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널 사랑하지 않아
“엄마 맥주 마실래?”
“맥주?”
우리의 제안에 은화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의 맥주는 즐거울 거였다.
“팀장님도 부를까?”
“어?”
“아니. 어머니가 술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해서 팀장님 매일 혼자서 편의점 가서 마시시거든.”
“어머니.”
은화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조실 언니 어머니라고 할 적마다 나는 뭔가 언니한테 하나 뿐인 딸을 빼앗긴 기분이 드니까 다른 걸로 부르지 않을래?”
“그러면 뭐라고 해?”
“나야 모르지.”
은화의 대답에 우리는 그녀에게 팔짱을 끼고 몸을 더 가까이 가져갔다.
“엄마 사랑해.”
“얘가 왜 이래.”
은화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우리를 행복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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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 가세요?”
“됐어.”
정식의 모친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서실도 무슨 술을 이 시간에 마신다고 그러니?”
“다 딸이랑 친하게 지내려고 그러는 거죠. 어머니도 가시죠.”
“나는 됐어.”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의 모친은 행복한 표정으로 그런 정식을 바라봤다. 정식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게 좋았다.
“그래도 너무 늦지 마. 그 집에 여자만 사는 집이야. 괜히 이상한 소문 나게 하지 말아. 알았지?”
“네.”
정식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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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조실 언니가 그래?”
“네. 저보고 남자 좋아하냐고 물었다니까요. 하긴 서우리 씨도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은화가 자신을 바라보자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 팀장님이 연애 한 번 안 하고 그러니까 괜히 그런 소문이 막 돌고 그러는 거지. 그게 내 탓은 아니지.”
“다 너를 짝사랑해서 그런 거라잖아. 너는 아무리 내 딸이지만 눈치가 그렇게 없을 수가 있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정식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고맙습니다.”
“응?”
정식의 인사에 은화가 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나이도 많고 싫으실 텐데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주시는 거요.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야 말로 고맙지. 이 물건 애인이 되어주는 거. 그리고 그렇게 오래 지켜봐준 거.”
“물건은.”
우리는 입을 죽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은화가 정식을 인정하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은 그녀였다.
“아 술 떨어졌다. 내가 사올게.”
“같이 가죠.”
우리가 일어나자 정식도 따라 일어났다. 은화는 하품을 하며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따라 일어섰다.
“너희 더 마실 거면 나가서 마셔.”
“에? 엄마 왜?”
“나 이제 피곤해. 늙었잖아. 둘이 마셔. 엄마는 이제 두 사람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조실 언니 아들. 우리 좀 잘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정식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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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되게 팀장님을 좋아하나 봐요.”
“또 팀장님입니까?”
“팀장님이니까요.”
우리의 대답에 정식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란히 걷는 밤길은 꽤나 기분이 좋았다. 공기도 맑고 걷기도 편했다. 차로 가면 모를 그런 여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편안했다.
“정말.”
정식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예뻐요.”
“알고 있어요.”
“말도 안 돼.”
정식이 놀랐다는 표정을 짓자 우리는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식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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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있어?”
“어쩐 일이야? 애들이랑 있는 거 아니었어?”
“술 떨어져서. 애들은 술 가지러 갔어. 언니는 혼자서 뭐해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심심하기는.”
정식의 모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화는 그런 정식의 모친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막 부친 전이 있었다.
“이게 뭐야?”
“애들이랑 먹다 보니까 언니 생각이 나더라고. 애들 심부름을 보낼까 했는데. 그래도 늙은이끼리 어울리면 좋잖아요.”
“자기가 왜 늙은이야? 나만 늙은이지?”
“이 언니 뭐라는 거유? 내가 늙었지. 언니. 남들이 보면 내가 언니보다 한참 더 나이가 많은 줄 알아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런데 나 들어오라고 안 해?”
“맞네.”
정식의 모친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화는 미소를 지으며 정식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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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학교 다닐 적에 친구가 그렇게 넷이었다는 거죠?”
“뭐. 친한 친구라고 하면요?”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발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그런 식의 친구도 없어요.”
“진짜요?”
“네.”
우리는 혀를 내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대 만나던 애는 재필이. 걔 하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나를 숨겨야 하니까요. 그거 되게 힘들거든요. 내가 아닌 척 하는 거. 그거 생각보다 되게 어려워서. 그거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죠.”
우리의 말에 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이 정말로 공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것은 고마웠다.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자격지심이 되게 심한 애거든요. 그래서 뭔가. 겁이 나고 그랬어요. 내가 하는 게 정말 좋은 일인가? 내가 정말 잘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시나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가 다른 애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하고. 막 그랬거든요. 애들하고 너무 친해지면 제 비밀을 애들에게 모두 다 말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하고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정식은 심호흡을 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가만히 우리를 품에 안았다.
“잘 컸다. 서우리.”
“뭐야? 그게.”
“잘 컸다고요.”
정식의 목소리는 묘하게 울렸다.
“정말 잘 컸다. 그렇게 혼자서 힘든데도 지치지 않고. 이렇게 바르게 컸잖아요. 어머니 속도 하나 안 썩히고.”
“내가 어머니 속을 썩였는지 아닌지 팀장님이 도대체 어떻게 안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실까요?”
“그러네요. 모르겠네요.”
정식의 빠른 포기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가볍게 그의 가슴을 때렸다. 정식은 울상을 지으며 가슴을 만졌다.
“돌주먹. 이래서 친구가 없죠?”
“뭐라고요?”
우리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식은 그런 그녀를 그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 마음이 풀립니까?”
“네.”
우리는 혀를 살짝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물론 무조건 웃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늘 웃고만 있지는 못하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웃으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린다는 거? 그리고 친구 없으면 어때요? 대신 저랑 더 오랜 시간 보낼 수 있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정식은 부드럽게 그 손을 쥐었다. 그 온기. 약간의 땀. 이것까지도 좋았다.
“처음에 걷자 그럴 때는 짜증이었는데.”
“그래도 걸으니까 좋죠?”
“네. 걸으니까 좋아요.”
“야. 서우리.”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재필이 어깨를 들썩이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식이 나서려고 하자 우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
“팀장님 괜찮아요.”
“하지만.”
“편의점 혼자 가실 수 있죠?”
“알겠습니다.”
정식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우리를 믿어주는 거였다.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웠다. 정식은 재필을 한 번 노려보고는 멀어졌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너 뭐야?”
“너야 말로 뭐야?”
재필의 말에 우리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너랑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 힘든데 너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느냐고. 나 보미랑 헤어졌어. 아니지. 만나지도 못했어. 그런데 너는 어떻게 저 늙은 남자랑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냐? 나 때문이야?”
“뭐라고?”
우리는 웃음이 나왔다. 재필의 나 때문이야? 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니?”
“너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너를 밀어내서.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럼 저런 남자를 왜 좋아해?”
“좋으니까.”
우리의 간단한 말에 재필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더니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저 남자가 아니면 내게 돌아올래?”
“뭐?”
“그럼 내가 말할게.”
재필의 말에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우리는 머리를 마구 헝클고 한숨을 토해냈다.
“너 미쳤니?”
“내가 뭐가 미쳐?”
“팀장님이랑 너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네가 돌아오란다고 내가 너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이야?”
“나는 헤어지자고 한 적 없어.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 그냥 시간을 좀 갖자고 한 거잖아. 그게 문제야?”
“시간?”
우리는 코웃음을 치며 재필을 노려봤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일곱 살 서우리는 미친년이었나 보다.”
“뭐라고?”
“너 같은 새끼를 좋아하고.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돌은 년이야. 너한테 내가 12년이라는 시간을 썼다는 거.”
“서우리.”
“팀장님 아니라도 너에게 돌아가지 않아.”
우리의 단호함에 재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 무슨 말이야?”
“아직도 몰라?”
“뭘 몰라?”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우리의 말에 재필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우리는 그런 재필은 원망스럽게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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