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여기에는 도대체 왜 온 거야?”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이야?”
“당연하지.”
서운의 대답에 동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서운의 입술을 만졌다. 따끔거림. 서운이 움찔거리자 동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는 거야?”
“너야 말로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남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 건데? 나는 너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어.”
“알고 있어.”
동우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서운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라는 거겠지. 아니야?”
“네 도움 필요 없어.”
“마음대로.”
서운의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동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가 동정하는 게 싫어. 너도 말했잖아. 나는 너를 사랑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도대체 여기에 와서 이러는 거야?”
“네가 나를 사랑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동우는 한숨을 내쉬고 장난스럽게 웃고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서운의 눈을 응시했다.
“더 이상 당신이 나를 구원하기 바라지 않아. 그저 내가 당신을 지키려고. 그러려고 노력할 거야.”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라고 했잖아.”
서운이 동우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동우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어색하게 웃었다.
“알고 있어. 여자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거. 하지만 지금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니까. 나중에 나에게 무슨 말을 하건. 그건 나중에 내가 다 감당할 테니까 나에게 기대. 알아?”
“내가 무섭지 않니?”
“징그러워. 역겹고.”
동우의 솔직한 대답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동우는 이렇게 말을 하고서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구원하고 싶어. 도와주고 싶고. 당신을 위하고 싶어. 이게 내 전부야. 집으로 가자.”
“집?”
너무나도 낯선 단어. 그러나 편안한 단어.
“그래. 내가 같이 가줄게.”
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가 같이 가준다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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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은에게 또 가려고 하는 건가?”
영재가 차문을 열자 백현은 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영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백현을 바라봤다.
“가면 안 됩니까?”
“가지 마.”
“사장님.”
“내가 가지.”
백현의 말에 영재의 눈이 흔들렸다.
“네 말은 유나은이 불쌍한 게 싫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불쌍하지 않도록. 내가 거기에 간다는 거야.”
“정말입니까?”
“그래.”
백현의 말에 영재의 입가에 묘한 미소 같은 것이 생겨났다. 영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백현을 위해 문을 열었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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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기에 무슨 일이야?”
“얘기 좀 하지.”
나은의 말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그대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영재를 한 번 본 후 문을 닫았다.
“뭐 하자는 거야?”
“당신이야 말로 뭐 하자는 거야?”
“무슨 말이지?”
“강 비서는 안 돼.”
“백현. 당신 정말.”
나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저었다. 백현의 눈이 흔들렸다.
“왜 이러는 거야?”
“내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 흔들지 마. 그리고 나 당신하고 다시 혼인하려고 해.”
나은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이 원하던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나은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나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더 이상 백현. 당신 나에게 남자 아니야.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뭘 하자는 거야? 나에게 더 이상 의미도 없는 당신이 여기에서 뭐 하는 거니?”
“그거 진심이야?”
“진심이야.”
나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를 버리고 나서야 그가 자신을 봐주는 거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니?”
“그러게.”
백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아니더라도 강 비서는 안 돼.”
“그건 당신이 정할 게 아니야. 나와 강 비서가 정할 거야. 당신이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랑 강 비서. 우리 두 사람이 그거. 그거 옳게 할 거야. 내 말. 알아들어?”
“싫다고!”
백현은 고함을 질렀다. 늘 고함을 지르는 쪽은 자신이었기에 나은은 당황스러웠다. 백현은 나은을 노려봤다.
“한 번만 더 내 손에 있는 거 사라지게 하면 나는 당신을 살려두지 않을지도 몰라. 알아들어?”
“나는 더 이상 당신 말을 듣지 않아.”
“당신은 한 번도 내 말을 들은 적 없어.”
나은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왜 이러는 거야?”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으니까.”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고 백현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그의 뺨을 때렸다. 고개를 돌려 다시 나은을 보는 백현의 눈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정말 당신 너무 실망이네요.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고작 이런 거야. 고작 이런 사람이었어. 고작. 고작. 고작 이런 사람이냐고!”
나은의 외침에 곧바로 문이 열리고 영재가 들어왔다. 백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나만 빼고 다 이렇게 되는 건가?”
“사장님.”
“됐어.”
영재가 손을 대자 백현은 거칠게 그를 밀어냈다.
“유나은이나 위로하도록.”
“하지만.”
“차키.”
영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마지못해 백현에게 차키를 건넸다. 백현은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괜찮습니까?”
“따라가.”
영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은은 고개를 저었다.
“얼른 따라가.”
“하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따라가라고!”
나은의 외침에 영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집을 나섰다. 나은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백현이라는 남자가 고작 이런 남자였어? 고작. 고작 겨우 갖지 못한다고 유치하게 구는 남자였어.”
나은은 침을 삼켰다. 몸이 아파왔다.
“고작 그런 남자였구나.”
나은은 허무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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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같이 있어.”
서운의 말에 동우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유난히 추운 집.
“가지 마.”
들어가려는 서운의 손을 동우가 잡았다.
“내 집으로 가자.”
“어?”
생각도 못했던 이야기에 서운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어차피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거였다.
“그래.”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는 조심스럽게 서운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집에 서운은 멈췄다. 자신의 집과 다르게 너무나도 밝은 느낌의 방. 하얗고 밝았다.
“너무 밝아.”
“당신과 어울려.”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겁을 내지 마.”
“하지만.”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동우의 말에 서운은 그를 돌아봤다. 동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 아니 그럴 수 없어. 내가 막아줄 테니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래?”
“어?”
“나는 네가 싫어.”
“우리는 연애를 하는 중이니까.”
동우는 정말 간단한 것을 말을 한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우습나?”
“나는 네가 미워.”
“알아.”
동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반드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에 대한 답을 이유를 들을 이유는 없는 거니까. 안 그래?”
“그건.”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동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고 서운을 뒤에서 꼭 안았다.
“외로워하지 마.”
“뭐 하자는 거야.”
“당신은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그저 그 누구에게도 버림을 받고 싶지 않았던 거지.”
동우의 말에 서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서 누군가를 구원해준 거야. 백현. 그 녀석은 그래야 당신의 곁을 떠날 수 없으니까. 당신은 그래서 버림을 받을 수 없었던 거니까. 실제로는 당신이 버림을 받고 싶지 않았던 거면서 그랬던 거야.”
“그만.”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싫어.”
“들어.”
“싫다고.”
“들으라고.”
서운이 달아나려고 하자 동우는 더욱 세게 서운을 품에 안았다. 서운은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나는 백현이 좋아.”
“한서운.”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히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나는 백현이 좋아.”
“이게 당신의 진심이야.”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절대로 보기 싫은 것을 동우는 바라보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동우와 있으면 그 모든 게 보였다. 서운은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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