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돌아가.”
“사장님.”
백현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영재를 노려봤다.
“뭐 하자는 거지?”
“뭐라고 말씀을 하시건 저는 사장님의 사람입니다. 유 사장님의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미 나를 떠난 거 아닌가?”
백현의 유치한 말에 영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이내 싸늘하게 웃었다.
“그만 둬.”
“하지만.”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앗나?”
백현의 사나운 눈빛에 영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 역시 묵묵히 백현을 마주했다.
“혼자 가실 수 없습니다.”
“건방지군.”
“저는 사장님의 부하 직원입니다.”
“그럼 해고야.”
백현의 말에 영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내가 자네를 해고했으니 이제 이럴 이유는 아무 것도 없는 거 아닌가? 비켜. 나는 갈 거니까.”
“이런 식으로 하실 수 없습니다.”
“할 수 있어.”
백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니 꺼져.”
“사장님.”
“꺼지라는 말 듣지 못했나?”
“그럼 친구로 있겠습니다.”
영재의 말에 백현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영재는 이 말을 남기고 백현의 손에서 차키를 도로 가져갔다.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게 무슨?”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보고 친구가 되어달라고. 그러니까 제가 친구가 되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끄러워.”
백현은 다시 영재의 손에서 차키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영재는 허리 뒤로 감춘 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실 수 없습니다.”
“꺼지라고!”
백현의 고함에도 영재는 덤덤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데려다 드린다고요.”
“강영재.”
“지금 감정적으로 위험하니까요. 저에게 있어서도 사장님은 얼마 되지 않는 친구입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재는 엷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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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괜찮아?”
“응.”
동우가 건넨 차를 마시며 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너무 우스웠다.
“너는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그게 무슨?”
“내가 너무 보잘 것 없는 사람이잖아. 그리고 너무나도 영악하고 무서운 아이고. 그런데 도대체 왜 나에게 잘해주는 거야? 나에게 잘해줄 이유 같은 거 없다고 내가 말을 한 거잖아. 아니야?”
“다행이야.”
동우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준비해서 서운의 앞에 앉았다.
“내가 당신이라는 여자를 알기 전에 이미 그런 것을 알았더라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을 테니까.”
“뭐라고?”
“그런 것을 알기 전에 당신을 알고 이미 좋아한 거니까. 나는 한서운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한서운이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한서운이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버리고 그 사람의 구원자가 되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한서운이라는 사람이 사실은 너무나도 외로운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것도 아닌. 그냥 한서운이라서.”
“그게 무슨?”
“그런 거야.”
서운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동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 같은 거 하지 마.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서 떠나지는 않을 거니까.”
“떠나겠다는 이야기인가?”
“당연하지.”
동우가 너무나도 쉽게 대답하자 서운은 침을 삼켰다. 동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더 이상 당신을 내가 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런 일방적인 게 지치게 되면 헤어지는 거겠지.”
“웃기네.”
서운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꽤 많이 편안한 표정이었다. 동우는 손을 내밀어 서운의 이마에 손을 얹고 미간을 모았다.
“열이 나는데.”
“괜찮아.”
“괜찮기는.”
동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 칭찬은 불편한 느낌이 우선이었다.
“그만 둬.”
“너는 이런 대접을 받아도 괜찮아.”
“뭐?”
동우의 말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저 당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것 뿐이지. 오롯이 당신을 바라볼 사람을 보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그게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나를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나도 밀리지 않을 거고.”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서운은 동우의 손을 피했다. 동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트에 물을 넣어 전원을 켠 후 살짝 벽에 기대 서운을 응시했다.
“힘들어 하지 마.”
“여기는 불편해. 돌아갈래.”
서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우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마.”
“이거 놔.”
서운은 차가운 눈으로 동우를 노려봤다.
“내가 지금 이런 상태라고 해서 네가 만만하게 봐도 되ᅟᅳᆫ 거라고.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게 아니야.”
“너는 아니야.”
서운의 차가운 말에도 동우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손에 준 힘을 조금 풀었고 서운은 동우에게서 벗어났다.
“네가 나를 어떻게 보건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네가 나를 불쌍하게 본다고 해서 나를 막 대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야.”
“막 대하겠다는 게 아니었어.”
“지금 너는 그래.”
“아니.”
서운의 말에도 동우는 가만가만 고개를 저었다.
“그저 당신이 안쓰러워. 그리고 그곳은 너무 어두워.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자.”
“싫어.”
서운은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는 너무 밝아.”
“한서운.”
“내가 다 보여.”
“하지만.”
“여기는 싫어.”
서운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대로 동우의 방을 벗어났다. 동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물이 끓어서 꺼지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저 서운을 돕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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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자고 갈 테니 돌아가.”
“알겠습니다.”
백현이 유 회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영재는 미간을 모았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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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오면 안 되는 곳입니까?”
“모를 일이지.”
유 회장의 말에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유 회장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건 나는 더 이상 자네를 도울 수 없어. 나는 자네의 아버지가 아니니.”
“잔인하시군요.”
백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유 회장은 물끄러미 그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어깨가 무거운가?”
“네?”
“내려놓아도 되네.”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더 이상 나은이도 자네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어. 알고 있나?”
“회사를 놓으라는 겁니까?”
“아니.”
백현의 물음에 유 회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깊은 눈으로 물끄러미 백현을 응시했다.
“그저 자네도 이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거야. 굳이 여기에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세. 알고 있지?”
“저는 여기에 오고 싶습니다.”
백현의 말에 유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는 집이니까요.”
“집?”
“네. 제가 사는 곳은 그저 잠만 자는 곳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집입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여기는 정말로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여기에 오면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가?”
유 회장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유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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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문을 잠궜다. 어두운 집에 오는 것이 너무나도 편하고 편안했다.
“이게 뭐야.”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이게 너무나도 편안하고 좋았다.
“한서운 이게 뭐야.”
답답했다. 너무나도 멍청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동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절대로.
“채동우.”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보게 해준 사람. 그런데 참 이상하게 여전히 저기에 설레면서도 다시 백현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버린 사람. 자신이 죽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구원을 했다며 그의 모든 것을 가졌는데 이제는 그가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
“백현. 백현. 백현.”
서운은 가만히 백현의 이름을 되뇌였다. 마음이 편안했다. 어두운 곳에서도 그녀에게 여유를 주는 사람이었다.
“백현.”
하지만 절대로 그녀가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철저하게 망가드린 사람. 모든 것을 잃게 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이 모든 것이 이렇게 된 것일까.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문에 기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머리에서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고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자신이 이렇게도 초라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목이 콱 막혀왔다. 서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숨을 들이켰다. 자신은 너무나도 외로운 사람이었고 한심한 사람이었다.
“너 왜 그러니.”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이 나길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나야만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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