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누군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
“일어났습니까?”
“네.”
우리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우리는 곧바로 놀라서 눈을 떴다.
“팀장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걱정하지 마요. 아직 어머니 안 오셨으니까.”
“하지만.”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우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오늘부터 1일 하는 거 맞죠?”
“네? 그러니까.”
“준비하고 나와요. 입에 침은 좀 닦고.”
정식이 방에서 나가고 우리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봤다. 눈은 퉁퉁 붓고 입가는 하얗게 말라 붙었다.
서우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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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갔어요?”
“좀 괜찮아요?”
“왜 안 갔냐고요.”
“내가 돌아가면 제 어머니랑 서우리 씨 어머니랑 깨실 거 아닙니까? 곤히 주무시는데 그럴 수는 없죠.”
“그건 그렇지만.”
정식의 말에 우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식이 돌아가면 분명히 엄마랑 아주머니가 깰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한 집에서 자는 건 솔직히 좀 그랬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무슨 걱정이요?”
“어제 기억 나는 게 키스 맞죠?”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가 먼저 정식의 목을 끌어당겨서 한 그 키스. 우리가 얼굴을 붉히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제가 좀 생겼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자가 먼저 그렇게 적극적인 것은 처음이라서 신기했습니다.”
“시끄러워요.”
“이제는 말도 좀 막 하는 거 같군요.”
“팀장님.”
“알겠습니다.”
우리가 울상을 짓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물을 따라 마셨다. 그제야 식탁에 이것저것 차려진 것이 보였다.
“이게 뭐에요?”
“아침이요.”
“아니 아침인 건 알겠는데.”
엄마가 아직 집에 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 아침 상을 정식이 차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정식을 바라보자 정식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코 아래를 검지로 살짝 문지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이 정도도 못 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건 아니죠?”
“하지만 지난번에 아주머니께서 호박전 드시고 싶다고, 그러니까 팀장님이 아침부터 졸랐다고.”
“아 그거요. 뭐. 아침에 매일 요리를 하지는 않죠. 그래도 해야 할 때는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는데 어머니께서 하신 거였어요. 원래 아침 안 먹는 걸요.”
“아 그래요.”
“앉아요.”
자신의 집이지만 마치 손님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우리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정식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독이라도 넣었을까봐요.”
“낯설어서 그러죠.”
“뭐가요?”
“다요.”
“그러니까 서우리 씨가 먼저 내 목을 당기고.”
“알았어요.”
정식이 말을 잇자 우리는 손을 뻗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맑은 소고기 뭇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이게 무슨?”
“아 냉동실에 고기가 조금 있더라고요. 아마 어머니께서 뭔가 하시려고 한 거 같은데 제가 좀 썼습니다. 필요하신 거라고 하면 서우리 씨랑 제가 집에 오면서 다시 사들고 와도 되는 거니까요.”
“네. 그래요?”
이런 요리는 엄마들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고 조금 평범해 보이는 달걀 프라이를 조심스럽게 잘라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뭔가 모를 풍미에 놀라서 정식을 바라봤다.
“이거 뭐예요?”
“들기름요.”
“원래 넣는 거 아니죠?”
“보통은 그냥 식용유로만 하죠. 그런데 제가 한 번 그렇게 해보니까 맛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왜요? 맛이 너무 강해요?”
“아니요.”
우리는 달걀을 입에 더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맛있는 달걀 프라이는 처음이었다. 정식은 흐뭇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팀장님 요리 이렇게 잘 했어요?”
“에헤이. 팀장님이 아니라 조정식 씨. 이제 사귀기로 했는데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 언제 사귀기로 했는데요?”
“에?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우리의 대답에 정식은 입을 쭉 내밀었다.
“아니 어제 그렇게 순결한 남자의 입술을 가져가 놓고. 지금 전혀 모르겠다. 그렇게 나온다고요?”
“아니. 저 혼자 했어요? 팀장님이 받아줬으니까 한 거 아니에요. 아니 그렇게 싫었으면 거절해야죠.”
“좋아하니까요.”
정식의 대답에 우리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정식은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그나저나 빨리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아. 시간.”
“더 늦으면 지각입니다. 저 지각은 용납 안 해요.”
우리는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식은 그런 우리를 한 번 더 보고는 우리의 집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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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침을 다 한 거야?”
“어? 어.”
은화가 괜히 이상하게 생각을 할까 우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어려운 것도 아니지.”
“그나저나 옆집에 가서 놀랐어. 무슨 사당인 줄 알았어.”
“사당?”
“죽은 여자 사진이 어찌나 많은지.”
그제야 정식의 여자친구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너무 보고 싶다는 그 말도 함께. 여전히 잊지 못한 걸까?
“그래서 누구랑 만날까 싶어.”
“그래서 엄마는 별로야?”
“별로지 그럼.”
은화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은 채로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
“사람이 아무리 멀쩡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하고 만나면 여자만 고생해. 죽은 사람 못 잊는 사람을 어떻게 붙잡고 살아? 산 사람은 절대로 죽은 사람 못 이겨. 그거 추억을 안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
“추억을 잡고 사는 사람.”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을 거였다. 자신에게도 재필이 있었다. 만일 재필이 죽었더라면 더 애틋하고 잊지 못할 거였다. 무조건 정식이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너 출근 안 해?”
“아. 출근!”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욕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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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네.”
우리의 태도가 변화하자 정식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살피다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타죠.”
“저기. 저 버스 타고 갈게요.”
“뭡니까?”
정식은 조금 더 미간을 모은 채 우리를 응시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러니까 그게.”
마음을 열겠다고 다짐을 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 우습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정식을 바라봤다. 정말로 정식과 시작하기 위해서는 짚고 가야 하는 거였다.
“엄마가 팀장님 집에 다녀와서 사당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사당요?”
“네. 죽은 여자 사진이 가득하다고.”
“아.”
정식은 여전히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저 태도는 뭐야? 아무리 애인이 죽었어도 그렇지 그 애인 사진 놓는 게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뭐야?
“돌아가신 여자 친구가 소중했다는 건 알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 저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돼요?”
“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다 알고 있어요.”
정식의 태도에 우리는 부아가 치밀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걸 왜 숨기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만 그 마음을 내가 못 이긴다는 거잖아요.”
“잠깐만요. 서우리 씨.”
정식은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네?”
“애인이 아닙니다.”
“아니 페이스북을 보니까 사랑한다고.”
“도대체 내 페이스북은 언제 본 겁니까? 아니 그거 다 닫은 줄 알았는데. 아무튼 애인 아닙니다. 우리 집에 있는 거 누나에요. 누나가 갑자기 사고로 죽었거든요. 호주에 가서 워킹홀리데이하다가 사고로. 그래서 집도 그런 거고요.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죽은 누나라고? 우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정식은 잠시 무서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팀장님이 뭐가 미안해요?”
“그런 오해 하게 한 거요.”
“네? 팀장님 그러니까. 제가 그러니까.”
“알고 있습니다.”
정식은 살짝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리 씨가 내 페이스북을 본 거고, 서우리 씨 어머니도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셨다는 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겁니다. 내가 누나가 있다는 걸 어차피 서우리 씨는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러면 그 동안 왜 연애는 안 한 건데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정식의 눈썹이 묘하게 올라갔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꼭꼭 씹다가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 동안 회사에서 연애한다는 이야기가 한 번도 없으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나 참.”
정식은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혀로 안쪽 볼을 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요?”
“처음 들어와서 실수를 했습니다. 세상에 복사 좀 해오라고 하는데 한 페이지씩 묶어서 내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화가 나야 하는데 그 사람이 너무 귀여운 겁니다.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게.”
내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꾸만 눈에 보였습니다. 회식을 하기 싫다고 말을 하는 것도 너무 귀여웠습니다. 아니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게 싫다는 게 말이 된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데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면 화가 났어야 하는데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좋았습니다.”
정식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애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숨겼습니다. 그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겁니다. 뭐 오랜 시간도 아니죠. 하지만 6년 동안 짝사랑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할 만 하죠. 그 전에는 그 귀여운 여자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이제 대답이 된 겁니까?”
“그러니까 그 말씀은? 그러니까 지금 팀장님이.”
“처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웬만해서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귀여운 스토커 짓을 했는 데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그 앙증맞은 입술을 삼키고 싶으니 말입니다. 아침이 아니었더라면 키스 했을 겁니다. 그러니 어서 출발하죠. 지각할 겁니다.”
우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후다닥 차에 올랐다. 정식은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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