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미쳤어.”
서운은 화장실로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간 후 그대로 변기 뚜껑을 내린 후 거기에 앉았다. 다리가 풀렸어.“
“백현.”
서운은 입술을 만졌다. 너무나도 뜨거운 키스. 하지만 이것에 익숙하면 안 되는 거였다. 모든 것을 망가뜨릴 거였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서운은 눈을 감았다. 자신은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무 흔들렸다. 너무나도 흔들렸다.
“미쳤어. 미친 거야.”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
“괜찮으시니까?”
서운이 뛰어나간 것을 본 영재가 곧바로 백현의 방으로 들어섰다. 백현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안 괜찮네.”
“사장님.”
“유 사장에게 가지.”
갑작스러운 백현의 태도 변화에 영재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무슨 일이야?”
“받아들이지.”
갑작스러운 백현의 말에 나은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백현이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파악해야 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거니? 내 말을 동의한다는 거야. 알아?”
“그래.”
“왜?”
“한서운.”
백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나은은 침을 삼켰다. 백현은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 아버지가 한서운을 나에게 보냈어. 결국 나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아시는 거지.”
“그래?”
나은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어졌다. 백현은 숨을 크게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마를 짚었다.
“당신은 한심해.”
“내가?”
“그래.”
“내가 왜?”
“나에게서 애써 한서운을 치워 놓고서는 당신 아버지에게 도와달라는 그 이야기. 그건 한서운에게 나타나라는 이야기니까. 당신 아버지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게 전부일 테니까.”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백현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신 정말 밉다.”
“나도 당신이 미워.”
나은은 코웃음을 치면서 먼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혀로 아랫입술을 축인 후 다시 백현을 노려봤다.
“그 사람을 잡으라고.”
“싫어.”
“미친.”
“하지만 한서운을 한 번만 더 이용하면 나는 당신에게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거야.”
“당신이?”
나은의 비웃음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나은은 머리를 뒤로 넘긴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정말 밉다.”
나은은 물끄러미 백현을 응시했다. 이 상황에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서운만 생각하는 그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당신이 그런다고 그 여자 당신 안 봐.”
“알아.”
“아는데 그러니?”
“그래.”
백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은은 심호흡을 하고 혀를 살짝 내민 후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당신 제안 받아들이지.”
“그래.”
백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은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채로 그대로 그녀의 방을 나갔다.
“백현.”
나은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이대로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바보처럼 지켜보기만 하지 않을 거였다.
==================
“훌륭하군.”
“고맙습니다.”
유 회장의 칭찬에 서운은 어색했다. 유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지갑에서 5만원 권 지폐를 두툼하게 꺼내서 서운에게 내밀었다.
“받게.”
“네?”
“이 정도는 자네가 받아도 될 거야.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자네가 쉽게 풀지 않았나?”
“아닙니다.”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 돈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이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백현을 배신했다는 이야기니까.
“저는 아직 백현. 그 사람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돈 저에게 주지 마세요. 회장님 후회하세요.”
“그러니 지금 자네에게 주는 것 아닌가? 적어도 자네가 이 늙은이가 자네를 무조건 이용하려고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내가 자네를 억누르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로 말이야.”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돈은 꽤나 큰 금액이었다. 결국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그 돈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그래. 잘 했네.”
유 회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화자의 병실로 들어서던 서운은 걸음을 멈췄다. 동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와?”
“너 여기에서 뭐 하는 거냐고?”
“어머니랑 시간을 보냈어.”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런 모습을 동우에게 보일 수느 ㄴ없었다.
“돌아가.”
“한서운.”
“돌아가라고!”
서운은 악을 썼다. 왜 하루처럼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동우를 노려봤다.
“너 이러면 즐겁니?”
“뭐?”
“네가 이러면 내가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드는 줄 알아?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돌아가. 네가 네 손으로 내 목을 비틸 게 아니라면 말이야.”
동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저 서운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화자의 곁을 누군가가 지켜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서운의 눈은 너무나도 단호했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었다.
“싫어.”
“채동우.”
“싫다고.”
동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동우가 싫다고 하는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계산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무료한지 알아? 나 글 쓰는데 그렇게 시간 오래 잡아 먹히지 않으니까 내가 있을 거야.”
“싫어.”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끄러웠다. 서운은 동우에게 다가가 거칠게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동우는 힘없이 그런 서운을 따라 나왔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이런다고 내가 너랑 뭔가 다른 사이가 될 거 같니? 우리는 그냥 잠만 자는 사이야. 그냥 섹스. 그런데 왜 이래?”
“나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래.”
서운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를 지키는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네가 감히 나랑 맞먹으려고 할 수가 있는 거지? 감히.”
동우는 고개를 숙였다. 서운은 그대로 있는 힘을 다 해서 동우의 뺨을 때렸다. 엄청난 소리가 병원 복도에 울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서운은 다시 한 번 동우를 때렸다.
“미친 새끼.”
“한서운.”
동우는 그대로 서운을 품에 안았다. 서운은 동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동우의 힘은 이길 수 없었다.
“어머니 많이 힘들어 하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보고 아들이래.”
동우의 말에 순간 서운은 힘이 빠졌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니야? 당신에게 중요한 백현. 그 사람이 늘 당신 곁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백현. 그 사람을 대신해서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거라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너는 백현 대신이 될 수 없어.”
“당신에게는 안 되겠지.”
동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리고 살짝 몸을 떼고 서운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가능해.”
“뭐라고?”
“당신이 백현에게 더 매달리는 이유. 어머니 때문 아니야? 적어도 하나는 내가 떨어뜨릴 수 있어.”
“미쳤어.”
“내가 할 거야.”
동우는 다시 서운을 품에 안았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
“친구 분들이 계셨군요?”
“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서류를 대충 확인하며 대답하는 백현을 보며 영재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다행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지 마.”
백현의 말에 영재는 순간 멈칫했다.
“그게 무슨?”
“오래 있지 않을 거야.”
백현은 이리저리 목을 풀며 어색하게 웃었다.
“결국 나는 쓰레기니까.”
“사장님.”
“내일 아침 회의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를 해야 하니. 기다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분명히.”
“오래 계십시오.”
영재의 미소에 백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한 새끼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새끼고. 다른 한 새끼는 나를 너무나도 경멸하는 새끼니까. 뭐 오래 걸리지 않아.”
“사장님.”
“다녀오지.”
백현은 영재를 한 번 보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영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벽에 기댔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오르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은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날 보러 와.’
“업무 중입니다.”
영재의 대답에 나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명령을 거절하는 거니?’
“죄송합니다.”
영재는 차에 오르려던 것을 멈추고 백현이 들어간 가게를 한 번 본 후 가볍게 차 옆을 걷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너도 나보다 한서운이 좋니?’
“아닙니다.”
‘거짓말이라도 다행이네.’
“거짓말이 아닙니다. 한 비서님은 뭔가 다른 분입니다. 유 사장님은 가여운 분이고. 한 비서님은 두려운 분입니다.”
‘가엽고 두렵다.’
나은의 나른한 목소리. 영재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나은을 위로하러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이상하지만 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백현이었다.
'☆ 소설 창고 > 지독한 연애[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33장] (0) | 2016.11.18 |
---|---|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32장] (0) | 2016.11.17 |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30장] (0) | 2016.11.14 |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29장] (0) | 2016.11.11 |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28장] (0) | 2016.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