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오늘은 쉬는 날인가?”
동우의 농담에 서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동우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서운의 곁을 나란히 걸었다.
“이제 내 말은 대꾸도 하지 않을 거야?”
서운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동우는 서운의 앞에 서더니 입을 쭉 내밀고 울상을 지었다.
“정말 이럴 거냐고?”
“비켜.”
“말을 했네.”
동우의 밝은 표정에 서운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동우는 비키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어.”
“비켜.”
“한서운.”
“비키라고.”
서운의 더욱 차가운 말에 동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으로 비키고 서운은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동우는 서운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서운은 미간을 모았다.
“뭐 하자는 거야?”
“나는 엘리베이터도 타면 안 되는 거야?”
동우의 당연한 질문에 서운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1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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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아침부터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나은에 백현은 미간을 모았다. 나은은 입을 쭉 내밀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기분이 너무 안 좋을 거 같아서. 도대체 얼마나 안 좋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왔어요.”
“그래서 직접 확인을 해보니 어떻지? 당신이 생각을 하는 것처럼 기분이 나빠 보여서 좋은가?”
“네.”
나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현에게 묻지도 않고 백현의 방 소파에 앉아서 몸을 뒤로 젖혔다.
“피곤해.”
“당신 사무실에 가서 그러지.”
“아직 아무 것도 없다고요.”
나은은 입을 잔뜩 내밀었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었다. 이미 그녀의 사무실은 완벽하게 꾸며져 있을 거였다.
“이런 식으로 내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계열사나 움직이는 입장이고, 나는 지주 회사를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같은 사장이라도 내가 당신 위에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사장 자리는 내가 준 거죠.”
나은의 명랑한 대답에 백현은 미간을 모았다. 나은은 백현의 표정을 보더니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그런 표정만 짓지 말아요. 당신이 자꾸만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거 같잖아.”
“뭘 원하는 거야?”
“없어요.”
백현의 물음에 나은은 싱긋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당신도 아는 것처럼 나는 하나를 손에 넣었고, 당신도 뭐 간단하게 하나 손에 넣은 거니까. 일단 이 회사가 유태화랑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너무나도 행복한 거 아니었나요?”
“당신도 멀어졌어야 하는데.”
“농담도.”
백현의 차가운 대답에 나은은 장난스럽게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백현에게 다가와서 가만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이제 합쳐야죠.”
“뭐라고?”
“위장이혼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유태화도 없겠다. 굳이 위장을 할 이유가 없어진 거 아닌가? 우리 이제 같이 살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내 말이 틀렸나요?”
“손 치워.”
“차갑긴.”
나은이 손을 치우지 않자 백현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치웠다. 나은은 입을 쭉 내밀고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요. 이제 이 회사에서 당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니 말이에요.”
“내가 한서운과 결혼하면?”
나은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이내 박수까지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표정을 지운 후 백현을 응시했다.
“둘 다 죽여야죠.”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나?”
“네.”
나은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너무 쉬워. 한서운 그 여자가 너무 무서워서 그렇지. 당신만 없으면 나한테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그게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하는 거지. 당신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뭔가 지금 착각을 하는 거 같아. 나에게 있어서 백현이라는 남자는 너무 쉬운 남자야. 한서운. 그 여자만 없으면 당신은 내 곁을 아마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너무 당연하잖아.”
“당신 곁에도 가지 않았어.”
백현의 차가운 대답에 나은은 미소를 지웠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기다란 검지로 가만히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물끄러미 나은을 응시했다. 나은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하네.”
“가.”
“알았어요.”
나은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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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가실 겁니까?”
“아무 곳이나.”
강 기사는 룸미러로 백현을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거리를 응시했다. 거리는 조용하면서도 활기찼다. 회사 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백현은 눈을 감았다. 모든 게 다 그의 목을 조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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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을 많이 벌면 나를 봐주는 건가?”
동우가 이 말을 하고 나서야 서운은 그를 응시했다. 동우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알았어. 내가 돈을 많이 벌게.”
“글쟁이가?”
서운은 코웃음을 치며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손을 들어 택시를 세웠다. 동우는 입을 내밀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서운 그만 좀 밀어내지.”
동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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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도 좀 기회를 달라고요.”
“기회는 이미 줬다.”
“아버지.”
유 회장의 차가운 태도에 태화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저에게 이러시면 안 되는 거죠. 나은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시고 도대체 왜 제가 해달라는 건 그렇게 무시를 하시는 건데요? 저 아버지 아들이에요. 아들을 이렇게 하시는 건 아니죠.”
“그 회사를 망친 것은 너야. 그래놓고서 지금 누구 탓을 하는 게야? 나은이에게 휘둘려서 그나마 손에 쥐고 있던 것도 다 잃어 놓고서는 지금 누구에게 와서 이리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태화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유 회장의 말이 모두 옳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화의 반응에 유 회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를 응시했다.
“너는 나은이를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그런데 왜 자꾸 그런 잔머리를 굴리려고 하는 것이야.”
“아버지가 나은이 뒤에서 그 녀석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시니까 그렇죠. 저를 그렇게 해줘보세요.”
“됐다.”
“아버지.”
태화가 주먹을 세게 쥐는 순간 회장실이 열리고 서운이 들어왔다. 태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이 여기에 왜 와?”
“내가 오라고 했다.”
“아버지.”
유 회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은 유 회장의 곁에 서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저도 제안을 해도 됩니까?”
“그래.”
“일단은 유 회장님의 비서 업무를 보겠습니다. 하지만 백 사장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아버지.”
태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서운을 가리켰다.
“이 여자가 지금 하는 말을 이해를 하신 거예요? 아버지 약점을 들고 그 개 자식한테 간다는 거잖아요.”
“앉거라.”
“아버지.”
“앉으래도!”
유 회장의 고함에 태화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주춤주춤 자리에 앉았다. 유 회장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가 이 아이를 선택한 것을 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죠.”
“너보다 유능한 아이다.”
유 회장의 말에 태화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유 회장은 미소를 지은 채로 서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마저 이야기를 하지.”
“네.”
서운은 고개를 숙이고 회장실을 나섰다. 태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한서운 저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모르세요? 나은이도 함부로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자를 지금 곁에 두겠다는 말씀이세요?”
“잘 됐구나.”
“뭐라고요?”
유 회장은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태화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여자가 하는 말 들으셨잖아요. 언젠가 아버지 배신하고 다시 그 망할 자식에게 갈 겁니다.”
“나은이가 없었다면 저 아이게 식품 회사를 맡기는 일을 반대하지 않았을 거다.”
유 회장의 차분한 고백에 태화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 유 회장이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백 사장은 저 아이에게 식품 회사 사장을 맡기려고 했어. 그리고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아버지.”
“어느 것을 선택을 해야지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아이다. 너는 언제 한 번 나에게 와서 그런 제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느냐? 없지. 저 아이는 자신의 패를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 너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나은이가 부사장 자리를 제안했다고 하던데.”
“싫습니다.”
태화의 대답에 유 회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거절하는 것으로 네 녀석은 이미 안 되는 거야.”
“제가 나은이 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 회사는 이미 제 회사였어요. 제 거였다고요.”
“하지만 네 손으로 지분을 팔았지.”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성공했을 겁니다. 그 망할 자식에게 큰 타격을 주고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요. 지주 회사 자리는 당연히 저를 주셨어야죠.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감당할 수 있겠니?”
유 회장의 목소리는 느릿했지만 힘이 있었다. 태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유 회장은 그런 태화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회장실에는 공기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너에게 지주 회사를 주었다가는 너는 그걸 백 사장에게 빼앗겼을 거다. 그리고 그건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주는 게 되는 거겠지. 일단 나은이 밑에 있거라. 너의 지분은 내가 챙길 테니까.”
“그럼 차라리 지주 회사 부사장이라도.”
“나가라!”
유 회장의 윽박에 태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저 여자 아버지 힘들게 할 겁니다.”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후회하실 겁니다.”
“적어도 너 같은 자식을 아들이라고 키운 것처럼 후회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 자부한다.”
태화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여는데 서운이 서있었다. 태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뒤의 유 회장의 시선을 느낀 채로 비켜섰다. 일단 이 분노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서운은 그가 사라지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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