쭉 내밀었다.
“야. 솔직하게 말하면 다른 지사로 가야 하는 사람이 아니지. 당장 경찰서에 신고를 해서 콩밥을 먹여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쉽게 나오니까 다른 남자들이 안 변 하는 거라고.”
“그런가?”
소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는 거울을 한 번 더 본 채로 이리저리 목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만일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겠지만 이미 간다는 사람한테 긁어 부스럼을 내서 뭐 하려고?”
“너 그러다가 당한다?”
“당할 게 뭐가 있어?”
“권 대리 성격 알잖아.”
소망은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남자가 쪼잔 하기가 이를 데가 없잖아. 자기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너에게도 할 걸?”
“그런가?”
“그런 대수롭지 않은 태도 아주 나빠.”
소망은 마지막을 입술을 고치며 우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은 미소를 지었다.
“사랑은 뭐든 다 이깁니다.”
“권 대리는 아닙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멀리 정식이 보였다. 정식은 가볍게 손짓을 했다. 우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뭔가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순간 울리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정식이었다.
“나 음료수 좀 사갈게.”
“같이 갈래?”
“아니.”
우리가 너무 곧바로 대답하니 묘한 표정을 짓던 소망은 이내 덤덤한 채로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는 소망의 뒤를 살피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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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러면 안 되잖아요?”
“업무 이야기 하려고 부른 겁니다.”
“아.”
우리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자 정식은 웃음을 터뜨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네? 뭐가요?”
“회사에서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일 해요. 일.”
“일 하자는 사람 표정이 아닌데?”
정식이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그를 노려봤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다가 이내 미간을 모았다.
“오늘 회삭 갈 겁니까?”
“가야죠.”
“가지 말죠.”
“네? 왜요?”
도대체 왜 다들 이러는 거야?
“권 대리 성격 알지 않습니까? 아마 서우리 씨에게 또 시비를 걸려고 할 지도 모릅니다. 그거 안 되잖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괜히 저 때문에 팀장님만 구설수에 오르시고. 오히려 제가 가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해야죠.”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정식의 말은 그대로 우리의 마음에 울렸다.
“사람이 늘 괜찮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마워요.”
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너무 고마웠다. 자기는 늘 괜찮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괜찮지 않아도 괜찮죠?”
“물론입니다.”
“그럼 팀장님이 같이 있어주면 되겠다. 나 아직은 그런 자리까지 피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거 해줄 수 있죠?”
“서우리 씨.”
정식은 그런 우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한숨을 토해내다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고맙습니다.”
“좋아합니다.”
정식의 고백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는,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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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팀장님 달라지셨습니다.”
권 대리의 말에 정식은 고개를 들었다. 권 대리는 회사를 그만 두는 날까지 문제를 일으키려는 모양이었다. 그의 능글맞은 어조에 정식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다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전에는 이런 자리도 안 나오고. 세상 혼자 사시는 분 아니셨습니까? 이제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우리는 권 대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정식의 편을 들 수도 없었다. 그것도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게 만들 거였다. 그다지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불편했다.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그 동안 팀원들이 그렇게 팀장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는데 한 번을 안 나오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되게 이상하다.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팀장님 성격이 이상하신 건 팀장님도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닌가요?”
“제 성격이요?”
정식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대답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다른 팀원들도 그저 눈치만 살폈다.
“완전 까칠. 아니지. 그 정도로 설명을 할 수가 없잖아요.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되게 무심하시지 않습니까?”
“권 대리님 취하셨네.”
우리가 재빨리 권 대리를 말리려고 하자 권 대리는 그녀를 사나운 눈으로 바라보며 밀어냈다.
“서우리 씨 나한테 치근덕대는 거야?”
“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회사에 소문이 자자해.”
“소문이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우리는 팀원들을 살폈다. 그리고 소망을 봤지만 소망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 대리는 싸늘하게 웃었다.
“정말 모르는 척 하는 거야?”
“권 대리 그만 하시죠.”
정식의 말에 권 대리는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붙어먹는 편을 드시는 겁니까?”
“권 대리님.”
우리는 재빨리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권 대리는 모든 말을 한 이후였다. 회식의 분위기는 싸해졌다.
“회사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서우리 씨가 팀장님하고 붙어먹어서 그렇게 일도 잘 하고 그런다는 소문. 아니 일개 사원이 맡을 수 없는 서류 정리 같은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게 다 같이 자서 그런 거지. 그런데 나는 잘 수가 없잖아. 나는 뭐 팀장님한테 딸랑이를 열심히 흔들어도 다리 벌려준 년 하나 하는 것처럼 해줄 수가 없으니. 이게 억울해서 살겠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소망을 제외한 팀원들은 그녀의 눈치를 피한 채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아마 소망은 모르지만 다른 팀원들에게는 대충 어느 정도 전해진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무슨 소문이 돈다는 겁니까?”
정식은 상황을 가만히 보다 입을 열었다. 정식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권 대리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정식을 바라봤다.
“이미 팀원들 다 알아요?”
“뭘 다 안 다는 겁니까?”
“그만 하시죠.”
“그래요. 권 대리.”
다른 팀원들까지 말리려고 하자 권 대리는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도대체 다들 왜 이럽니까? 아 나 빼고는 다 이 팀에 남아야 되니까. 그래요. 내가 총대 맬게요.”
권 대리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팀장님 서우리 씨랑 무슨 사이입니까?”
“뭐라고요?”
“시치미 떼시려고요?”
정식의 반응에 권 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검지를 흔들었다.
“아니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들어갈 때 같이 퇴근하고. 그 모습을 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지금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거 목격한 사람들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고요. 모르십니까?”
“그게 권 대리랑 무슨 상관입니까?”
“에이. 왜 상관이 없습니까?”
권 대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서우리 씨가 팀장님하고 자니까 그렇게 요즘 업무량이 늘어나고 그런 거 아닙니까? 다 보인다고요?”
“그게 그래서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럼 아니에요?”
“네.”
정식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권 대리가 일을 너무 못 하더라고요.”
정식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 권 대리는 미간을 모았다.
“뭐라고요?”
“아니 자기가 자기 일하는 거 보면 알지 않습니까? 내가 그냥 사원보다 되게 못 하는 구나. 나는 이 회사에 아무런 필요도 없는 쓰레기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정말 모르겠습니까? 권 대리 업무 효율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 동안 잘라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서우리 씨와 염소망 씨가 그 일을 대신 잘 커버해줘서 그 동안 버텼다는 생각 하지 않습니까?”
“팀장님이 이 여자 일에 나서지 않았으면 저는 지사로 발령나지 않았습니다. 지방 발령이라뇨!”
“팀내 여성 동료를 성추행 하는데 고작 지방 발령 정도로 끝이 나는 게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식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권 대리는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그러시는 거 아니죠.”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지금 딱 보니 서우리 씨 편이나 들고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 도대체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서우리 씨랑 연애하시잖아요. 두 분 무슨 사이에요? 그래. 서우리 씨. 서우리 씨가 대답을 해봐.”
“그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정식과 소망이 말릴 때 오지 않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당황하면서 정식을 보자 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러는 거야?
“우리 사귑니다.”
정식의 폭탄 발언에 곧바로 침묵이 흘러나왔다. 권 대리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 뭐라고요?”
“나랑 서우리 씨 사귄다고요. 그리고 권 대리가 그나마 지방 발령으로 끝이 나는 거 다 서우리 씨 덕분입니다. 서우리 씨가 아니었다면 진작 잘렸을 겁니다. 아니 내가 잘랐을 겁니다. 나는 내 팀원 건드리는 사람이 싫거든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소망의 놀란 표정.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서우리 씨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식은 차가운 눈으로 권 대리를 노려봤다. 권 대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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