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백현에게 갈 거야?”
“몰라.”
아침부터 와서 바닥에 앉아있는 동우를 보며 서운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우는 그녀에게 다가와 침대에 턱을 올렸다.
“나를 버리지 마.”
“그 사람에게 가도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백현은 나를 미워해.”
동우의 대답에 서운은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고 다시 침대에 누워 손을 뻗어 동우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내 강아지.”
“네가 좋아.”
“내 강아지.”
“너를 사랑해.”
“내 강아지.”
“네 곁에 있고 싶어.”
서운은 가만히 동우를 응시했다. 그리고 갑자기 손톱을 세워서 동우의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동우는 약간의 신음도 훌리지 않은 채로 그저 미소를 지으며 서운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너는 내가 좋니?”
“좋아.”
“너는 나를 사랑하니?”
“사랑해.”
“너는 내 곁에 있고 싶니?”
“있고 싶어.”
서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우는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와서 무릎에 턱을 올렸다. 서운은 가만히 동우의 머리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만지고 놀았따.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로 그의 머리를 껴안고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
“힘들어.”
“그럼 다 내려놔.”
“아니.”
서운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어. 내가 여기에서 멈추면 나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백현. 백현 그 사람도 결국 멈추게 될 거야. 나는 백현을 지켜주기로 했어. 그 사람이 혼자 버틸 수 있게 할 거야.”
“백현이 혼자서 설 수 있게 되면. 그러면 나를 봐줄래?”
“그래.”
서운의 간단한 대답. 동우는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묘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미안.”
동우의 사과.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동우를 밀어냈다. 그녀의 머릿속도 꽤나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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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백현은 묘한 눈으로 영재를 바라봤다.
“그래서?”
“네?”
“그걸 나에게 다 말을 하는 이유는 뭐지?”
“제 상사는 백 사장님이십니다.”
영재의 대답. 백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순수한 뜻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유 사장이 뭐라고 하지?”
“자신과 사귀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영재의 대답에 백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유나은이 다른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말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백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릎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허벅지가 아파올 때쯤 그는 다시 영재를 응시했다.
“나 때문인가?”
“네.”
영재는 이번에 순순히 대답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창에 머리를 기댔다. 서늘한 기운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거지?”
“유 사장님 정도면 훌륭하신 분 아닙니까?”
“제대로 미친 여자지.”
백현의 대답에 영재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백현은 그런 영재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 후 고개를 저어싿.
“그 자리에 가고 싶나?”
“아닙니다.”
“거짓말.”
백현은 자세를 고쳐 잡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영재에게 나른하게 물었다.
“너도 나처럼 되고 싶잖아.”
“아닙니다.”
“거짓말.”
“정말입니다.”
백현의 목소리와 다르게 영재의 목소리는 아무런 떨림도 없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더 많은 돈을 원하는데? 그 기사라는 거 보다 더 행복하지 않나?”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사장님의 친구가 아니니까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대답. 백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뭘 제안헀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해.”
영재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그 여자에게는 도망이라도 갈 구석이 필요한 거야. 내 눈치 보지 말고 해. 그 여자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영재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핸들을 잡은 그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영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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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부르지 않아도 갈 건가?”
“아닙니다.”
서운의 시원한 대답. 유 회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도대체 어느 순간에 갈 거지?”
“백현. 그 사람이 부르면 갈 겁니다.”
“사표를 냈네.”
“돌이킬 겁니다.”
유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백현을 생각하는 서운을 보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회장님이십니다.”
“나은이의 아빠야.”
서운은 유 회장의 무슨 말인지 잠시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나은이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인가? 나는 자네를 죽일 수도 있어.”
“죽이세요.”
“같은 말을 하는군.”
유 회장의 말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백현은 다르고 싶었지만 다를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백 사장은 절대로 자네를 손에서 놓지 않을 걸세. 그래서 사표를 낸 거겠지. 하지만 오늘 출근을 했다고 하더군.”
“어느 한쪽도 쉬이 고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말일세.”
유 회장은 서운이 준 생강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군.”
“고맙습니다.”
“직접 만든 건가?”
“네.”
서운의 대답에 유 회장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팔걸이를 어루만지더니 다시 서운을 응시했다.
“만일 백 사장에게 돌아가더라도 나에게 이 생강차를 계속 만들어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대답을 잘 해서 좋군.”
유 홰장은 다시 생강차를 마셨다. 그 묘한 알싸함에 유 회장은 가만히 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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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만 두면 그 자리 내가 할 거야.”
“하십쇼.”
백현의 덤덤한 대답에 태화는 미간을 모았다. 유 회장의 말처럼 백현도 꽤나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너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던 거 아니야? 그런데 지금 그 자리를 그냥 내놔도 되는 거라고?”
“네.”
백현의 간단한 대답. 태화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내 차가운 눈으로 백현을 노려봤다.
“미친 새끼.”
“돌아가시죠.”
“한서운 때문이냐?”
태화의 말에 백현의 손이 멈췄다. 태화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그런 백현을 노려봤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지금 네가 앉아있는 그 자리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뭐가?”
백현이 갑자기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자 태화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
“제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오히려 더 좋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마 여기에 와서 이러시는 것을 보니 유 회장님께서 뭔가 다른 말씀을 하신 모양이군요. 제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이 자리를 유 회장님이 꽂을 수 없다. 뭐 대충 그런 말씀이라도 지금 드리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백현이 정곡을 찌르자 태화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백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다 보이게 행동을 하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경영에는 때로는 숨기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죠.”
“나를 가르치려는 거야?”
“네. 뭐 필요하다면.”
백현의 심드렁한 대답에 태화는 숨을 삼켰다. 백현은 혀로 송곳니를 가만히 만지다가 다시 태화를 바라봤다.
“유나은에게 모든 것을 돌려놓으라고 하세요.”
“뭘?”
“한서운.”
백현의 입에서 나온 서운의 이름에 잠시 멈칫했던 태화가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여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당신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백현의 물음에 태화는 순간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백현은 진지한 눈으로 그런 태화를 응시했다.
“나에게는 그 한서운이라는 여자가 너무나도 중요해. 그러니까 나는 그 여자를 손에 넣고 싶어.”
“그러면 뭘 해줄 거지?”
“당신을 죽이지 않겠어.”
백현의 말이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기에 태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백현은 침을 꿀꺽 삼킨 채로 미간을 모았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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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나은의 말에 태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여기 내 방이었어.”
“이었지.”
나은의 정확한 대답에 태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은은 한숨을 토해내고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여기에 와서 뭘 하려는 거야?”
“한서운 돌려줘.”
“뭐라고?”
나은의 목소리가 묘하게 갈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물끄러미 태화를 응시하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럴 수 없어.”
“지주회사 사장을 내놓으면 피라냐들이 물어뜯을 거야. 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그 회사는 내 회사야.”
“오빠 회사가 아니지.”
나은은 기다란 손톱을 테이블에 긁었다.
“그건 내 회사야.”
“유나은.”
“너는 자격이 없어.”
태화는 그녀의 차가운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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