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한 여자
“엄마 닮아서 정말 예쁘네.”
“고맙습니다.”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정식의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은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만나자고 해서 놀랐죠?”
“아니요.”
“그냥 보고 싶었어요.”
“에이. 들어가세요.”
정식의 너스레에 그제야 정식의 어머니는 먼저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잘 놓여서 꾸며져 있었다. 아마도 정식의 모친이 이런 것에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집이 예뻐요.”
“고마워요.”
정식의 모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 보고 인테리어 소품이랍시고 이것저것 사놔서. 우리 아들은 무슨 귀신의 집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도 예쁘다고 해주니까 내가 다 황송하네. 내가 그래도 영 쓸모가 없는 노인은 아니에요.”
“팀장님이 별로라고 그랬다고요? 이렇게 예쁜데요?”
우리는 정식을 돌아봤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앉아요. 왜 서서 그래.”
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정식의 모친은 그런 우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엄마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딸이 아주 바르고 예쁘다고. 정말 그대로네요. 참 바라.”
“아닙니다.”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가 긴장한 것을 모르는지 정식은 그저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
“긴장되죠?”
“아니요.”
“정식이랑 집 구경하고 있어요. 뭐 크지 않은 집이라 볼 것은 별로 없겠지만. 내가 간단히 먹을 거나 좀 내올게요.”
“제가 할게요.”
“됐어요.”
우리가 나서려고 했지만 정식의 모친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얼마나 귀한 딸인지 다 들었는데 나 그런 거 시킬 생각 없어요. 뭐 시키려고 보자고 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리고 혹시나. 우리 아들하고 결혼을 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마요. 우리 아들 요리 아주 잘 하니까. 그리고 내가 교육을 잘 시켜서 아침도 알아서 먹거나 안 먹어요. 호박전은 오해하지 마요. 그냥 가볍게 한 이야기 내가 해주고 싶어서 갑자기 해줬던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우리의 답을 듣기가 무섭게 정식의 모친은 주방으로 사라졌다.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어머니 괜찮죠?”
“좋으신 분이네요.”
“정말이죠?”
“당연하죠.”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그녀를 배려해주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분이었다. 고마웠다.
“그래도 내가 돕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팀장님 어머니이신데. 저 혼자 여기에 있는 게 좀 그래요.”
“나랑 같이 있는데 뭐가요?”
정식의 대답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아들은 안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께서 혼자서 주방에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들로 가서 도와드려야 한다. 뭐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어른 가서 도와드려요. 나는 팀장님 방에 얌전히 앉아있을게요.”
“뭘 하려고요? 막 옷장 같은 거 뒤져보려고요?”
“누가 그런대요?”
우리의 얼굴이 붉어지자 정식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책장에서 앨범 세 권을 꺼내 우리에게 건넸다.
“졸업앨범이에요. 거기에서 나 찾고 있어요. 아 그리고. 그거만 하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음.”
정식은 다시 돌아서서 사진첩도 하나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보고 있어요.”
“알았습니다. 얌전히 있을게요.”
정식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우리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너무 뛰었다.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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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와?”
“나가래.”
“어?”
정식의 말에 모친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를 왜 나가래?”
“자기가 엄마를 돕고 싶은데.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아들이라도 나가서 도우라고 합니다. 엄마는 좋겠어요. 그렇게 엄마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들의 여자친구라서 말이에요.”
“그러게.”
모친은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은 식탁에 살짝 기대서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어떻기는?”
“솔직히요.”
“좋아.”
정식의 모친은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타부타 말을 할 자격이라도 있니? 그런 거 하나 없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평가하는 거 다 틀려.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봐서 알아차릴 수는 없는 거잖아. 그냥 다 좋게 보여. 말도 얼마나 조곤조곤. 예뻐. 확실히 너보다는 낫다. 죽은 네 누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정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의 모친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딱히 못 먹는 거 없지? 나도 서실한테. 아니지. 은화한테 듣기는 했는데 그래도 뭐가 있나 싶어서.”
“없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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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웠네.”
우리는 정식의 사진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얼굴이 묘하게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할 수가 있어?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겠다. 눈에 개구쟁이에요. 그렇게 쓰여있네.”
졸업사진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학급에서는 꽤나 인기가 많은 학생인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거기에 고등학교까지 모든 졸업 앨범에서 반 사진은 그가 중심에 있는 사진이었다.
“인기가 많았네.”
“정말 보고 있었습니까?”
“아 팀장님.”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의 곁에 앉아서 자신의 앨범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어릴 적이랑 똑같죠?”
“네.”
정식은 가만히 자신의 사진을 응시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너무나도 해맑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저때로 돌아갔으면 하는 때가 있어요.”
“왜요?”
“그냥 행복했거든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그냥 행복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하나하나 뭔가 사정 같은 게 생기는 거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거 말고 다른 사정들.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어떤 부분들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렇겠죠.”
우리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요. 우리 나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
“맞다.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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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그렇게까지 서우리 씨를 오랜 시간 좋아했다고요?”
“네. 되게 미안하게요. 어머니께서도 화가 나시죠? 귀한 아드님이 저 같은 애한테 자꾸만 그런 거. 솔직히 좀 그러니까요.”
“아니요.”
정식의 모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이 우리 씨가 되게 마음에 든 모양이네. 원래 그렇게 끈기가 있는 애가 아닌데.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 그거 서우리 씨가 진짜 좋았다는 이야기인가 봐요. 우리 아들이지만 되게 신기하네.”
“뭐 그런 말을 해요.”
사온 과일을 깎아서 거실로 가지고 온 정식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정식의 모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그럼 뭐.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나중에 환불해달라고 하면 나 감당 못해. 이미 37이나 먹어서.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려는 물건. 거의 떨이로 지금 사가는 건데 말이야.”
“에?”
정식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웃음을 참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팀장님이 뭐가 어때서요? 팀장님 회사에서 인기 진짜 많아요. 키도 크고 잘 생겼잖아요. 게다가 일도 얼마나 잘 하시는데요. 완전 멋있으세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해.”
정식의 모친은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식도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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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뭐라고 하진 않으셨죠?”
“그걸 말이라고 해요? 팀장님 어머니께서 저를 너무 예쁘게 봐주셔서 당황스러울 정도인 걸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뭐라고. 그렇게 예쁜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죄송스럽게.”
“서우리 씨가 잘 하니까 그러죠.”
정식의 우리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 그렇게 조곤조곤 말을 잘 하는 사람일지 몰랐습니다. 나는 서우리 씨가 약간 무서운 타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내가요?”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자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입을 쭉 내밀고 그런 정식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뭔가 게임 같아요.”
“게임이요?”
우리의 말에 정식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하나 뭔가 미션을 수행하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요? 뭔가 한 단계, 한 단계 뭔가를 통과하는 거 같아요. 전에는 연애하면서 이런 걸 한 적이 없거든요. 이제 정말 어른인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죠.”
정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우리를 품에 안았다. 우리는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정식은 몸에 힘을 준 채로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뭐 하는 거예요?”
“좋아합니다.”
“팀장님.”
정식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입을 맞추었다. 우리도 까치발까지 들며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가볍게 그의 목을 안고 당기면서. 정식과의 키스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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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실 언니 만났다며?”
“아. 어머니 만났어?”
“어머니?”
우리의 대답에 은화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가 그러는 거 마음에 안 들어. 너 지금 너무 성급한 거 같아. 얼마나 만났다고 그런 거를 해.”
“그러게.”
우리는 소파에 앉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뭔가 어른이 된 거 같아.”
“어른?”
“재필이랑 사귈 적에는 이런 거 없었거든. 그냥 갑자기 지나가다 재필이 어머니를 만난 거였어 가지고. 뭔가 복잡한 거 그런 거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되어서 어머니를 만난 거니까.”
“결혼할 거니?”
“결혼?”
우리는 입을 쭉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나나 팀장님이나 그런 거 한 번도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뭔가 이 사람이다. 싶은 건 있어요. 되게 가정적이거든. 엄마도 팀장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사람은 괜찮지만. 나이가.”
“나이가 뭐.”
우리의 의기양양한 태도에 은화는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의 편을 들기로 한 만큼 더 방해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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