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심장이 뛴다.
서우리 뭐 하고 산 거야.
휴대전화를 들여다봐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졸업하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해버렸다. 동창회 같은 것을 제대로 나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만날 수 있는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었다. 뭔가 그녀와 친구들은 다르게만 느껴졌다. 그 결과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주위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 가지 않고 곧바로 기연은 전화를 받았다.
‘우리야 무슨 일이야?’
“그게.”
‘나도 너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만나자. 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어?”
기연의 갑작스러운 말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우리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전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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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어, 안녕.”
기연은 우리가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반가운 체 하는 그녀에 우리도 마음이 편해졌다.
“신혼은 좀 어때?”
“불편해.”
“불편해?”
“응. 잘 모르는 사람하고 한 집에서 사는 거니까. 그게 쉽게 적응은 되지 않더라고. 자꾸만 이상한 사람이 있는 거 같고. 그런데 천천히 적응을 하려고 하고 있어. 그게 아마 결혼이라는 거겠지.”
“그런 걸 말을 하지 그래?”
“아니.”
기연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을 하는 건 그 사람도 불편하다고 생각을 할 거잖아. 나 혼자서 불편한 게 아닌데 그럴 수 없지.”
“그런가?”
“당연하지.”
기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는 뭔데?”
“어? 뭐가?”
“고민이 있잖아.”
“아닌데.”
“거짓말.”
기연이 단언을 하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아주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나도 내 이야기 하나를 해줬으니까. 너도 네 이야기 하나를 해주는 게 어때? 그런 거라면 전혀 불공평한 것도 아니고.”
“12년 동안 사귄 사람하고 해어졌어.”
우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쉽게 헤어졌어.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누군가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는데. 정말로 내가 좋다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불안한 거야. 정말로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만난 사람하고도 쉽게 헤어지게 되는데. 오랜 시간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도대체 뭘 선택을 할 수 있는 건지도 하나 모르겠고. 머리가 너무 복잡해.”
“좋아하는구나.”
“어?”
기연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기연은 미소를 지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좋아하고 있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
“그럼 뭐가 복잡한데?”
“직장 상사야.”
“그게 뭐?”
기연이 너무 쉽게 말을 하자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황한 우리와 다르게 기연은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사람이 너를 먼저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너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거고. 그런데 도대체 네가 뭘 그렇게 고민을 하고 망설이는 거야? 그냥 그 마음을 받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나도 직장 상사였어.”
“남편?”
“응. 그런데 내가 좋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나 남자로도 안 봤잖아. 나보다 나이도 되게 많고. 뭔가 나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한 번도 그 사람을 남자라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나를 좋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르게 보이더라고. 아.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깨달았어.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좋아하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자신도 이미 좋아하고 있었을 거였다. 그런데 이 마음을 누군가가 아는 것이 겁이 나서 그래서 자꾸만 망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냥 잡아.”
“헤어지면?”
“그런 게 어딨어?”
기연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서 헤어질 거라고 생각을 하고 먼저 그러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냥 사람이 좋아서 만나다 보면 더 사랑하고 결혼까지 가는 거고. 그러다가 덜 사랑하게 되면 헤어지는 거지.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냥 그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잖아. 도대체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 거야?”
“헤어질까봐.”
기연은 손을 내밀어서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녀의 손을 피하려고 했지만 온기에 피하지 못했다.
“네 마음에 솔직해.”
“그게 틀린 거면.”
“틀리면 어때?”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틀려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
“아직은 괜찮아. 아니 앞으로도 괜찮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서 마음을 여는 건데 그게 무슨 문제야. 안 그래?”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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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왜 이래?”
“네 아버지 다녀갔어.”
집은 꽤나 비어있었다.
“다 어디에 간 거야?”
“살림을 자기가 산 거라고 가지고 가더라.”
은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로 웃었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짐들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엄마가 미안해.”
“아니.”
은화의 사과에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은화의 탓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걸로 끝이 난 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엄마한테 뭐 한 건 아니지?”
“응. 나 일 간 사이에 이랬더라.”
“그래. 그럼 이제 꾸미면 되는 거지. 이 집은 확실히 엄마 거 맞아요?”
“어? 어. 이번에 내 명의로 됐다고 하더라고. 합의 이혼이니까 뭐 다른 것도 필요하지 않은 거 같고. 오히려 네 아버지는 내가 가정 폭력으로 자기 경력을 망가뜨릴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러지 않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 그런데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전화를 하니 뭐라고 하는지 아니? 자기가 집을 준다고 한 거지. 자기 돈으로 산 걸 준다고 한 건 아니라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그 돈을 내겠다니 그것도 싫대. 세상에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다니?”
“괜찮아.”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엄마에게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다행이었다.
“이제 잘 살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 우리 이제 잘 살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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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보여요.”
“아 그래요?”
우리는 손거울을 확인했다. 그러다 옆에 정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거울을 가방에 넣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보지 마요.”
“귀여운 거 압니까?”
“팀장님.”
“내일부터는 내 차 타고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솔직히 편하기는 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살짝 그를 살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어서 회사 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아니거든요.”
“지금 맞는 거 같은데요.”
정식은 애써 웃음을 참은 채로 답했다. 우리는 뭔가 정식에게 말려든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지만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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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리 씨. 이거 다 됐습니까?”
“아, 잠시만요.”
우리는 미리 해둔 서류를 내밀었다. 정식은 서류를 보더니 살짝 미간을 모은 채로 우리의 테이블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서우리 씨 여기가 잘못 되었잖아요.”
“네? 아.”
하지만 우리의 귀의 정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식이 원래 이렇게 좋은 향의 향수를 쓰는지 몰랐었다. 게다가 왜 이렇게 심장은 뛰는지. 정식에게까지 들릴까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서우리 씨 듣고 있습니까?”
“네? 듣고 있어요.”
“그럼 서류 정리해서 내 방으로 가져와 줘요.”
“네. 알겠습니다.”
정식이 멀어지자 우리는 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망은 옆에서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내밀었다.
“너 수상해?”
“뭐가?”
“팀장 말도 제대로 안 듣고.”
“뭐래?”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소망은 여전히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우리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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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해왔어요.”
“잘 했네요.”
정식은 우리를 바라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우리는 심장이 미친 듯 뛰어서 곧바로 돌아섰다.
“저기 서우리 씨.”
“네?”
“같이 저녁 먹을래요?”
“저녁이요?”
우리는 다시 돌아섰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갑자기 저녁은 왜? 할 일이 있나요?”
“아니요.”
우리의 말에 정식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신청인데요?”
“데이트요?”
“네. 데이트 신청. 뭐 안 될 거 있습니까? 나는 서우리 씨를 좋아하고 있고. 지금 이 기회에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내가 서우리 씨를 여기에서 밀어붙이지 않으면 서우리 씨가 도망갈 거 같고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정식은 우리가 대답을 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거 같았다. 아직 데이트 같은 건 조금 부담스러웠다.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 변명거리가 떠올랐다.
“집 정리를 해야 해요.”
“집 정리요?”
“네. 아버지께서. 짐 다 가져가셨거든요. 그래서 집이 지금 되게 엉망이 되었어요. 그거 정리해야 해요.”
“나 피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니에요.”
정식이 정확히 짚어내자 우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무실 사람들이 볼까 걱정이 되는 순간 정식은 그대로 멈춰서 책상에 살짝 걸터 앉았다.
“아까 내가 옆에 있었을 때 설렜죠.”
“뭐래요?”
“좋아합니다.”
또 그 차분한 어조로 하는 고백.
“좋아합니다.”
“농담하지 마요.”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서우리 씨를 좋아합니다.”
심장이 또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귀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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