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독한 연애[완]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17장]

권정선재 2016. 10. 28. 00:53

17

젠장.”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영재는 그런 그에게 물을 건넸다.

 

좀 괜찮으십니까?”

여기에서 잔 건가?”

. 어제 댁에 갔었는데. 비밀 번호를 알려주시지 않으셔서요.”

그거 한 비서. 아니야. 잘 했어.”

 

백현이 말을 흐리자 영재는 잠시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울렸다.

 

내가 얼마나 마셨지?”

괘 많이 드셨습니다.”

그렇겠지.”

 

백현은 머리가 깨지는 것을 느꼈다. 영재는 곁에 서서 그를 응시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부하 직원에게 멍청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집으로 좀 가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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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괜찮아?”

.”

 

서운은 동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젯밤 밤새도록 떨던 동우는 이제 조금은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바보 같아.”

그러게.”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충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동우는 그런 서운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뒤에서 안았다.

 

좋아해.”

꺼져.”

나를 사랑해줘.”

 

서운은 침을 삼켰다. 자신이 백현에게 늘 듣고 싶엇던 말. 하지만 백현이 절대로 그녀에게 하지 않을 이야기를 지금 동우가 그녀에게 하고 있었다. 이 말에 그녀는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했다.

 

너 나한테 왜 그러니?”

좋아하니까.”

미친 새끼.”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흔들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자꾸만 동우에게 흔들렸다.

 

나를 버릴 거야?”

 

서운은 아랫입술을 더욱 세게 물었다. 하얗게 질리는 입술. 서운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나를 버리지 마.”

 

동우의 말. 서운은 눈을 감았다. 모든 걸 다 처음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 모든 걸 지금 동우가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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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창가에 선 백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채동우. 그 망할 자식이 지금 서운의 집에 있는 거였다. 그 개자식이.

 

괜찮으십니까?”

그래.”

 

영재의 물음에 백현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했으니까. 백현은 다시 커튼을 쳤다.

 

회사로 가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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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엉망이었네.”

 

태화가 회사를 운영한 기록을 확인하던 나은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이런 것을 운영하면서 여태 망하지 않은 것도 대단해. 그 동안 내가 넣은 돈도 꽤 많으니 버틴 건가?”

 

그 많은 돈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엉뚱한 곳에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배임이나 뭐 그런 흔적은 없었다. 정말 경영을 못해서 망한 거였다.

 

대단해. 유태화.”

 

나은은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정도로 뭔가를 망칠 수 있는 사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한서운 좀 유혹하라는 건 어떻게 되는 거야.”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소리가 나게 파일을 덮었다. 그리고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바라봤다.

 

사장 유나은.”

 

이제 조금 더 백현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서운도 일단은 치웠다. 서운은 자신을 다잡았다. 괜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서두르다가 결국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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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나?”

.”

 

유 회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신문을 계속 읽어갔다. 서운은 그렇게 한참이나 유 회장의 곁에 서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유 회장은 신문을 다 읽고 안경을 벗은 후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백 사장은 뭐라고 하던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서운은 그에게 백현의 잘못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을 거였다. 그럴 거라면 그저 백현과 서운이 만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거였다.

 

서운한가?”

아닙니다.”

 

서운이 곧바로 대답하자 유 회장은 묘한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서운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할 일은 없네.”

?”

신문이나 읽지.”

하지만.”

 

서운은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유 회장은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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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 미안.”

 

비서의 목소리에 백현은 정신을 차렸다. 비서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채로 백현을 바라봤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지금 이마에 땀이 꽤나 흥건하신데.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별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지. 회의에 가야 하나?”

. 식품 회사 관련 회의입니다.”

그래. 알겠어.”

 

백현은 눈을 감았다. 나은을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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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화를 부사장으로?”

.”

 

나은의 말에 백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식품 회사를 말아먹은 사람을 부사장으로 다시 임용한다는 게.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왜 안 됩니까?”

 

나은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반문했다.

 

그 동안 식품 회사의 내역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업무 상 배임이라거나 뭐 문제가 될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일을 못한 건데. 일을 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그만 두라는 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손해를 끼쳤습니다.”

손해요? 누구에게요?”

 

백현의 대답에 나은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 잡으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제가 알기로는 그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친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투자금이야 뭐 KW로 다 돌아온 거고. 백 사장이 조금 신경을 쓴 거 정도? 그거 말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요. 아닌가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부사장 임명한다고요.”

안 됩니다.”

 

백현이 망설이지도 않고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왜 안 된다는 거죠?”

가족 경영이니까요.”

가족 경영.”

 

나은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랑 부부셨잖아요.”

과거 형이죠.”

 

백현이 단호히 대꾸하자 나은은 침을 삼켰다. 백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회의를 마치죠.”

 

백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은은 주먹을 세게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백현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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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다 읽었나?”

.”

그럼 식사하러 가지.”

 

서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 회장은 그런 서운을 힐낏 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서운도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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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자는 거야!”

 

백현의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나은은 고함을 쳤다.

 

내가 우습니?”

우스워.”

 

백현은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금 너 행동하는 거 봐. 유나은. 내가 너를 무서워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다면 말을 좀 해줄래?”

당신 그 자리에 있는 거 모두 다 내 덕분이야. 내가 없으면 당신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해. 그거 내가 다시 가지고 올 거라고. 당신이 그따위로 행동하면 당신 그 자리에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그렇게 해.”

 

백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의 이런 말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백현에게다가가 뺨을 때렸다. 백현은 미소를 지은 채로 그런 나은을 보더니 다시 뺨을 때렸다.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당신 때문이야.”

내가 뭐?”

한서운에게 남자가 생긴 거 같아.”

 

순간 나은은 멈칫했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은의 미소에 백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죽일 거야.”

잘 됐네.”

뭐라고?”

이제야 한서운 그 미친 년도 제정신을 차린 거지. 당신 옆에 아무리 오래 있어봐야 달라질 거 하나 없는 거 안 거야. 이제 행복해질 수 있어야지. 자기 혼자 힘으로. 어디서 당신에게 덤벼.”

미친.”

 

백현은 나은을 뒤로 밀어냈다. 나은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백현을 노려봤다.

 

유태화 데리고 올 거야.”

회장님이 허락하셨나?”

아빠도 내가 하자는 거 다 해줘. 결국에는 다 내 말을 들을 거라고. 당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있는 거 아니잖아. 당신 혼자서 잘한 게 아니라 내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라고. 지금 그거 모르는 거니?”

알아.”

 

백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헛기침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꺼져.”

후회할 거야.”

이미 하고 있어. 한서운 놓아준 거.”

미친.”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돌아섰다. 그녀가 그의 방을 나가고 나자 백현은 자리에 앉아서 천장을 바라본 후 침을 삼켰다. 답답했다. 모든 것을 부수고 다 망가뜨리고 싶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젠장.”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가 스스로 나은을 막은 것이 아니었다. 유 회장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절대로 나은을 막을 수 없을 거였다. 나은은 그가 두려워서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유 회장.”

 

그를 괴롭히고 살릴 수 있는 사람.

 

젠장.”

 

백현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걸로는 아무 것도 풀리지 않았다. 백현은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무실 집기들을 집어 던졌다. 그 누구도 그를 말리러 오지 않았다. 백현은 그렇게 한참이나 혼자 난동을 부리고 나서 자신의 방을 바라봤다. 어지러진 방. 그리고 그것은 그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