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
“엄마에게 가지 않을 거야?”
“응.”
서운의 물음에 백현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백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백현의 모든 행동이.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모든 사실을 말했잖아.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왜 내 말을 당신을 듣지 않는 거야?”
“그래서 달라질 것이 없으니까.”
“뭐?”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나를 학대했어. 아무리 그 분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하지만.”
“달라질 게 없다고.”
백현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백현의 대답에 서운은 침을 꿀꺽 삼키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당신이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되잖아. 왜 사실로 말한 건지. 차라리 거짓말을 할 걸. 당신을 속일 걸. 계속 속일 걸 그런 생각이 들잖아.”
“그러지 그랬어.”
“백현. 당신 정말.”
“그만.”
서운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서운의 눈을 바라봤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뭐가 남았나?”
“당신이 원하는 게 뭐니?”
“뭐?”
“그 자리 그만 둘 수 있니?”
백현은 서운의 말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운은 백현의 눈에 유 회장의 위임장을 보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야.”
“정말로 회장님이 주신 건가?”
“그럼 뭐. 내가 그 사람을 죽이고 가져오기라도 했다는 이야기야? 그런 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지.”
백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현이 위임장에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서운은 손을 거뒀다.
“그건 안 되지.”
“바라는 게 뭐야?”
“당신이 원하는 게 뭐니?”
“뭐?”
“지주 회사 사장 자리에 계속 있기를 바라? 그걸 가지고 있기를 바라? 아니면 유나은이 그 자리에 가기를 바라? 아니면. 그것도 아니면 유태화가 그 자리에 가기를 바라?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너.”
백현의 말에 서운은 침을 삼켰다.
“뭐라고?”
“당신을 원한다고.”
“웃기지 마.”
“진심이야.”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미 자신과 백현은 모든 게 어긋난 상태였다. 이제 와서 뭔가 다른 것을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른 것은 하나 없었다.
“이미 우리는 끝났어.”
서운의 말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알잖아.”
“뭘 알아?”
“나는 당신을 망가뜨린 사람이야. 그리고 백현. 당신은 나를 밝게 해줄 수 없는 사람이야. 알지?”
“그게 무슨?”
“동우는 달라.”
서운의 말에 순간 백현의 얼굴이 굳었다. 서운은 뭔가 아차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말을 돌릴 수는 없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어. 당신은 나를 밝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나를 괴롭히고. 당신은 나의 숨을 막히게 하는 사람이야. 당신은 나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고. 숨기고 싶은 부분이고.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야. 나를 괴롭게 하는 부분이고. 나를 아프게 하는 부분이고. 나를 괴롭히는 그런 거라고.”
서운의 말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것. 알고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뭐라는 거지?”
“당신을 그 자리에서 내릴 거야.”
“그래.”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가지 않아.”
백현은 배가 아파왔다. 자꾸만 아파왔다.
“그러지 마.”
“아파. 당신이 있으면 아파.”
서운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숨을 뱉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 쓸 거야.”
“그래.”
“그리고 당신에게 가지 않아.”
“그래.”
서운은 백현의 어깨를 치고 그대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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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여긴 어디지?”
영재의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을 마주한 백현은 그와 상관없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지셨습니다.”
“뭐?”
“다행히 몸에 무슨 이상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힘드셔서. 그래서 그런 겁니다.”
“그게 무슨?”
백현은 몸을 일으키려다 눈을 감았다. 다시 배가 아파왔다.
“젠장.”
“더 쉬셔야 합니다.”
“뭘 얼마나?”
“그건 저도.”
백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의사를 데리고 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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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네.”
서운의 대답에 유 회장은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서운의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
“멍청한 것.”
“아버지!”
태화가 놀라서 서운에게 다가갔다.
“한 비서 괜찮아요?”
“네.”
서운은 태화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화는 두 사람을 모두 쳐다봤다.
“지금 미친 거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짓을 이렇게 하고 있는 거냐고요.”
“너는 끼지 마라.”
“뭐라고요?”
“내가 끼지 말라고요?”
태화는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이마를 짚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지금 이게 범죄라는 것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시는 거예요?”
“범죄?”
“네. 범죄요.”
태화의 말에 유 회장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 회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한 비서 병원에 데리고 가라.”
태화는 유 회장을 노려보고 서운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서운은 움직이지 않았다. 태화는 억지로 그녀를 끌고 나섰다.
“미련한 것.”
유 회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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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상은 없습니다.”
의사는 아주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암이나. 뭐 그런?”
“체중이 급격하게 주신 것도 아니고. 저희도 사진도 찍어보고 그랬지만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다행이군요.”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은 그래도 생각보다 튼튼한 모양이었다. 아니 쓰러졌으니 그건 아니었다.
“그럼 바로 퇴원해도 됩니까?”
“오늘은 병원에 계시죠.”
“왜 그래야 합니까?”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요.”
“네?”
의사의 말에 백현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사진을 찍어서 몸에서 이상이 나왔다면 그게 환자 분의 상태를 설명을 해주는 것일 텐데. 지금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갑자기 쓰러지신 거니까. 저희가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가겠습니다.”
백현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바로 영재가 그를 부축했다.
“놔.”
“친구로 잡는 겁니다.”
백현은 물끄러미 영재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로 이런다는 것까지 밀어낼 이유는 없었다.
“퇴원하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유로 갈 수는 있는 거죠?”
백현은 의사를 노려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고개를 숙이고 진료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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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에요?”
“이거 놓으세요.”
“가만히 있어요.”
태화는 서운의 이마에 손수건을 가져갔다. 금세 손수건이 피로 물들었다. 태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뭔가를 던지면 그걸 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걸 도대체 왜 미련하게 맞고 있는 겁니까?”
“이러지 마요.”
“당신이야 말로 이러지 마.”
서운이 손을 밀어내자 태화는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는 거야?”
“유 회장님은 이제 더 이상 저에게 뭔가를 맡기지 않으실 겁니다.”
서운의 대답에 태화는 싸늘하게 웃었다.
“정말 정이 안 가는 여자로군.”
“굳이 유 부사장님께 정이 갈 이유는 없습니다.”
태화는 멀어지는 서운을 보며 가만히 턱을 만졌다. 그리고 피가 젖은 손수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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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여주고 그만 두라고?”
“그래.”
태화의 말에 백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백현의 반응에 태화는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신의 사람이라는 여자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그래?”
“한서운은 내 사람이 아니야.”
“백현.”
“한서운은 내가 아니라 회장님을 택했습니다. 도대체 왜 저에게 와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가 위임장을 어떻게 쓸 거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건가?”
태화의 차가운 물음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자네를 위해서 쓰겠지.”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유나은의 편을 들 거야. 어머니의 주식을 모두 활용해서. 적어도 자네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노력을 할 거야.”
태화의 말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태화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싸늘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너를 죽이고 싶었는데 또 다른 이유가 생겼군. 적어도 자기 여자 정도는 챙기지 그래?”
“본인이나 잘 하시죠.”
태화는 멀어지는 백현을 차갑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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