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나랑 놀래?”
“꺼져.”
서운에게 치근덕대던 사내는 서운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에도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붙었다.
“에이. 그러지 마. 여기에서 그렇게 도도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다른 남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비키라고 했을 텐데?”
“이런 건방진 게.”
남자는 곧바로 서운의 손을 거칠게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서운은 그의 힘을 이용해서 그를 넘겨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음악이 멈췄다. 클럽의 모든 시선이 이리로 쏟아졌다.
“저, 저 여자 뭐야?”
“오빠. 괜찮아?”
사내와 같이 온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곧바로 서운을 노려봤다.
“너 뭐야?”
“네 남자 간수 잘해. 엉뚱한 사람에게 그렇게 덤벼들게 하지 말고. 별 거지 같은 게 이러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하다.”
“뭐 거지?”
사내는 곧바로 일어나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서운에게 손을 내리치는 순간 동우가 앞을 막았다.
“뭐 하는 겁니까?”
“넌 또 뭐야?”
사내는 그대로 동우에게 덤벼들었다. 동우는 옆으로 비켜나면서 사내에게 다리를 걸었고 사내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동우는 서운의 손을 잡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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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직도 정식이 안 만날 거야?”
“그 새끼 이야기를 왜 해?”
백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지웅을 응시했다. 지웅은 여유를 지킨 채로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바라봤다.
“그래서 너랑 서운 씨는?”
“관심 갖지 마.”
“여전히 그 모양이군.”
지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너 그래도 나 아니면 너 찾아오는 사람은 있냐?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친구 관리 하지 마라. 뭐 나도 친구라고는 너랑 정식이 녀석 밖에 없으니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겠지만. 아 얼마 전에 원우 연락을 받기도 했는데. 원우. 너 원우 기억나지? 그 있잖아. 키 크고 꽤 젠틀했던 애.”
“관심 없어.”
백현의 대답에 지웅은 입을 내밀고 커피를 들이켰다.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라. 나는 내 친구가 좋아서 일부러 너를 찾아온 건데 너무 차가우니까 서운하잖아.”
“내가 너한테 찾아오라고 한 건가?”
백현의 차가운 물음에 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다닐 적부터 친구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던 쪽은 자신이었다. 백현은 그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네 사람이 어울린 것은 지웅이 있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래도 이런 회사 사장 부럽다.”
“나는 네가 부럽군.”
“내가?”
백현의 말에 지웅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뭐가 부러워?”
“자유로우니까.”
“자유롭기는. 남들은 비행기 타고 가면 놀러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여기에서 시드니까지 걸어가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돼. 사람들이 뭐 그렇게 바라는 건 많은지. 그나마 나는 남자라서 그 시선 강간이라는 걸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여성 승무원들은 진짜 엄청 힘들어 해. 뭐. 나도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냐는 이상한 아주머니들이 계셔서 귀찮기는 하지만 말이야.”
지웅은 혼자 주절주절 떠들며 커피를 들이켰다. 백현은 그런 지웅의 눈을 바라보더니 엷게 웃었다.
“그래도 너는 다른 것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잖아. 너 하나만 신경을 쓰면 되는 거니까. 자유로운 거지.”
“너는?”
지웅의 물음에 백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웅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살짝 물었다.
“야. 백현. 사람이 너무 힘들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괜찮은 거야. 그러면 많은 게 풀릴 테니까.”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는.”
“그러게.”
백현의 지적에 지웅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이 우연히 원우가 연락이 되기도 했고. 내일 비행을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
“마지막?”
“아. 말 안 했나?”
백현의 반응에 지웅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승무직은 그만 하고 지상직할까 고민 중이야. 일단 회사에 신청을 했는데 회사에서 뭐라고 할지는 모르지. 뭐 사무장 급 되는 사람이 그것도 남자가 그러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회사에서 어떻게 처리를 할지 모르겠다. 아마 그냥 나가라고 할 수도 있고. 나 그만 두면 네가 취업 시켜줄래?”
“지랄.”
“그렇지?”
지웅은 웃음을 터뜨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럼 간다. 너 너무 그러지 말고. 그래도 친구 보러 왔는데 표정 좀 풀어라. 가는 사람 기분 안 좋게.”
“남이사.”
“하여간. 저 싸가지.”
지웅은 입을 쭉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지금 정식이랑 맥주 하러 갈 거야. 너 정말 안 가는 거지? 너희 두 사람 그래도 친구인데 좀 만나지 그러냐?”
“친구 같은 소리.”
“그래.”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고 손을 흔들었다. 백현은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지웅은 마지막까지 미소를 지은 채 멀어졌다.
“친구?”
백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동창인 주제에 친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백현은 눈을 꼭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남은 식은 맛없는 커피를 모두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봤다. 지웅이 가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자리라.”
백현은 혀로 입 안쪽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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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거야?”
“너야 말로 뭐 하는 거야?”
서운은 자신을 잡고 있는 동우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 해서 동우의 얼굴을 때렸다.
“개새끼.”
“가지 마.”
동우는 멀어지는 서운의 손을 다시 잡았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동우는 손에 힘을 줬다.
“한서운.”
“네가 뭔데? 도대체 네가 뭔데 거기에서 나를 도와줘? 내가 너 따위 거의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나 너처럼 거지 같은 거 도움 받고 싶지 않아. 너는 아무 것도 아닌 새끼인데. 도대체 왜 내가 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그래.”
서운의 차가운 말에도 불구하고 동우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운을 품에 안았다.
“네가 지금 힘든 건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푸는 건 잘못된 거야.”
“네 설교 들을 기분 아니야.”
“한서운. 제발.”
동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서운은 그제야 침을 삼켰다. 동우는 가만히 숨을 내쉬면서 아랫입술을 물었다.
“네가 다치는 게 싫어. 네가 사라질까봐 무서워. 네가 망가질까봐. 다칠까봐. 너무나도 공포스러워.”
“이거 놔.”
“난 너를 사랑해.”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동우의 대답에도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동우를 응시했다.
“어차피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 같은 걸 도대체 누가 좋아하겠어? 안 그래?”
“내가 좋아한다고. 한서운. 너를 내가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서운의 차가운 물음에 동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아무 것도 못 해. 나 너처럼 가난한 사람은 너무 싫거든. 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 내가 백현. 좋아하면서도 왜 그렇게 만든 건데. 내가 가질 거야. 더 많은 것을 가지게 해서 내가 가질 거라고.”
“그러면 행복하니?”
“행복해.”
서운의 대답에 동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지만 서운은 뒤로 물러나며 그의 손을 피했다.
“만지지 마.”
“한서운.”
“너 따위가 감히 나를 동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너는 나에게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야. 감히 네가 동정할 정도로 한심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도대체 네가 왜 나를 동정하는 거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그런 서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운은 그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봤지만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네가 뭔데. 네가 도대체 뭔데. 네가 왜 나를 동정해. 너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게. 아무 것도 없는 게. 감히 어떻게 나를 동정해!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해.”
동우는 서운의 허리를 안았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그런 동우를 내려다봤다. 동우의 머리로 서운의 눈물이 떨어졌다.
“거짓말.”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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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저 년은 공부도 안 하고.”
화자의 잔소리에 서운은 입을 내밀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자의 눈에는 자신보다 백현이 우선이었다.
“엄마. 예전에 나보고 뭐라고 했어? 그냥 자기 밥값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졌어?”
“백현이 봐라. 백현이는 장학금도 받아오고. 네 년은 지금 네 년 밑으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고나 그런 소리 지껄이는 거야?”
“엄마잖아.”
“엄마?”
화자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빌어 처먹을 년이 내가 너 같은 년을 낳은 것을 후회를 하고 있다. 애초에 백현이 같은 것을 낳았으면 돈도 안 들어가고 얼마나 좋았을 텐데. 너처럼 거지 같은 것을 내 배로 낳아서. 이것이 뭔 고생이냐?”
화자의 대답에 서운은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화자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이번 시험 성적표는 왜 안 가지고 와?”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너는 도대체 학교를 왜 가냐? 그냥 대충 돈이나 벌어와. 나중에 백현이가 좋은 학교 간다고 하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나는 너 안 보낼 거야. 그래서 백현이 좋은 학교에 보낼 거다.”
“엄마는 뭐가 더 중요해?”
서운의 물음에 화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서운에게 다가오더니 있는 힘을 다해 뺨을 때렸다. 서운은 뺨을 움켜쥐었다.
“그런 약해 빠진 소리를 해대니까 네가 안 되는 것이다. 너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년이여.”
“엄마.”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아!”
화자는 윽박을 질렀다. 그런 그녀의 우악스러움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현이 봐라. 학교 끝나고도 공부하고 들어오는데. 너라는 년은 도대체 뭐 하는 년인지 모르겠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집을 나섬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서운은 그렇게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한참이나, 한참이나 몸을 둥글게 말고 골목 어귀에 숨어 있었다. 그러게 한 밤이 되고, 백현이 지친 걸음을 끌고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와?”
“기다렸어?”
하얀 이를 드러내는 백현의 미소. 서운은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백현의 목을 안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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