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엄마. 나 좀 봐.”
서운의 애타는 말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녀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제발.”
“저리 가.”
화자는 사나운 표정으로 서운을 노려봤다.
“너는 도대체 누구인데 왜 자꾸 나를 네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나는 아가씨 같은 딸을 준 적이 없는데. 도대체 왜 자꾸 나를 아가씨의 엄마라고 하는 거지. 내 아들. 내 아들을 데리고 와.”
“이러지 마요.”
서운은 입을 꾹 다물고 화자의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화자는 거칠게 그것을 피하며 그녀를 밀어냈다.
“더러운 것.”
“엄마.”
화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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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흥미가 없군.”
영재는 백현을 보며 아랫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왜 이리 심술을 부리는 건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는 지금 사장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에게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나의 사람이 아니니까.”
“저는 사장님의 사람입니다.”
“아니.”
영재의 대답에 나오기가 무섭게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영재를 노려봤다.
“너는 지금 내가 아니라 유나은에게 가려고 하는 거잖아. 지금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아닙니다.”
영재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백현이 이런 오해를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영재는 백현의 앞에 앉았다. 백현은 그제야 넘겨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영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뭐 하는 거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건방지게.”
“사장님.”
“일어나.”
“그럴 수 없습니다.
영재의 단호한 대답에 백현의 표정에 묘하게 변했다. 영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백현을 적으로 둬서는 안 되는 거였지만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것 정도는 백현에게 일러줘야만 하는 거였다.
“한 비서님에게 무언가를 들었습니다.”
“한서운?”
백현의 표정이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장님의 어머니에 관한 겁니다.”
“어머니?”
백현은 잠시 멈칫하다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하나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할 거라면 그냥 덮어 둬. 그 분은 내 친어머니가 아니니까.”
“아니. 친어머니십니다.”
백현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백현은 물끄러미 영재를 바라봤다.
“지금 그게 무슨?”
“한 비서님께 직접 들은 말씀입니다.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어머니께서 데리고 오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자식이 되고 싶어서. 홀로 그 모든 사랑을 받고 싶어서 사장님을 거리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방향의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웃기지 마.”
백현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사장님.”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고 나서 한서운, 한서운이 나를 구원해준 거야. 그녀는 나의 구원자야.”
“그리고 파괴자죠.”
영재는 덤덤하게 말을 하면서 백현의 눈을 응시했다. 백현의 입가에 싸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백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을 하면 오산이야. 나는 절대로 그런 거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니까. 아. 유나은과 꾸민 건가?”
“사장님.”
“닥쳐!”
영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백현은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가만히 영재를 응시했다.
“사실이 아니야.”
“사실입니다.”
“아니.”
백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백현의 입가에는 다시금 싸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생각이 전혀 없으니 사실이 아니야.”
“그게 무슨?”
“그런 천박한 여자를 내 어머니로 모셔야 하는 거라고? 그럴 리가. 나는 버려진 아이야. 알아?”
영재는 침을 삼켰다. 지금 백현이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는 거였다.
“저는 그저 사장님에게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진실을 말씀드린 거고요.”
“진실?”
백현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만히 영재의 눈을 바라보더니 하얀 이를 드러냈다.
“너는 지금 나를 동정하고 있는 거야. 아마 지금 이런 방식으로 유나은에게 다가간 거겠지. 나에게 친구가 된 것처럼. 하지만 너는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 회사를 삼키려고 하는 거지.”
“너무 지나치신 생각입니다.”
“아니.”
백현은 손에 힘을 줬다. 서류가 금세 구겨졌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가.”
“사장님.”
“나가라고!”
백현의 고함에 영재는 침을 삼켰다. 그렇지만 백현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움찔하지도 않고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지 마세요.”
영재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께서 그래도 무섭지 않습니다.”
“뭐라고?”
“사장님께서 저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하신 그 말씀. 저는 그게 그저 농담이 아니라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영재의 덤덤한 말에 백현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영재를 노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따라오면서 동정하게?”
“그건.”
“따라오지 마.”
백현은 영재를 남겨둔 채로 방을 나가버렸다. 영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지만 그는 말을 해야만 하는 거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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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운.”
“백현.”
화자의 병실 앞에서 마주한 서운의 표정에서 백현은 이미 영재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사실이야.”
백현의 물음이 채 끝이 나기도 전에 서운은 먼저 답했다. 백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내가 하는 대답을 믿지 않을 거면 도대체 여기에 왜 온 거야? 당신도 내 말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당신도 내가 하는 이야기에 흔들리니까 지금 여기에 온 것 아니야? 안 그래?”
“그건.”
서운의 말이 옳았다. 그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굳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서운에게서 말을 듣고 싶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변명 같은 것이 필요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냥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너무나도 쉽게 잊었어. 아마 살기도 힘든 그 상황에서 그런 것에 매달려서는 살 수 없다고 빠르게 생각했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도 모든 것을 다 잊었어.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엄마를 만났더라고.”
서운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인연이라는 것. 그리고 운명이라는 것은 그렇게도 엮일 수 있는 모양이야.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모든 것은 다 상관이 없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 모든 걸 다 망가뜨린 거야?”
“응.”
서운은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그 모든 사실을 다 알더라도 백현. 당신은 나를 떠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미 나에게 길들여져서.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뭘 해야 하는 걸까?”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
“누가? 당신이?”
서운은 높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밝게 웃었다.
“백현. 당신은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당신을 버릴까. 그게 겁이 나는 거 아니야? 당신은 내가 동우에게 가는 게 싫잖아. 오롯이 내가 당신의 것이길 바라는 거잖아.”
“그건 다른 거야.”
“아니.”
백현의 대답에 서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팔을 쭉 뻗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강 비서는 정말로 백현. 당신의 친구인 모양이네.”
“뭐?”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비밀을 말하지 않을 거야. 그건 너무나도 커다란 거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도 너무나도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당신에게 그걸 이야기해준 거야. 부러워. 그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 말이야. 신기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서운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하품을 하고 이리저리 목을 푼 후 차가운 눈으로 백현을 응시했다.
“돌아가.”
“싫어.”
“엄마가 백현. 당신을 보면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해. 나는 엄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아무런 혼란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엄마가 어떻게 당신을 알아보는 건지도 모르겠어. 모든 기억을 다 잃었으면서. 그래서 병원에 있는 거면서 도대체 당신을 어떻게 알아보니?”
서운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시고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
“싫어.”
“백현.”
“너는 나의 구원자였어. 그런데 애초에 내가 구원을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거지?”
“그러게.”
서운은 밝은 표정을 지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알 수 없는 불안 같은 것이 번졌다.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목에 뭔가 거북하게 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신은 나를 구원할 거야.”
“아니.”
백현의 간절한 말에 서운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지 않을 거였다. 이제 서운의 삶은 한서운의 것이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백현. 당신은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
“내 자리?”
“유나은의 곁.”
백현은 숨을 들이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현은 순간 비틀거리며 벽을 붙잡았다. 서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백현은 아랫입술을 물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서운을 노려봤지만 서운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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