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27장. 내 마음을 보다.]

권정선재 2016. 9. 30. 13:45

27. 내 마음을 보다.

너 요즘 우리 가게 뜸하다.”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우리의 사과에 선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해. 내가 그날 중간에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못해서 괜히 너까지 귀찮은 일에 휘말린 거 같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뭘 어떻게 했다고. 다 그 망할 자식의 문제지. 늘 먹던 걸로 주세요.”

알았어.”

 

선재는 미소를 짓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게를 둘러봤다. 익숙한 장소. 이전처럼 그런 아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데 밖에 정식이 나타났다.

 

여긴 또 왜 나타났어.

 

난처해하는 우리와 다르게 정식은 웃음을 띤 채로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앞에 앉았다.

 

뭐 하는 거예요?”

밥 먹으러 왔죠.”

아니 여기 제가 아는 사람 가게라고 했잖아요. 팀장님이 자꾸 이러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뭐가 안 되는 겁니까? 대한민국에서 서우리 씨가 아는 사람 가게는 내가 가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라.”

 

정식이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우리는 입을 내밀었다. 정식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헛기침을 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회의 다녀오느라 힘들어 죽을 거 같아요. 집에 가서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늦었고요. 그렇다고 편의점 음식도 딱히 끌리지 않고. 지난 번에 여기 먹었더니 괜찮더라고요. 그리고 원래 이 시간에는 다들 술이나 팔지 밥을 제대로 파는 곳은 없잖아요. 아니 손님을 손님이 내쫓아도 되는 겁니까?”

잘 오셨네요.”

오빠.”

 

선재가 미소를 지은 채로 우리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짱을 끼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 지난 번에 오신 우리 회사 분.”

. 이제는 뭐 애인 정도로 아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팀장님.”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일부러 다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은 정식의 태도에 우리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지만 선재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서우리 내 앞에서도 그럴 필요 없어. 나는 뭐 네가 누구를 만나던 상관하지 않으니까. 그냥 너는 귀여운 여동생이야.”

아직 사귀고 뭐 그런 거 아니에요.”

? 분명히 아침에. .”

 

정식이 더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우리가 있는 힘을 다 해서 그의 발을 밟았다. 정식이 울상을 짓자 선재는 미소를 지은 채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뭐 하는 거예요?”

뭐가요? 좋아하는 사람인데.”

저 오빠 전에 만나던 애인 사촌 형이라고요.”

그런데요?”

?”

 

저 분은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거 같은데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선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재킷을 벗었다.

 

많이 피곤해 보여요.”

피곤합니다. 집에 가서도 이것저것 체크해야만 하는 셔류들이 있었거든요. 뭐 그래도 그렇게 걱정할 건 아닙니다.”

누가 걱정한데요?”

그럼 아닙니까?”

 

정식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자 우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를 보면 볼수록 자꾸만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늘부터 사귀기로 하고서는 그렇게 피하기만 하는 건 좀 그렇죠.”

팀장님.”

여기 회사 아니죠?”

 

정식이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는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봤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식 씨.”

팀장님.”

조정식 씨.”

 

정식이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말하자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정식은 여유로운 반응을 보일 따름이었다.

 

도대체 왜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겁니까? 내가 언제 서우리 씨 이름 부르는데 망설인 거 본 적 있습니까?”

저야 회사에서 직책이 없으니 그렇죠. 그냥 사원이니까. 그렇다고 서 사원. 이렇게 부르지도 않으시잖아요.”

그럼 자기야.”

 

우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렇게 부르면 되는 겁니까?”

뭐라고요?”

아니 회사에서 부르는 대로 부르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나는 서우리 씨를 서우리 씨라고 부르니까 자기야 라고 하면 공평한 거 아니냐고요.”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우리가 몸서리를 치자 정식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리저리 목을 풀고 해맑게 웃었다.

 

팀장님은 제가 왜 좋아요?”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말이 되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뭔가 이유 같은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첫눈에 반했다?”

 

정식이 검지를 들며 말하자 우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선재는 주방에서 나와 두 사람 테이블 옆에 서더니 우리의 것을 정식에게 밀고 우리의 앞에 새 메뉴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선재를 올려다봤다.

 

오빠.”

네 거 식었잖아. 그러니까 네가 따뜻한 거 먹고. 그쪽은 좀 식은 거 먹어도 괜찮은 거죠? 그래도 우리를 좋아한다니까?”

당연하죠.”

그러지 마요.”

 

정식이 숟가락을 잡자 우리가 그를 말렸다. 하지만 정식은 싱글거리며 밥을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여기 정말 맛있습니다.”

그럼요. 제가 하는 건데요. 어서오세요.”

 

선재가 다른 테이블에 간 사이 우리는 음식을 다시 바꾸려고 했지만 정식이 꽤나 단호하게 나왔다.

 

왜 그러세요? 미안하게.”

서우리 씨가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원래 저는 고양이 혀라서 뜨거운 거 잘 못 먹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미안하잖아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그럼 다음에도 저녁 먹자는 거죠?”

사귀는 사이라면서요.”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덮밥을 한 숟가락 떴다.

 

그럼 밥은 뭐 같이 먹는 거 아닌가?”

그렇죠.”

 

정식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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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이인가 봅니다.”

.”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는 선재가 포장해 준 음식이 들려 있었는데 꽤나 묵직했다.

 

이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정말로 저를 여동생처럼 생각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거 되게 미안한데 말이죠.”

뭐가 미안합니까?”

그래도. 그렇잖아요.”

 

우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정식은 우리의 곁에 서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정식의 냄새가 달콤했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마요. 서우리 씨는 보면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거 하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세상을 혼자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남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죠.”

! 서우리!”

 

재필의 목소리.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잊고 있었다. 두 사람이 걷는 길은 재필이 일하는 편의점 앞이었다. 재필은 바코드를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

 

너 뭐하는 거야?”

뭐가?”

여기를 왜 지나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길에도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필의 길은 아니었다.

 

너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뭐라고?”

우리 이미 헤어진 사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행동하는 건데. 제발 그만 좀 그러면 안 돼? 네가 자꾸만 이러면 내가 너를 좋아했던 그 시간까지도 전부 다 이상해지는 거 같아.”

서우리.”

가요.”

 

우리는 정식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재필이 정식의 어깨를 잡더니 그대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우리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는데 그리고 나서 들리는 소리는 정식이 아니라 재필의 신음이었다.

 

서우리 씨 힘들게 하지 마시죠.”

너 이 새끼.”

 

우리는 눈을 떴다. 바닥에 재필이 넘어져 있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재필에게 뛰어가서 그의 얼굴을 살폈다.

 

. 너 뭐 하는 거야?”

서우리. 너는 저런 새끼가 좋아? 좋겠지? 직장도 번듯하고. 그런데 너무 늙었잖아. 그리고 느끼하지 않냐? 서우리. 너도 그냥 그런 여자였어?”

?”

 

순간 재필을 걱정하던 자신까지도 미워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정식은 그런 우리의 팔을 잡았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도 나는 네가 친구라서 걱정을 하는 건데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건데?”

그냥 결혼할 남자 연애할 남자 따로였던 거냐고?”

임재필!”

 

우리는 비명을 지르듯 재필의 이름을 불렀다.

 

너 진짜 쓰레기다.”

뭐라고?”

너를 내가 도대체 왜 만난 건지 모르겠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멱살이라도 잡고 나를 말리고 싶어.”

서우리.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심하고 멍청했네.”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헤어지고 나서도 이런 식으로 질척거리는 놈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했던 내가 미워.”

 

재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돌아섰다. 정식은 재필에게 명함을 던져주고 우리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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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서우리 씨가 왜 미안합니까?”

 

정식은 차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 너무 한심해. 그 순간 왜 거기로 뛰어간 거야. 팀장님 옆에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거죠?”

몸이 기억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그 순간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린 채로 정식의 품에 안겼다.

 

미안해요. 팀장님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우리 씨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만약 나 때문에 우는 거라면 울지 말아요. 나 서우리 씨가 우는 거 싫으니까. 절대로 나 때문에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알겠어요.”

 

정식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에 사탕을 넣더니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입맞춤. 우리의 눈물샘이 그대로 멎었다. 달콤한 키스. 그리고 입술을 떼고 나니 우리의 입에 딸기 맛 사탕이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안 우네.”

 

정식은 아이처럼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정식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이 사람이라면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생겼다.

 

고맙습니다.”

나야 말로 고맙습니다. 나 때문에 울어줘서.”

 

심장이 다시 또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정식이었다. 아직 제대로 확신을 한 적이 없지만 이제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지금 이 순간 옆에 있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