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고독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정식은 맥주를 비운 후 팀원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권 대리는 주춤하면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팀장님 같은 분이 왜 그러십니까?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팀장님이 서우리 씨를 만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런 정식의 반응을 보지 못했는지 권 대리는 말을 이었다.
“아니 팀장님이 뭐가 아쉬워서 서우리 씨 같은 사람을 만나느냐고요. 솔직히 서우리 씨가 많이 빠지잖아요.”
화가 났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바보 같았다. 스스로가 바보 같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주먹만 쥔 채로 화를 참았다. 그런데 정식이 소리가 나게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너 같은 새끼보다 나은 거 같은데?”
정식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일으켰다.
“미친 새끼.”
“팀장님 그 발언 사과하세요.”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평소와 다른 정식의 모습에 우리는 그를 붙들었다. 하지만 정식은 그 어느 때보다 사나운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가는 길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거 몰라? 그런데 지금 이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식의 고함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지금 이 여자가 내 여자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가? 그걸 들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어디 감히. 지금 내가 이 여자가 내 여자다. 내가 지켜줄 사람이다 말하는데 수준이 떨어져? 뭐가 아쉽냐고? 너 같은 새끼가 쉬는 공기가 아깝지. 내가 이 과분한 여자에 뭐가 아까워? 미친 새끼. 너 직장 윤리 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히 여겨. 미친 새끼.”
“나가요.”
“그래요.”
우리가 말리자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팀원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아, 아니요.”
“아니에요.”
팀원들은 모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런 정식을 데리고 재빨리 회식 장소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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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너무 심하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욕을 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죠. 그러시면 안 된 거죠.”
“더 하려고 했습니다. 서우리 씨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자식 늘씬하게 패줬을 겁니다.”
편의점에 앉은 정식이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며 말하자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정식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웠다. 누군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권 대리 그 사람은 그만 두더라도 다른 팀원들은 그만 두지 않잖아요. 그냥 참으면 되는 거였다고요.”
“참는다고요?”
정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우리 씨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을 문제로 삼는 것에 대해서 겁을 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분명히 권 대리가 잘못한 겁니다. 그거에 대해서 서우리 씨가 화를 내도 괜찮은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러면 사람들이 팀장님을 이상하게 볼 거잖아요. 저는 그런 거 너무 싫어요.”
“그렇게 좀 보면 어떻습니까?”
“팀장님.”
“숨기고 싶었습니까?”
우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식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걸린 또 하나가 뭔지 알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미안합니다.”
정식은 곧바로 사과를 하며 입술을 꼭 다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요.”
정식이 사과하자 우리는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굳이 모르는 척. 아닌 척 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정식과 사귀는 것을 안다고 해서 달랒리 것이 없었는데 공연히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았다.
“모르는 척 하는 것보다는 낫죠. 그래도 이렇게 제 편을 들어주고 그 상황에서 나서주신 거잖아요.”
우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은 그러다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괜찮습니까?”
“네?”
“아까 그 말들 마음에 담아둔 거 아니죠?”
“네. 당연하죠.”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들에 마음이 다칠 만큼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니까 팀장님도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말했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정식은 손을 내밀어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뛰었다.
“서우리.”
“엄마!”
은화였다. 우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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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은화의 말에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은화가 반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거기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집에 죽은 여자 사진도 너무 많다. 그런 집 너무 이상하고 그래.”
“그 사람 애인 아니야. 팀장님 돌아가신 누나래. 그거 아무 문제도 없는 거잖아. 그게 도대체 뭐라고 그래?”
“그래도 싫어.”
은화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은화의 태도가 너무 단호하자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난처했다.
“엄마 도대체 왜 그래요?”
“나도 내가 이기적이라는 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네 배우자는 좀 멀쩡하고, 바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뭐가 어때서요?”
예상도 하지 못한 반대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다래졌다. 머리가 울리고 땅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어?”
“내가 왜?”
“엄마.”
“솔직히 나는 네가 이해가 안 간다. 재필이랑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른 남자를 마난고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은화가 왜 이렇게 나오는 건지 그녀로는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팀장님 좋은 사람이야. 내 편을 잘 들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다 들어주는 그런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엄마가 왜 반대하고 그러는 건데? 엄마가 팀장님을 알아? 아니잖아요.”
“나는 반대야.”
은화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도대체 뭐가?”
너무 속상했다. 정식이 그녀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은화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 불편했다.
“엄마 나 속상해.”
“나도 속상해.”
“네가 뭐가 속상해?”
“엄마가 이러니까 그러지. 엄마 나 지금 남자 둘 만났어. 그런데 엄마 그 둘 다 그렇게 싫어하면 안 되는 거잖아.”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반편이 같은 가족을 만나.”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이마를 짚었다. 은화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 줄은 몰랐다.
“그 집에 아버지도 안 계신데. 나는 네가 흠이 있는 사람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거 싫어.”
“그러는 나는?”
“네가 뭐?”
“나는 뭐 괜찮아?”
은화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은화가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가정 폭력범 아버지가 있는 나는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요? 엄마. 엄마 딸도 정말 별 볼 일 없어. 너무 가진 거 없다고.”
“그러니까 더 잘 만나야지!”
“됐어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야기를 더 나눠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 자러 가요.”
“서우리. 엄마랑 더 이야기 좀 하고.”
우리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너무 힘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뭐야? 정말.”
우리는 문을 기대 바닥에 앉았다. 너무 속상했다. 가장 그녀의 편일 거라는 사람이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엄마까지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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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괜찮습니까?”
“네.”
아침에 만난 정식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괜찮을 거가 뭐가 있어요?”
“어제 어머니랑.”
“그냥 놀라셨나봐요.”
우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일부러 밝은 어조로 말했지만 정식은 그런 그녀를 보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딸 가진 모든 부모는 다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을 거였다.
“서우리 씨 어머니께서는 놀라시기도 하시고 여러 생각이 있으실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서우리 씨는 공연히 나에게 뭐 미안하다.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미안하잖아요.”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할 거 없습니다.”
정식은 가만히 우리의 손을 잡았다. 그의 온기에 우리도 미소를 지은 채로 심호흡을 했다.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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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소망아 좋은 아침.”
“어? 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소망의 태도가 평소와 달라서 우리는 침을 삼켰다.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
“너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내가 혹시 무슨 실수 했어?”
“아니.”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소망이 왜 이러는 건지 알 것 같았지만 반대로 알 수 없기도 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뭐야?”
“뭐가?”
“지금 그 태도 뭐냐고.”
우리의 말에 소망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너 나한테 한 마디라도 했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팀장님이랑 그런 사이라는 거 눈치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알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그러니까.”
“됐어.”
소망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문이 열리고 소망은 우리를 남겨두고 멀어졌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염소망 너까지 그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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