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왔어?”
“비켜.”
동우는 서운의 날카로운 태도에 침을 삼켰다. 평소의 서운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상태였다. 동우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일이야?”
“너는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니?”
“뭐라고?”
동우는 상처를 입은 표정을 지었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혀로 송곳니를 만지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랑 나랑 뭐니?”
“연인.”
“연인?”
동우의 대답에 서운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동우를 노려봤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태도에 동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물러서려다 애써 자리를 지켰다.
“네가 왜? 네가 도대체 왜 나랑 연인 거니?”
“우리는 지독한 연애를 하고 있는 거니까. 내가 당신에게 연애를 하자고 이야기를 한 거니까.”
동우의 대답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어 동우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는 거야?”
“잊은 거야?”
동우의 간절한 말. 서운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대로 동우에 더 이상 엮일 수는 없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의 곁에서 너무 편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 마.”
동우는 한 걸음 다가왔고 서운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동우는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고 그대로 서운의 다리를 안았다.
“나를 버리지 마.”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야.”
서운의 덤덤한 말에 동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은 그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오히려 동우는 덤덤한 모양이었다. 서운은 그를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흔들렸다.
“네가 뭐니? 도대체 너 뭐야?”
“사랑해.”
“미친 새끼.”
서운의 욕설에도 불구하고 동우는 서운의 다리를 더욱 꼭 안았다. 서운은 동우의 머리를 계속 때렸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다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는 가만히 동우의 머리를 품에 꼭 안았다.
“나한테 이러지 마. 제발. 채동우. 나에게 이러지 마. 네가 이래도 나는 너를 볼 수 없어. 나는 백현에게 갈 거야.”
“가.”
“채동우.”
“그 사람이 너를 원하면 나는 언제라도 보낼 거야. 백현이 너를 선택하면 나는 당신을 보낼 거야.”
“키스했어.”
서운의 고백에 동우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숨이 멎는 느낌. 동우는 서운을 상처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시선에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거짓말.”
“가.”
“싫어.”
동우는 눈은 공허했지만 오히려 팔에 준 힘은 더 세게 쥐었다. 서운은 물끄러미 그런 동우를 바라봤다.
“나 너 싫어.”
동우는 가만히 서운의 눈을 바라봤다. 서운은 동우를 밀어냈다. 동우는 밀려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모든 힘을 잃은 후였다. 그는 서운이 밀어내는 대로 밀려났다. 그리고 동우가 나가고 나서 서운은 문을 닫았다.
“이러지 마.”
서운은 고리까지 모두 걸고 나서 손으로 문을 만지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문에 몸을 기대서 그대로 주저앉아 둥글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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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운.”
동우는 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그 문에 손을 댔다. 서운의 체온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나 버리지 마.”
동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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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사장님이 돈을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영재의 말에 서류를 넘기던 백현의 손이 멈췄다. 백현은 운전석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뭐라고 한 거지?”
“유 사장님이 저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지?”
“사장님의 친구가 되라고요.”
“친구?”
낯선 단어. 백현은 그 단어를 다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은이라면 어떤 의미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같은 소리. 그 여자는 지금 나를 감시하라고 그런 소리를 한 거군. 그런데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뭐지?”
“친구니까요.”
영재의 별 것 아니라는 말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영재는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정면만 볼 따름이었다. 그런 영재의 태도에 백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 같은 소리. 보나마나 유나은 그 사람은 나를 감시하라고 너에게 돈을 준 거로군. 도대체 왜 받지 않은 거지? 그걸 받는 것이 훨씬 더 나을 테데 말이야. 친구 같은 헛소리 말고 말이야.”
“그거 말고 다른 이유 없습니다.”
영재의 덤덤한 대답에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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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요?”
“그래.”
유 회장의 말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왜?”
“아버지 잊으셨어요? 저에게는 백현 씨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선을 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괜히 그러다가 백현 씨가 이상한 오해 같은 것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오해?”
유 회장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한 표정에 나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유 회장은 물끄러미 그런 나은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제까지 그리 한심하게 행동을 할 것이냐?”
“아버지.”
“백 사장은 너를 보지 않을 것이야.”
“아니요.”
나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유 회장은 한숨을 토해낸 후 나은에게 내밀었던 사진을 다시 거두었다.
“네가 그리 미련하게 구니 오히려 백 사장이 더더욱 너를 싫어하는 것이야. 모든 사내들은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여자를 바라지 않아. 그런데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그 녀석을 숨도 못 쉬게 하려는 것이냐?”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갈 여유가 없을 테니까요.”
나은의 명랑한 대답에 유 회장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은은 미소를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내 지분을 태화에게 줄 거다.”
나은은 순간 멈췄다. 그리고 뭔가 무서운 것을 듣기라도 한 듯 싸늘하게 웃었다. 유 회장은 덤덤할 따름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너도 알다시피 그 녀석은 멍청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그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셔야죠. 그런데 오빠에게 그 지분을 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너는 내 지분이 없더라도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아이지만 태화는 그럴 수 없는 아이다. 내가 그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거 하나다. 네가 나중에 태화 녀석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너희는 동기 간도 아니니 그나마의 정도 없을 것 아니냐.”
“그래도 이건 아니죠.”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애써 한숨을 토해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저에게 왜 이러세요?”
“선을 봐.”
“아버지.”
“그럼 선을 볼 때마다 한 주씩 그 기간을 유예하마.”
나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유 회장을 노려봤지만 유 회장은 그런 딸을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볼 따름이었다. 나은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수 없어요.”
“모두 다 줄 게다.”
“아버지.”
“한 주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나는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백 사장도 사표를 낸 상태다.”
“사표요?”
나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백 사장은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이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 보거라. 너랑 백 사장은 이런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도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더냐?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너는 멍청하게도 그 미련이라는 녀석을 붙들고 있을 것이냐?”
“네. 잡고 있을 거예요.”
“네가 선을 본 남자 중에 한 명을 결혼. 아니지 연애라도 한다고 한다면 내가 그 녀석과 헤어지기 전까지는 유예하마.”
나은은 숨을 크게 쉬면서 머리를 굴렸다. 일단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유리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유 회장은 그런 나은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기다렸다. 나은은 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선을 볼 거냐?”
“아니요.”
“그럼 뭐가 좋다는 거냐?”
“남자를 하나 주워 올게요.”
나은의 도발적인 언사에 유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냉소적인 유 회장과 다르게 나은은 꽤나 진지한 태도였다.
“그거라면 아버지도 만족을 하실 것 아닌가요?”
“길을 가는 사내라도 납치라도 할 것인가?”
“그것도 할 수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할 것 없고 제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남자가 있을 거예요.”
유 회장은 미간을 모으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은은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태화는 제 밑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더 이상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지분은 모두 제 것이 되어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KW는 사라질 테니까요.”
나은은 밝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유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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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운 나와.”
늦은 밤. 백현의 소리. 서운은 눈을 떴다.
“한서운 나오라고!”
서운은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썼다. 나갈 수 없었다. 나가면 안 되는 거였다.
“백현.”
서운을 흔드는 사람. 서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서운 나와라.”
백현의 떨리는 목소리. 서운은 심호흡을 하고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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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동우는 머리가 멍해졌다. 백현이었다. 이제 겨우 서운이 그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도대체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문을 열고 나선 동우를 보며 백현은 싸늘하게 웃었다.
“엿듣는 것이 취미인가?”
“이 시간에 복도에서 떠드는 주제에 나보고 엿듣는 거라고?”
“아 그래.”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동우는 그런 그의 앞을 막아 선 채로 서운의 현관을 등으로 버텼다.
“돌아가.”
“비켜.”
“돌아가라고.”
“비키라고 했어.”
백현의 눈이 하얗게 빛났다. 동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여기에서 밀려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밀려나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너는 한서운을 가질 자격이 없어.”
“내가 가질 거야.”
“백현.”
“내가 한서운 가질 거라고.”
백현의 이 고백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서운의 집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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