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독한 연애[완]

[로맨스 소설] 지독한 연애 [47장]

권정선재 2016. 12. 8. 07:00

47

뭐 하자는 거야?”

 

백현의 사무실로 들이닥치듯 온 나은에 백현은 미간을 모았다. 잠시 멈춰진 회의는 곧 계속 되어야 할 거였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거냐고?”

유 사장 앉으시죠.”

백현.”

앉으세요.”

 

백현의 여유로운 미소에 나은은 한숨을 토해내며 결국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백현이 어느 한 편을 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절대로 아니었다.

 

지금 이거 너무 유치한 거야. 이거 제대로 생각을 한 게 아니라고. 고작 비서에게 그 모든 걸 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한 비서가 도대체 뭔데? 그걸 어떻게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한 비서니까.”

 

백현의 너무나도 간단한 말에 나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비스듬하게 기댄 후 머리를 가만히 꼬았다.

 

안 되는 거야.”

유 사장. 회사입니다.”

회사고 나발이고 제대로 생각을 하라고. 한 비서에게 그 모든 권한을 줬다고 하면 오늘 주식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미친 듯 널뛰기를 할 거라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

현명한 판단.”

 

나은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기다란 손톱으로 가만히 소파를 긁었다. 기괴한 소리가 불쾌하게 울렸다.

 

백현.”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서운이 들어왔다.

 

뭐 하는 거야?”

나가!”

 

나은이 고함을 쳤지만 서운은 완벽히 무시했다.

 

이봐요. 백 사장님. 도대체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 이 상황에서 뭘 하자는 거예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제 보지 않았습니까?”

 

백현은 한 번 서운을 보고 한 번 나은을 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저는 쓰러졌습니다.”

아무 문제 없다며.”

그렇죠.”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깍지를 끼고 입을 쭉 내밀고 몸을 뒤로 기댔다.

 

그래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 비서의 뜻에 모든 것을 다 맡길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백 사장님이 사장 자리를 계속 맡으시길 바랍니다. 그러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은은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녀의 머리로는 지금 이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두 사람 뭐 하자는 거야? 여기에서 무슨 사랑 놀음이라도 하는 거니? 그런 거야? 뭐 하자는 거야.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었고 뭐가 있었던 거야? ?”

사귀지 않아.”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머리로는 이 모든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그녀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당신이 뭔가를 생각하건 그건 잘못일 거야. 백현. 당신은 늘 가장 나쁜 선택을 하는 거니까.”

강 비서나 내놔.”

뭐라고?”

그 사람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당신 아무 것도 하지 마. 강 비서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을 망가뜨리지 마.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야.”

이상해.”

 

나은은 한숨을 토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는 여기에서 더 할 말이 없네. 일단 우리 한 비서가 할 이야기가 되게 많은 거 같으니 가주지.”

 

나은은 두 사람을 한 번 노려보고 고개를 저었다. 백현은 물끄러미 서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비서도 나에게 할 말이 많습니까?”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말입니까?”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잖아. 그런데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그러게.”

 

백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서운은 그런 그를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 그만 둔다고 했으니 당신은 아마 나를 지지할 수 없을 거야. 그건 잘못된 거니까.”

그래서?”

당신이 해.”

 

서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애초에 내가 이 자리에 오기 바란 거 당신이었으니까. 이제 당신이 이 자리에서 무언가라도 하라는 말이야. 그게 아주 조금이지만 정의로운 거 아니야? 내가 억울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

정의라니?”

그러게.”

 

백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회의로 향하지.”

 

서운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

   




자 그럼 회의를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이미 사장을 그만 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들 어떤 선택을 하실 것인지. 뭐가 더 이 회사를 위해서 중요하고 좋은 결정인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백현의 말에 이사들의 표정이 꽤나 결연했다. 백현은 서운의 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뭘 할까요?”

그러니까.”

 

서운은 모두에게 바라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 어떤 답도 중요하지 않았다.

 

회의는 내일로 미루죠.”

안 됩니다.”

 

서운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백현이 막아섰다.

 

어제도 제대로 된 회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주주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너무 신기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그러니까.”

 

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은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을 들었다.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업무적 능력이나 이 회사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내가 그 지주 회사 사장과 잘 어울리는데?”

저는 자격이 없지만 유태화 부사장을 추천합니다.”

 

백현의 말에 나은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미 유태화 부사장은 식품 회사의 위기를 불러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지주 회사를 맡긴다고요? 그거 너무 위험한 생각이 아닌가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철저하게 조사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뭔가를 하신 적은 한 번도 없더군요. 그러니 저는 유태화 부사장을 추천해도 된다고 보는데요.”

 

태화에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결국 유나은인가?”

.”

그래.”

 

유 회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서운의 선택이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분명히 서운이 보다는 태화가 좋다고 했을 텐데.”

그래서 유 사장님을 정했습니다.”

 

유 회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유 사장님의 업무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저나 회장님이나 같을 거라 믿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럼 태화 녀석은 어찌할 것인가? 식품 파트 사장이 되는 건가?”

아닐 겁니다.”

 

유 회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태화 녀석에게 득이 될 것이 없군.”

그래도 잃은 것도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 임시 주총에서 다시 빼앗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 알았네.”

 

유 회장은 대충 손을 흔들었다. 서운은 고개를 숙였다.

==========================

정말 그만 두고 떠날 거야?”

.”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에게는 당신에게 들어갈 틈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어. 당신은 나를 너무 괴롭게 하느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당신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야.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나에게 도대체 무슨 미련을 주려고 하는 거야? 뭐라는 거냐고. 지금에 와서 뭔가를 돌리려고 하는 것도 너무 우습지 않니? 이미 다 끝이 난 문제야. 그런데 도대체 끝이 난 문제를 가지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데? 이해가 안 돼.”

그래.”

 

백현도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하지마 이 한심한 자신을 잡아줄 수 있는 것도 서운과 나은이었다. 이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온 거잖아. 제발 나를 망가뜨리지 말라고. 하지만 당신은 그게 아니라 다른 걸 선택했지.”

그래.”

 

나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숨이 막히고 답답해도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일은 다 일어난 후였고 모든 것은 다 망가져 버린 후였으니까.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두 살마 사이는 완벽하게 망가진 사이야. 알아?”

물론.”

 

백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강 비서는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야

네가 행복한 것은 싫으니까.”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백현의 말은 너무나도 잔인했지만 그의 진심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일 거였다.

=====================

그만 두겠습니다.”

 

퇴근 직전 서운이 꺼낸 말에 유 회장은 미간을 모았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백 사장님이 사직서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더 이상 자네를 인질로 잡고 있을 이유나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

.”

 

유 회장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가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네. 자네처럼 일을 잘 하는 유능한 사람이란 많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저를 놓아주세요.”

 

유 회장은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처음부터 서운을 놓아준다고 약속했던 것은 그였으니까.

 

백 사장님이 그만 두면 그만 둘 겁니다.”

그럼 그가 그만 두지 않아야 하는 건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없지.”

 

유 회장의 단호한 대답에 서운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백현도 당연히 할 수 없을 거였다.

 

뭘 할 건가?”

놀고 싶어요.”

논다.”

그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거든요.”

 

한 순간도 쉰 적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 산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너무나도 아프고. 너무나도 숨이 막혔다. 그 모든 시간들이 이렇게 자신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아무런 희밍도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자신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