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불편한 사람 둘
“선재 가게는 계속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었네. 선재 가게는 계속 오는 이유는 뭐니?”
“네? 그건.”
순정의 질문에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선재 가게에 오지 못할 이유 같은 것은 없는 거였다.
“이모 오셨어요?”
마침 선재가 주방에서 나타났다.
“우리 너 뭐 하고 있어?”
“그러니까.”
“앉아서 밥 먹어.”
순정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재야. 재필이랑 우리랑 헤어진 거 알고 있는 거 아니니? 그런데 여기에 우리 이렇게 오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안 그래?”
“이모 여기는 식당이에요. 음식 파는 곳이라고요. 여기에 우리가 오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내가 불편하잖아.”
“뭐라고요?”
선재는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선재는 아까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손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오빠.”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 지금 이모 무시하는 거니?”
“이모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는 지금 그저 손님에게 주문하신 음식을 드릴 뿐이에요. 이모야 말로 제가 여기에서 장사를 한다는 걸 잊으신 모양이에요. 우리야 가서 먹어. 괜찮으니까.”
“아뇨. 오빠.”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여기에서 뭔가를 먹는다는 것도 우스운 거였다.
“저 그냥 갈게요. 음식은. 다음에. 다음에 와서 먹을게요. 제가 괜히 오빠에게 무슨 폐가 되는 거 같아요.”
“그럼 기다려. 내가 포장을.”
“아뇨.”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도 그녀에게는 스트레스였다. 우리는 고개를 짧게 숙이고 그대로 가게를 나서려는데 재필이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우리는 그를 돌아봤다.
“이거 놔.”
“이야기 좀 해.”
“이거 놓으라고.”
“서우리.”
“그거 놔!”
선재였다. 선재가 재필을 우리에게서 떼어놓았다. 재필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너야 말로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너에게 손을 놓아달라고 하는 이야기 못 들었어? 듣고도 지금 그 손을 잡고 있는 거야?”
“형 지금 내가 무슨 폭력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저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 좀 하자는 거야. 이야기.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이야기 좀 하자는 게 문제냐고?”
“그래. 문제야.”
선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고는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너 왜 헤어졌는지 이모한테 말씀 안 드렸지?”
“뭐?”
선재의 말에 순정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그게.”
“아들.”
순정의 목소리의 톤이 묘하게 변했다.
“너 엄마한테 말을 안 한 게 있어?”
“이모. 얘 여자가 생겨서 우리에게 헤어지자고 한 거라고요. 재필이가 먼저. 그리고 집에서 우리를 내보내고 짐도 제 가게에 다 맡겼고요. 지금 이모가 이러는 거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에요.”
순정은 심호흡을 한 후 우리를 바라봤다.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우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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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힘들지 않아?”
“언니.”
카운터에 앉아있던 은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의 모친은 손을 휘저었지만 은화는 곧바로 카운터에서 나왔다.
“여긴 왜요?”
“말 좀 하려고.”
“무슨 말? 집에서 해도 되는 걸.”
“우리 아들이 모자라지?”
“어?”
정식의 모친의 물음에 은화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그녀였다.
“언니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요? 우리 애도 많이 부족하지. 언니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모르겠네.”
“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그래서 내 아들 무조건 응원할 거야. 내가 평생 내 아들 끼고 살 수도 없는 거고. 서실이 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어. 그걸 내가 왜 몰라? 그래도 애들 이 그렇게 막 반대하고 그러지 말자. 응? 애들이 좋다고 하잖아. 그거 좋은 거야. 복이지.”
“그렇지. 복이지.”
은화는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을 해도 되나?”
“그럼.”
“나는 우리 딸이 흠이 있으니까. 흠이 없는 남자에게 갔으면 했어요. 물론 언니 아들 보기 전이지. 사람이 참 바르더라고. 내가 사람이 참 이상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나도 이미 아이들에게 모든 걸 맡꼈으니까. 혹시 이런 생각 했다고 우리 딸 미워하는 거 아니지?”
“그럼.”
정식의 모친은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은화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딸 가진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지. 그 정도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당연한 거야.”
은화는 조금 더 밝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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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팀장님.”
“아. 염소망 씨 퇴근 안 했습니까?”
소망은 잠시 망설이다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로 확정이 된 건가요?”
“네? 그게 무슨?”
정식은 잠시 미간을 모았다.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회사에서 다들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차피 대리 승진은 우리로 정해진 거라고. 저는 그냥 들러리라고. 우리만 올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테니까. 우리를 좋지 않게 볼 거라서 저를 올린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네.”
소망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정식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물끄러미 소망을 보고 침을 삼킨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염소망 씨를 괜히 올렸군요.”
“팀장님.”
정식의 대답에 소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염소망 씨. 나는 두 사람 모두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모두 다 올린 거고요.”
“하지만. 하지만.”
소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주먹을 쥐었다. 정식은 그런 그녀를 보고 벽에 살짝 기댄 후 혀를 살짝 물었다.
“말을 하죠. 무슨 말이건.”
“우리는 기획안 하나 통과된 적이 없잖아요. 사원 급의 기획안이 통과된 거 제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제가 승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자리 정말 제가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동안 권 대리의 일을 다 한 것은 서우리 씨입니다.”
“그건 누구나 하는 거잖아요.”
“누구나요?”
정식의 목소리가 묘하게 갈라졌다. 우리가 걱정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정식은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이래서 서우리 씨가 걱정을 한 거군요.”
“우리가요?”
“염소망 씨만 올릴 수 없냐고 묻더군요.”
“그건.”
소망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서우리 씨는 그래도 친구라고 염소망 씨의 승진을 바랐는데, 염소망 씨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건 다르죠.”
“같은 겁니다.”
정식의 대답에 소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식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거 아무나 하는 일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나 하는 일이라면 왜 염소망 씨는 하지 않았습니까? 일이 버겁고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정식의 말은 소망의 정곡을 찔렀다. 소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권 대리가 하던 일은 그녀가 하던 일보다 귀찮았다. 서류의 양도 너무 많아서 손도 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한 게 서우리 씨입니다. 그리고 회의 자료 정리하고 그거 다 서우리 씨가 한 거 아닙니까? 기획안요? 그거 회의할 때 그 자료 만들어준 것 염소망 씨가 아니라 서우리 씨였습니다. 그 기획안이 통과된 것이 염소망 씨 혼자서 잘 해서 된 거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러니까.”
소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식의 말을 듣고 나서야 머리에서 끊어졌던 기억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게.”
“서우리 씨는 회사에서 참 힘들겠습니다. 유일한 친구라는 사람마저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소망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소망을 응시했다.
“염소망 씨. 서우리 씨는 한 번도 염소망 씨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염소망 씨의 승진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자신이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는 함부로 나에게 옮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나와 만난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떤 오해가 생길까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염소망 씨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죠. 나는 지금 서우리 씨가 염소망 씨의 어떤 부분을 보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소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식은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숙였다.
“심사는 정확하고 공정할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염소망 씨만 올린다고 해도 승진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애초에 경합이 우리 회사의 룰이니까요. 그 정도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우습군요.”
“그러니까. 그게. 팀장님. 그러니까.”
“서우리 씨에게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정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우리 씨는 염소망 씨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요?”
소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도대체 왜요?”
“왜냐고요?”
“그냥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세요.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그러지 마시고요. 그거 되게 불편하거든요. 저 우리 질투해요. 저보다 나은 게 하나 없는 걔가 도대체 왜 그렇게 잘 나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처럼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세요?”
“왜 그렇게 삐뚤었습니까?”
정식의 말에 소망은 침을 삼켰다. 정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혀로 볼 안쪽을 훑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만 하죠.”
“팀장님.”
“둘 다 승진을 할 수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건 내 손을 떠난 문제입니다. 염소망 씨. 조금만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세요. 그렇게 쉽게 휘둘리지 말고. 앞으로의 염소망 씨를 위해서도 이건 내가 하는 충고입니다.”
“그러니까.”
“그만.”
소망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정식은 고개를 저었다.
“나 이미 서우리 씨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요. 나를 아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집에 먼저 가라고 하지만 가지 않겠죠.”
정식의 미소에 소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식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먼저 자리를 피했다. 소망은 참았던 순을 한 번에 내몰아 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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