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독한 연애[완]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16장]

권정선재 2016. 10. 25. 09:53

16

백 사장이 자네를 다시 부를 거 같은가?”

아니요.”

 

서운의 간단한 대답에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은보다 서운이 확실히 백현을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이유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는 회장님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사장님을 배신하는 일이니까요.”

알겠네.”

 

유 회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그 역시 뭔가를 주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그가 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을 바랐다.

 

알겠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굳이 이르게 나올 이유는 없네. 나는 자네가 백 사장 곁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이니까. 그냥 아홉 시까지 오게.”

알겠습니다.”

 

유 회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라도 딸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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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기사. 그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가는지 확인을 해줄 수 있어?”

아니요.”

 

강 기사가 곧바로 대답하자 나은은 입을 쭉 내밀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네보다 높은 사람인데. 내 말을 듣는다고 해서 손해를 볼 것은 없을 거 같은데. 자네는 왜 나를 무시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이해가 안 가네.”

저는 유 사장님의 사람이 아니라 백 사장님의 사람입니다. 제가 백 사장님을 배신할 이유는 없습니다.”

배신이라니.”

 

나은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 그 사람을 배신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강 기사가 생각을 하기에도 나랑 백 사장 사이가 연결이 되는 게 그 사람에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백 사장을 위해서라면 그게 옳아. 안 그래?”

아니요.”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강 기사가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그녀였다.

 

강 기사 이건 아니지.”

뭐가 아니시라는 겁니까?”

 

나은은 손을 들었다. 강 기사는 여유롭게 그녀의 손을 피했다. 나은은 어깨를 들썩이며 분을 풀지 못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제 업무 내용을 이미 파악을 해놨는데 저는 백 사장님의 행적을 조사해서 유 사장님에게 보고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유 사장님께 맞아야 하는 이유도 제 계약서에 없습니다.”

미친 새끼.”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강 기사를 엿 먹이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엿을 먹일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너 지금 후호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너 지금 내가 너를 해고할 위치에 있어.”

아닐 겁니다.”

뭐라고?”

저를 해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백 사장님이십니다. 그리고 백 사장님은 절대로 저를 해고하시지 않을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헛수고 하지 마시죠.”

 

나은은 강 기사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은은 있는 힘을 다 해서 발을 펼쳤지만 강 기사는 여유롭게 뒤로 비켜났고 나은은 휘청거렸다. 강 기사가 그녀를 잡아주지 않아서 그녀는 그대로 넘어졌다.

 

너 이 새끼 뭐하는 거야!”

뭐지?”

 

백현이 나타나자 나은은 얼굴을 붉혔다.

 

당신 이 사람 잘라.”

왜지?”

내 말을 안 들어.”

잘 했군.”

 

백현의 대답에 나은의 얼굴이 덩구 붉어졌다. 백현은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강 기사를 응시했다.

 

가지.”

.”

 

나은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미친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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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아닙니다.”

 

백현의 사과에 강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점점 더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있어. 우리 두 사람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게 된 지금. 더더욱 나를 괴롭히니 견딜 수가 없어. 미안해.”

아닙니다.”

 

강 기사는 백현이 탈 문을 열었다. 백현은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으고 고개를 숙였다.

 

술 마실 줄 아나?”

?”

 

강 기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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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갔다 온 거 아니었어?”

 

동우의 물음에 서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우는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발 이러지 마. 당신이 이러면 나 정말 죽을 거 같아. 나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아. 제발.”

당신에게 그러라고 시킨 사람 아무도 없어. 당신이 멋대로 나를 좋아하는 거면서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래.”

 

동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시킨 게 아니야. 나 혼자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왜 안 되는 건데?”

우리는 잤으니까.”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 아니지? 그건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해. 그건 그냥 하나의 해프닝이야. 고작 하룻밤 잔 것을 가지고 나에 대해서 어떤 지분을 갖고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

아니야.”

그래.”

하지만 당신은 갖고 있어.”

 

집으로 들어가려던 서운의 걸음이 멈췄다. 서운은 그제야 동우의 강아지 같은 표정을 바라봤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한서운.”

싫다고.”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동우의 가슴을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네가 아픈 그 날 너를 지킨 건 나야.”

하지만.”

나를 지켜줘.”

 

백현이 보였다. 동우에게서 백현이 보였다. 서운은 심장이 떨렸다. 그녀가 보호해야 할 아이였다. 동우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는 백현이 있었다. 그런데 동우가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나를 버리지 마.”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가 콱 막혀서 아무런 사고도 되지 않았다. 숨이 막혔다. 서운은 동우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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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아닙니다.”

 

백현의 사과에 강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없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도 아니었다. 백현은 꽤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제 서운까지도 그의 곁에 없었다.

 

저는 운전을 해야 하니 그냥 곁에서 있겠습니다.”

대리 부르면 돼.”

하지만.”

같이 마시지.”

 

강 기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결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백현은 이미 익숙하게 주문을 마친 후였다. 강 기사는 한숨을 토해내고 그의 옆에 앉았다.

 

자네 이름이 뭐지?”

아직도 제 이름을 모르셨습니까?”

그래.”

 

강 기사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단 한 번도 그는 자신을 백현에게 소개하지 않았으니까.

 

강영재입니다.”

영재. 평범하군.”

.”

 

백현은 나온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영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멍하니 있었다. 백현은 그를 응시했다.

 

왜 그러지? 술을 못 하나?”

그게. 아직 술을 몇 번 마신 적이 없습니다.”

자네 나이가 몇이지?”

스물하나입니다.”

 

영재의 대답에 백현은 미간을 모았다. 그러니까 그의 곁에서 그를 보좌한 것이 바로 스무 살이라는 거였다. 그런 풋내기를 붙이다니. 유 회장도 우스운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기라도 한 건가.

 

유 회장의 명령은 없었나?”

?”

아니야.”

 

다행히 영재는 백현의 차가운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백현은 영재의 술을 마저 들이키고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럼 너는 콜라?”

? .”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이런 것도 좋군. 나 혼자만 취하는 것도. 늘 나는 취하는 쪽을 케어하는 쪽이었는데 말이야.”

한 비서님 말씀입니까?”

그래.”

 

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한심해 보이나?”

아닙니다.”

거짓말.”

 

영재의 대답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백현은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술을 또 단숨에 들이켰다.

 

속이 타는 거 같군.”

그럼 그만 드시죠.”

아니.”

 

백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거였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하지만.”

자네는 모르겠지.”

 

백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백현의 태도에 영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나온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약간 썼다. 그런 영재의 표정에 백현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럼 콕이야.”

럼 콕이요?”

이름처럼 럼이 들어갔지.”

.”

 

당했다. 백현은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죽었어.”

?”

친구가 죽었어.”

 

백현의 말에 영재는 멍해졌다.

 

그나마 내게 친구처럼 대하는 유일한 놈이었어. 승무원이었는데 죽었대. 오늘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군. 실종이래.”

그럼 살아있는 거잖아요.”

 

백현은 영재를 응시했다. 농담을 하는 건가 했는데 영재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죽어.”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친구라며서요.”

 

백현은 침을 삼켰다.

 

친구라면 살아있다고 생각을 해야죠. 친구라면 그렇게 믿어야죠. 사장님. 그렇게 믿으세요. 믿어야 합니다.”

친구가 되어줄래?”

 

백현의 말에 영재는 멍해졌다. 백현은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