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나는 오늘도 당신이 시큰 그대로 했어. 유나은이 너무나도 싫은데 그녀를 돕는 거 했다고. 알아?”
백현의 말에 서운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녀의 일과 무관한 일이었다.
“그저 당신이 유 회장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 자리를 지키고 싶으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백현은 다시금 아랫입술을 물었다. 동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흔들며 두 사람을 보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먼저 갈게. 두 사람은.”
그 순간 동우를 잡은 것은 서운이었다.
“지금 어디에 가려고 하는 거야? 나를 두고?”
자신의 집으로 가려고 하던 동우의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그것을 보는 백현도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한서운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나 채동우랑 사겨.”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운의 대답에 백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채동우를 가지고 노는 것은 이제 그만 둬. 그랬다가 이 자식이 정말로 자신을 좋아한다 믿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렇게 믿어도 상관이 없어.”
“상관이 없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정말로 좋아하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니야?”
서운의 너무나도 간단한 대답. 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한서운.”
“나도 내 이름이 한서운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만 좀 불러. 너는 네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정작 내가 필요한 순간에는 없잖아. 아니야?”
“나는 늘 네 곁에 있었어.”
“거짓말. 거짓말 좀 하지 마.”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백현을 노려보더니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놓았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쳤어.”
“도대체 네가 왜 지치는 건데?”
백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백현은 혀로 이를 쓰다듬으며 애써 울음을 삼키고 숨을 한 번 내뱉었다.
“나는 이미 모든 걸 걸었어. 네가 시키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 뭐든 다 했다고.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 그거. 나를 위해서 한 거 아니야. 그거 전부 다 너를 위해서 한 거야. 그런 거면서 제발 나를 위해서 그런 것들을 한 것처럼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줄래? 네가 그러면 나는 너무 역겨워. 너는 너만 생각하는 사람이면서 도대체 왜 내 핑계를 대는 건지 모르겠어.”
“역겹다고?”
서운의 말에 백현은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었다. 서운은 그대로 동우의 손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역겹다고?”
백현은 아랫입술을 물고 그대로 자리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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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응. 괜찮아.”
동우의 물음에 서운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런 것을 가지고 괜찮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너는 왜 내가 괜찮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당신은 백현. 저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나랑 이 집에 있으면서도 저 사람 생각을 하니까.”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서운은 동우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그걸 알려주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당장 백현에게 갈 수 있으니까. 채동우.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네 곁에 있을 때. 자꾸만 그런 것을 알려주면 어쩌라는 건데? 응?”
“나는 뭘까?”
동우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혀를 내밀었다.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의미냐니? 너는 지금 나랑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냐니?”
“그러니까.”
동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당신과 있는데. 당신이 내 옆에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런데. 왜. 왜. 왜. 왜 그런 건데. 왜 당신은 지금도 백현과 있는 걸까? 도대체 왜? 나는 아무 것도 이해가 안 가. 백현이 그렇게 특별해?”
동우의 반복된 물음에 서운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
“나를 괴롭히지 마.”
“당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야. 그저 당신이 조금 더 바르게 당신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거야.”
“너 왜 이렇게 갑자기 약해졌어?”
“그러니까. 내가 왜 약해진 걸까?”
서운이 동우의 얼굴을 만졌지만 동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슬픈 눈으로 서운을 응시했다.
“당신은 내가 아니니까.”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서운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채동우. 제발 내 말 좀 들어. 나는 이제 너에게 왔어. 네가 너를 구원해달라고 해서. 너에게 온 거라고.”
“아니. 당신은 백현이 당신을 사랑해서 그것을 피해서 온 거야. 그의 사랑이 너무 무서워서 온 거야. 그런 거잖아.”
“너는 그냥 너를 잡아달라고 하면 되는 거야.”
서운의 말에 동우는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런데 당신은 자꾸만 백현이 나타나면 저기에 흔들리잖아. 내가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고. 나만 봐달라고 하는데. 제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자꾸만 백현이 나타나면 저기를 보잖아.”
“볼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러는 거야.”
동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서운은 그런 동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러지 마.”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어.”
동우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그렇지만 이미 서운도 알고 있는 거였다. 그녀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백현이 있는 한은 그 누구도 당신의 곁에 갈 수 없어. 그건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네가 알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네가 내 옆에 있어.”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네가 여기에 있으니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버티고 있는 거야. 너 마저 없으면 그거 안 돼.”
“이미 네 정신 아니야.”
“채동우. 건방지게 굴지 마.”
서운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굴었다.
“너는 그런 말을 지껄일 자격 같은 거 없어.”
“그래. 나는 당신의 곁에서 그저 불쌍하게 낑낑 거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러다 당신이 침대에 올라오라고 허락을 해주며 겨우 당신을 품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순간도 당신은 내가 아닌 백현하고 자고 있는 거잖아. 그 순간에도 당신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백현을 보는 거잖아.”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잘 아니?”
서운은 동우의 턱을 만지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동우의 턱을 잡아끌어 입을 맞췄다.
“나를 사랑해줘.”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 그저 당신이 나를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야. 그게 내 전부야.”
동우의 말에 서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구원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 나도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어. 나는 당신을 구원할 수는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저 당신에게 구원을 받을 수만 있는 사람이야. 당신이 나를 더 이상 구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는 아무 의미도 없어. 나는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되는. 그냥 그런 존재가 되는 거야. 당신마저도 나를 버리면.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구해. 한서운. 제발 나를 버리지 말고. 나를 봐.”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다시 동우의 입술을 삼켰다. 그리고 그의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피가 배어나왔다. 하지만 동우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그녀를 모두 받아들였다.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동우의 뺨을 때렸다.
“미친 새끼.”
“알아.”
“나를 떠나지 마.”
“나는 당신을 떠날 수 없어.”
동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저 당신만 나를 버릴 수 있어.”
“네가 나를 떠나지 않으면.”
“아니.”
동우는 서운의 말을 끊었다.
“이미 당신은 내 곁에 없어.”
“채동우.”
“당신은 한 번도 내 곁에 있었던 적이 없어. 나는 멍청하게도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나도 멍청해.”
동우는 서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너는 나 못 떠나.”
“그래.”
“그런데 건방지게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너에게 무슨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채동우. 너에게는 아무 힘도 없어. 너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
동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이미 서운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걸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백현에게 돌아가다고 해도 나는 말릴 수 없는 사람이야. 그게 지금의 내 위치야.”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서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백현을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너인데. 도대체 너는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지금 나보고 백현에게 가라고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가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내가 그런 걸 선택할 힘이 있니?”
동우의 힘이 없는 미소에 서운은 목이 턱 막혔다.
“한서운. 너라는 여자를 내가 그 오랜 시간 사랑했던 것은 그래도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다를 거라고. 뭔가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해서 그랬던 거였어. 그런데 당신이 백현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순간에도. 나랑 자는 그 순간에도 백현을 떠올리고, 백현만 생각하고. 백현에게 뭔가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는데. 뭘 할 수 있겠어? 뭘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움직인다고 해서 당신에게서 그 마음이 사라질 수 있어? 아니. 절대로. 나는 백현을 이길 수 없어. 백현은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당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지금 나보고 뭘 더 하라고 하는 거야. 내가 뭘 더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야?”
동우는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서운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뜯었다. 그리고 서운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랫입술을 물고 서운의 눈을 바라봤다. 서운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잖아. 당신은 백현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아니야?”
“맞아.”
서운은 힘겹게 인정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가족이라서?”
“아니.”
서운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백현을 버렸으니까.”
서운의 말에 동우의 눈이 흔들렸다.
“엄마가 이제야 제정신을 찾고 있는 거야. 백현. 그 사람이 진짜 엄마의 아들이 맞으니까. 내가 버린 거니까.”
“그게 무슨?”
“내가 버렸어.”
서운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무릎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어릴 적. 내가 진짜 딸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버렸어. 그리고 엄마가 주워온 순간 나는 바로 깨달았어. 엄마도 모르고, 백현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잊었지만. 그 사람이 엄마의 아들이라는 걸 알았어.”
“그러니까.”
“그래.”
서운은 고개를 들어 동우를 바라봤다. 서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서운은 눈물을 흘린 채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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