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
“정말 가는 거야?”
“응.”
서운은 백현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할 자격이 없는 그녀였다.
“거기에 가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수도 있어. 정말 그래도. 그래도 내가 거기에 가도 된다는 거야?”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네 곁에 있을 거라는 어떠한 확신도 되지 못하는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렸나?”
“그건.”
서운은 침을 삼켰다. 이건 백현의 말이 옳았다. 서운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백현의 마음 같은 것에 대해서 그녀가 무언가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나도 참 한심해.”
“왜?”
“이제 와서 너를 잡으니까.”
“이게 잡는 거야?”
“응.”
서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
“응.”
백현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물고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를 유나은에게 보내지 않았으면 되는 거야. 그건 나의 욕심이었어. 그건 당신의 욕심이 아니야.”
“아니. 나도 욕심이 있으니 거기에 간 거야. 내가 욕심이 없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이유는 없었어.”
“답답하네.”
“그렇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는 아직 여유가 필요했다.
“다시 돌아오면 볼 수 있을까?”
“아니.”
매몰찬 서운의 대답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백현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였다. 그게 사실이었다. 자신은 일방적으로 떠나는 사람이었고 기다려달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내 반쪽이야.”
“그래.”
“우리는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
서운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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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리로 가면 된대요.”
“좀 기다려.”
백현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방금 전 영재가 지나간 길로 부리나케 걸어갔다. 좁은 골목이 보였다.
“이리로 올라가라고?”
“네.”
“미친 거 아니야?”
“형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죠.”
영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말하자 백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모두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내가 올라가면 너 죽인다.”
“일단 와서 해요.”
영재는 밝게 말하며 저 멀리 사라졌다. 백현은 허리를 두드리며 그 좁은 계단을 투덜투덜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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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서 패키지를 하자고 했잖아. 아니 도대체 이게 뭐가 좋다고 이 고생을 한다는 거야?”
“형. 우리 나이 아직 젊습니다. 그런데 무슨 패키지에요. 그건 할아버지들이나 하는 거라고요.”
“나 삼십대 후반이야. 그런 거 해도 되는 나이야. 게다가 그냥 일본이나 홍콩 같은 곳을 가자고 했더니, 동남아가 뭐야? 동남아가. 이런 거는 너 혼자 하라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말고.”
테이블에 널브러진 백현을 보며 영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미간을 모았다.
“여기는 만 원짜리 방이 없네.”
“하지 마!”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그런 곳에서 안 자.”
“돈 아껴야죠.”
“안 아껴도 돼.”
“어차피 형 한국 가면 백수 아니에요? 사장 자리 그만 둬서 아무 것도 없는데 너무 그러지 마시죠. 저야 뭐 아직 젊어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형은 이제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을 거 같은데요.”
“그런 거 없어도 돼. 나 그 동안 월급 되게 많이 받아서 건물도 있어. 지금도 세 잘 나와. 그러니 걱정 마.”
백현의 이런 고백에 영재는 뭔가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었다. 백현은 하품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쑤셨다.
“왜?”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요?”
“어?”
“나 그 동안 걱정했잖아요.”
“네가 안 물어봤잖아.”
“그건.”
영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먼저 물어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말해줄 수도 있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오늘 무조건 호텔에서 잘 거예요. 호텔. 무조건 호텔을 잡을 거라고요.”
“누가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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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호텔이 좋아.”
씻고 나오는 백현을 보며 영재는 입을 쭉 내밀었다. 백현은 씩 웃으면서 그런 영재에게 다가가 곁에 누워서 침대를 두드렸다.
“수청을 들거라.”
“저는 여자를 더 좋아하는데요?”
“뭐라는 거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백현은 웃음을 터뜨리고 그대로 영재의 허리를 안았다. 영재도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런 백현에게 장단을 맞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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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하려고?”
“아직은 정한 게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다시 채웠으니까. 언제든 뭐라도 다시 할 수 있겠죠.”
영재의 말을 들으니 괜히 이상한 마음이 드는 백현이었다. 영재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생각하는데 자신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 시간을 그저 허비하기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보면 형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해요.”
“그게 정답이겠지.”
영재의 지적에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자신의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정정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거였다.
“한 비서님께는 연락이 왔어요?”
“안 받으려고.”
“왜?”
“그만.”
영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영재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백현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그가 먼저 끌어낼 이유도 없었다.
“나는 먼저 올라가서 잘게.”
“네. 오늘 여행 마지막 날이니까. 쉬세요.”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재는 그런 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쭉 내밀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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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또 어디에 갈까?”
“어디에 가기는 어디에 가요? 그냥 일을 해야지. 그리고 형이랑은 여행 타입이 너무 달라서 안 되겠어요.”
“내가 뭐?”
영재의 지적에 백현은 입을 쭉 내밀고 항변했다. 영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은 형이지만. 여행 파트너로는 아니야.”
“너도 아니야. 너무 가난하잖아.”
“가난하니까요.”
영재가 가슴을 두드리며 당당하게 말하자 백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드물 거였다.
“뭐 하는 거야?”
“뭐가요?”
“그런 말을 누가 그렇게 해?”
“못할 이유 있어요?”
“없지.”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자신에 있어서 더 솔직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었다.
“부럽다.”
“뭐가 부러워요?”
“그렇게 솔직할 수 있는 거.”
“그럼 이제부터 솔직하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
영재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반문하려고 하는 순간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서운을 확인했다. 서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백현에게 다가와서 있는 힘을 다 해서 뺨을 날렸다. 그 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서우는 그리고 백현을 그대로 꼭 안았다.
“미친 새끼.”
“뭐 하는 거야?”
“왜 이제 와?”
서운은 그대로 백현의 목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뜨겁게 입을 맞췄다.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백현. 다시는 너 보내지 않을 거야.”
“한서운.”
“다시는. 다시는 너 보내지 않을 거야.”
서운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두 사람 사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충실하면 되는 거였다. 오직 서로만 바라보면 되는 거였다. 이제 진짜 연애가 시작이 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저 겉만 맴돌며 서로를 아프게 하는 그런 것은 더 이상 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두 사람의 진짜 지독한 연애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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