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집을 산다는 게 너냐?”
“네.”
지광은 영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그리고 부동산 아주머니를 노려봤지만 따로 할 말은 없었다.
“돈은 어디에서 났어?”
“그게 중요해요?”
부랴부랴 은행에 서류를 마련하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겨우 마련한 거였다. 지광은 미간을 모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돈이 너무 적은 거 같아.”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 저런 게 아버지라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는 거면서 그 집을 가져가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바람? 어디서 이게!”
지광은 손을 올렸다가 곧바로 보는 눈이 많아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의 곁에 있는 정식을 응시했다.
“그쪽은?”
“서우리 씨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지광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무튼 잔금은 마저 대출이 되면 치르기로 하고. 아버지 엄마가 이번에 아빠 고소하기로 했어요.”
“고소?”
“네. 합의 이혼 4주 아직 안 지나서 내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긴 거니 귀책 사유가 있는 거겠죠.”
“그게 무슨?”
지광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이 집을 나가시면서 엄마한테 재산도 하나 안 주셨는데 이번에 제대로 분할을 받으실 건가 보더라고요. 적어도 아버지 재산의 절반은 엄마가 받으실 자격이 되는 거겠죠.”
“절반?”
“보통 그렇잖아요.”
지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를 바쁘게 굴리고 이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그런 지광이 징그러웠다.
“뭘 바라는 거냐?”
“집값. 1억 5천으로 내려주세요.”
지광은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합의 이혼이라고 생각을 하시라고요. 급하게 내놓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절반 지금 가져갈게요.”
우리의 말에 지광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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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뭐가 고맙습니까?”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가만히 그의 체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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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일단 집이 팔리면 그건 허위 매물 같은 거니까. 아빠가 내 명의로 돌리기로 했고, 돈은 내가 차근차근 갚는다고 했어.”
“다행이다.”
은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우리 여기에서 그냥 사는 거지?”
“네.”
은화는 우리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우리 딸.”
“내가 한 건 뭐 없어. 팀장님이 다 하신 거지. 그냥 고맙다고 생각이 들어요. 팀장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거기에서 아빠가 또 나를 때렸을 거야. 그런데 남자가 있으니까 못 그러더라고요. 이상하지?”
“원래 그런 양반이다.”
은화는 혀를 차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큰 소리를 치다가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찌 그리 주눅이 들어있는 것인지. 그래서 나는 짠하게 생각을 한 것도 있었어. 그 사람이 자기 속내를 보일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거니까.”
“엄마는 보살이야?”
“그러게.”
은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은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은화의 삶도 많이 힘들 거였다.
“엄마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그 동안 엄마를 몰랐던 거.”
“그게 무슨.”
은화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가만히 우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말처럼 잘 커준 게 너무 고마워.”
“그렇지? 내가 좀 잘 컸지.”
우리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은화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그나마 한시름 넘긴 것이 너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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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그렇게 바로 줘도 되는 겁니까? 상속세 같은 거 내려고 하면 괘나 귀찮은 일이 생길 텐데요.”
“아니에요.”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정식에게 빌렸던 돈을 그대로 다시 이체했다. 정식은 입금을 확인하고 입을 내밀었다.
“이거 서운합니다.”
“왜요?”
“이거 빌미로 뭔가 소원을 빌려고 했는데.”
“네?”
우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정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수상해요.”
“수상할 거 없습니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쭉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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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말을 안 해?”
“어떻게 말을 해?”
서운해하는 소망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말까지 하는 건 좀 그렇잖아. 뭔가 부끄러운 것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는 뭐가 부끄러워.”
소망은 영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너한테 서운하다. 네가 그렇게 믿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인 거니까 말이야.”
“누가 그렇대?”
우리는 소망을 달래주려 부드러운 어조로 반문했다.
“네가 너무 좋아. 너는 내 친구니까. 그런데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소중한 친구를 잃을까봐. 그래서 말을 못한 거야.”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나를 못 믿어.”
우리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내가 그냥 너에게 초라할 거 같았어. 이런 내 모습을 네가 어떻게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여간 서우리 생각이 너무 많아. 그냥 조금 덜 생각해도 되는데. 머리에 생각이 그냥 꽉 차있어.”
“그러게.”
우리는 혀를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남은 음료수를 모두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해결이 되었으니까.”
“그러게. 팀장님 멋있다.”
“그렇지? 내 애인이 좀 멋있어.”
“나는 미치겠다.”
“왜?”
“우리 연하남. 소설 쓴대.”
“소설?”
우리는 빨대를 만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설?”
“과가 문에창작학과잖아. 그래서 취업이라고는 절대로 하기 싫다고. 아르바이트도 안 할 거라고 그러더라. 뭐 집에서 용돈을 주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그런 남자 만나는 거 그러지 않냐?”
“아직 어리잖아.”
“어리기는.”
소망은 입을 내밀면서도 은근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팀장님이랑 비교하면 완전 어린애지.”
“우리 팀장님도 외모만 보면 20대야.”
“헐. 대박.”
우리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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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늙었는데.”
“네?”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자 정식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금 무슨 말을 했잖아요.”
“아니요.”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안 늙었다고 했는데.”
“귀도 밝아.”
“그렇게 말한 거 맞아요?”
“네.”
우리의 대답에 정식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겁니까?”
“아니. 염소망이 팀장님이 자기 애인보다 나이가 너무 많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괜히 그렇죠.”
“서우리 씨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싫습니까?”
“아니요. 절대로요.”
우리는 손으로 가위 자를 만들며 고개를 저었다.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제가 염소망 씨의 애인. 그러니까 연하라고 했죠?”
“네. 연하.”
“거기보다는 나이가 많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꽃중년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괜찮죠?”
“중년이라뇨.”
우리는 울상을 지어보였다. 정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나이가 많아서?”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우리의 대답에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우리의 손을 잡았다.
“서우리 씨.”
“네?”
“한 마디 해도 됩니까?”
“해요.”
“그러니까.”
정식은 뭔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헛기침을 하고 우리를 바라봤다.
“제 인생에서 마지막 여자가 서우리 씨였으면 좋겠습니다.”
“네? 마지막 여자요?”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이야?
우리는 갑작스러운 정식의 고백에 침을 삼켰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서우리 씨보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거.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제가 서우리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거. 그거 하나에요. 서우리 씨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팀장님 하나도 부족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마워요.”
우리는 침을 삼켰다. 정식은 긴장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리 씨도 나를 마지막 남자로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아직 반지나 뭐 그런 것도 전혀 준비는 못했고요.”
우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지금 정식이 하려는 것은 프러포즈였다. 정식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우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팀장님.”
“서우리 씨. 나에게 서우리 씨의 마지막 남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런 정식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우리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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