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내가 지금 백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야. 백현은 진짜 자신의 엄마를 새어머니라고 알고 있는 거고.”
“미쳤어.”
동우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백현. 엄마 아들이야.”
“도대체 그게 무슨?”
동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아이처럼 웃었다.
“신기하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아빠가 데리고 온 딸이야. 그리고 엄마에게 아들이 있었지. 그런데 내가 데리고 간다고 하고서 버렸어. 잃어버린 줄 알았지만 내가 버린 거야. 나는 내가 모든 사랑을 받고 싶었거든.”
동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서운의 말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서운은 동우를 보며 밝게 웃었다.
“나도 너무 신기했어.”
“그걸 어머니가 다시 데리고 온 거라고?”
“그래.”
서운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백현을 사랑할 수 없어.”
“아닐 거야.”
동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서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서운의 손을 쥐었다.
“그럴 리 없어.”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가 못 알아봐?”
“그러니까.”
서운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정신인 그 순간에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던 것을 지금 기억하고 있더라고. 너무나도 신기하게 말이야.”
“그게 무슨?”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거짓말.”
“너는 나를 떠나면 안 돼.”
서운은 순간 동우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아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를 버리면 안 되는 거야. 네가 나를 떠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니까.”
동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낯선 사람이었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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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지금 어때?”
“친구 문제가 꽤나 복잡한 거 같습니다.”
“친구?”
나은의 목소리가 묘하게 갈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승무원 친구 분. 아직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나은은 손톱으로 가볍게 가구를 두드렸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백현에게 몇 없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은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역시 그녀를 불쾌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웃기지도 않아.”
“네?”
“아니야.”
영재의 반문에 나은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와달라고 하셨으니까요.”
“돌아가.”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필요 없어.”
“유 사장님.”
“그러니까. 필요가 없다고.”
영재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나은은 밝게 웃었다.
“나은 씨.”
나은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영재를 응시했다. 영재는 천천히 나은에게 다가왔다.
“이러지 마요.”
“너 뭐 하는 거야?”
“힘들잖아요.”
“뭐 하는 거냐고!”
나은은 고함을 쳤다. 영재는 그런 나은을 품에 안았다.
“가여운 사람.”
“나 동정하지 마.”
나은은 이를 악 물고 말했다.
“너 따위가 나를 동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는 나에게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야. 너 같은 거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그런데 도대체 네가. 네가 뭔데 나를 동정해?”
“알아요.”
“네가 뭔데 나를 동정하냐고!”
나은의 악다구니에도 영재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지쳤는지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혼자 있기 싫어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요.”
영재의 말에 나은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나은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영재를 바라봤다. 더 이상 거기에서 백현이 보이지 않았다. 영재만 있었다.
“그 사람 떠나.”
“그럴 수 없어요.”
“그리고 내게 와.”
나은의 말에 영재는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곁에 있어줘.”
“나은 씨.”
“네가 내 곁에 있으면 나는 더 이상 나쁜 사람이 아닐 거 같아. 나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않을 거 같아.”
“정말 그럴 거 같아요?”
“응.”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재의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유나은!”
백현이었다.
“가지 마요.”
나은이 가려고 하자 영재가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제발 가지 마요.”
“하지만.”
“가지 마요.”
영재는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제발 열어달라는 그의 외침.
“유나은. 뭐 하는 거야? 내가 왔어. 너까지 나를 버리는 거야? 너도 나를 버리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버리는 게 아니야.”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고 가려고 했다. 영재는 다른 손으로도 나은을 붙잡았다. 나은이 영재를 쳐다봤다.
“이러지 마.”
“가지 마요.”
“이러지 마.”
“가지 말라고요.”
영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은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침을 삼켰다. 마음 한 편이 너무 아렸다.
“여기에서 당신이 가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보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당신을 가여워 하지 않을 거예요.”
“너에게서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나는 그냥 백현. 저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야. 저 사람만 있으면 돼.”
“거짓말.”
영재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불안하잖아.”
나은은 천장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대로 영재의 목을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다. 눈물 맛이 나는 키스. 마음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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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없는 거야.”
백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거야.”
백현은 힘없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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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뭐가?”
“말할 거야?”
동우의 물음에 서운의 눈이 공허해졌다.
“뭘 말 해?”
“진실.”
“아니.”
서운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동우는 그런 서운을 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내가 진실을 말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는 거니?”
“그래.”
“아니.”
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하지만.”
“그만!”
서운은 소리를 지르며 동우를 바라봤다.
“내가 너에게 왜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해?”
“뭐?”
“이제 너는 나를 떠날 수 없어.”
서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 동우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지독하게 자신을 삼켰다.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여운 사람이 된 거니까. 네가 나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니까. 너는 착한 사람이라서. 나를 떠나지 않을 거잖아. 너는 그냥 나를 보면서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볼 거잖아.”
“아니.”
동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다른 생각 같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이제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어. 안 그래?”
“그러니까. 아니야.”
동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서운을 바라봤다.
“그만 하자.”
“채동우.”
“그만. 하자고.”
동우가 평소와 다르게 냉정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며 서운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너는 그저 지금처럼 나에게 네 사랑을 갈구하면 되는 거야. 그거 하나면 되는 거야. 어렵지 않아.”
“어려워.”
“뭐가 어려운데?”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으니까.”
동우의 말에 서운의 미간이 가늘게 모아졌다. 서운의 눈썹은 묘하게 끝이 올라갔고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어?”
“네가 나를 알기나 하니?”
“그래.”
“너는 그저 나를 학교에서 본 모습 몇 개로 좋아한 거야. 그리고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 거고.”
서운의 쏘아대는 말에 동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서운을 사랑한 거였다.
“너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나를 오롯이 본 적이 없어. 네가 본 나는 네가 보는 한서운이었어.”
“그게 잘못인 건가?”
“당연하지.”
서운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갈게.”
“가지 마.”
“내일. 얘기 하자.”
동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운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가 붙잡을 새도 없이 동우는 먼저 그녀의 집을 나가버렸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그가 먼저 나간 것을 보고 서운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너까지 그러는 거니?”
서운은 무릎을 안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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