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하루를 견디는 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우리는 잠이 가득 붙어있는 얼굴로 정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식을 보니 피로가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비켜요. 제가 운전할게요.”
“오늘은 제가 해도 됩니다.”
“아니요.”
정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호했다.
“어차피 퇴근하면 팀장님이 하잖아요. 퇴근하는 길이 훨씬 더 힘든 거니까 지금 하는 게 맞아요.”
“안 그래도 된다니까.”
정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조수석에 앉았다. 우리는 기합을 한 번 넣고 핸들을 잡았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 오늘 발표인 거 압니까?”
“발표요?”
“승진.”
“아.”
우리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정식은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서우리 씨. 어떤 결과가 나오건 그건 서우리 씨와 관련이 없는 겁니다. 알고 있죠? 다른 큰 것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네. 당연히 알고 있어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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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아 좋은 아침.”
“어? 어.”
소망은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우리를 두고 사무실로 먼저 들어갔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자판기 앞에 섰다. 그리고 에너지 음료 버튼을 꾹 누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피곤해.”
요즘 들어서 권 대리의 일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녀였다. 차라리 소망이 승진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아직 그렇게 일에 치여서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 일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나온 음료를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피곤합니까?”
“아 팀장님.”
언제 다녀온 것인지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는 정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탄산이 마시고 싶으니까 마신 거예요. 어차피 마실 탄산이라면 이쪽이 더 나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마시는 건 아니죠. 내가 괜히 커피 사왔네. 서우리 씨 많이 피곤하면 이제 퇴근하고 나 기다리지 말아요.”
“제 일도 많아서 있는 거예요.”
우리는 정식에 손에 들린 커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정식의 어깨에 기댔다.
“좋다.”
“서우리 씨 취향이죠?”
“네. 미지근한 마끼아또.”
우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기분 좋은 따뜻함과 달콤한 캬라멜 향이 입에 어울리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맛있다.”
“다행입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잇ㄱ이 있다면 회사에서 있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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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리. 아니 염소망 씨. 이것 좀 해주시죠.”
“네? 네.”
정식이 자신에게 업무 파일을 건네자 소망은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받았다.
“서우리 씨는 어제 부탁한 회의 자료 모두 준비 되었습니까?”
“네. 여기.”
우리는 미리 정리해둔 것을 정식에게 건넸다. 정식은 한 번 열어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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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소망이에게 일을 주는 거죠?”
“네? 그게 무슨?”
“다 보여요.”
우리의 말에 점심을 먹던 정식은 입을 내밀고 잠시 고민에 잠겨 있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서우리 씨가 지금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소망이가 저에게 조금 날을 세우니까. 그래서 팀장님도 소망이에게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염소망 씨가 정말로 대리로 승진할 자격이 있는지. 그럴 능력이 되는지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 소망이가 하던 일도 아닌데 그렇게 갑자기 주면 그거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서우리 씨는요? 서우리 씨는 그게 원래 하던 일이었습니까? 서우리 씨도 갑자기 맡게 된 겁니다.”
“그래도 달라요.”
우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입에 돈까스를 넣은 후 우물거렸다.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서우리 씨.”
“그만.”
정식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우리는 돈까스를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이 그랬잖아요. 무슨 일이 있던 그건 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이것도 그냥 뒀으면 좋겠어요. 소망이가 자기가 저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게 어떻게 당연합니까? 객관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서우리 씨입니다. 염소망 씨가 기획안에 매달려 있는다고 해서 그 일까지 지금 다 맡아서 처리하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다 하니까 된 거죠.”
우리는 일부러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팔을 만졌다. 정식이 한숨을 토해내자 우리는 왼손을 내밀어 정식의 오른손을 잡았다.
“팀장님. 저 그렇게 약한 여자 아니에요. 자꾸만 저 보호하려고만 하지 마세요. 그러면 저 자존심 상해요.”
“알았습니다.”
정식은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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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망 씨 오전에 부탁한 일 다 끝이 났습니까?”
“아니. 그게 아직.”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소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식은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겁니까? 그거 그냥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거 하나 지금 처리를 못 했다는 겁니까?”
“지금 하고 있습니다.”
“너무 느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정식이 너무 소망에게 뭐라고 몰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다른 팀원들의 눈치도 보였다.
“저기 팀장님.”
“서 대리는 가만히 있어요.”
“하지만.”
순간 우리는 멈칫했다. 지금 정식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슨 말인지 그녀의 머리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서 대리는 가만히 있으라고요. 아니 염 대리가 이렇게 일을 못 하니. 팀장으로 너무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는 소망을 쳐다봤다. 소망도 놀라서 우리를 바라봤다. 정식은 천장을 보고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때까지 이리저리 풀고 우리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서우리 씨. 그리고 염소망 씨. 두 사람 모두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뭐 당연한 거였지만요. 둘이 입사 동기인데 어느 한쪽만 올리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행히 위에서도 두 사람 모두를 인정한 것 같군요.”
정식은 우리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두드리고 돌아섰다. 우리는 뭔가 멍한 기분이었다. 팀원들이 박수를 쳐주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것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멍하니 소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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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탕비실에서 만난 소망은 고개를 숙이고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내가 너무 유치했어.”
“아니야.”
우리는 컵을 한 번 헹궈내며 고개를 저었다.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하는 게 옳아. 네 말처럼 나는 기획안이 통과가 된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 언니 멋있지 않니?”
소망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이 언니는 너를 다 이해한다.”
“네가 왜 언니냐?”
“내가 생일이 먼저니까.”
소망은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런 소망의 손을 꼭 잡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그리고 나도 너만 승진했으면 괜히 원망했을 거야. 내 남친 대단하지 않냐?”
“뭐래?”
소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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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네.”
은화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가렸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오랜만의 좋은 일이었다.
“왜 울어?”
우리가 당황해서 휴지를 뽑았다. 은화는 우리가 건네주는 휴지를 받아들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게. 내가 늙었나보다.”
“그러게. 엄마 늙었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은화의 옆에 앉았다.
“엄마 그래도 월급 많이 안 올라요. 그러니까 엄마 조금은 더 편의점 일 하고 그래야 할 거야.”
“나는 좋아.”
은화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귀찮기는 했지만 거꾸로 귀찮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나 사람 만나는 거 원래 좋아하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하고 일을 할 필요도 없는 거고. 여기가 또 주택만 있다 보니까 낮에는 이상한 놈들도 없고 좋더라고. 야간도 아니고. 엄마 안 힘들어.”
“그래도 엄마가 다른 일 했으면 좋겠어. 아니 일을 안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부족해서 그러네.”
“아니야.”
은화는 우리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딸이 그렇게 자기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 딸. 엄마가 언제나 응원하는 거 알지?”
“네. 알아요.”
우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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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집에 있을 거면서 회식도 거절한 겁니까?”
“그건 다르죠.”
정식은 우리를 보며 살짝 입을 내밀었다. 우리는 그런 정식의 어꺠에 조심스럽게 머리를 기댔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그래도. 뭔가 내가 축하를 해주고 싶었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죠.”
밤은 많이 추웠다. 하지만 정식과 같이 있으니 온도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뭐가요?”
“팀장님이 노력한 거잖아요.”
“아니요.”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조심스럽게 우리의 손을 잡았다.
“내가 아무리 두 사람 모두 승진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일을 잘 한 것이 아니라면 통과되지 않았을 겁니다. 두 사람 모두 잘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보답을 받은 거죠.”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식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물고 밝게 웃더니 그대로 정식의 입에 입을 맞췄다. 정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는 입술을 떼고 정식의 목을 안고 그의 품에 안겼다.
“팀장님. 완전 지금 예쁜 거 알죠? 어떻게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지.”
“서우리 씨 남자니까요.”
정식은 허리를 숙여 우리에게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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