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밥 2
“밥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겁니다. 밥이 맛있어야 다른 것들도 다 맛있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건 이제 알아요.”
지우의 말에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그걸 아는 사람이 여태 이럽니까?”
“뭐가요?”
“쌀이 공기에 닿으면 안 된다고요. 왜 그 동안 어머니들이 독에 따로 넣어놓고 그런 거 모르시는 겁니까?”
“그건.”
그런 이유 같은 것은 몰랐다. 그리고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어차피 포대로 두더라도 금방금장 소진이 되는데, 굳이 그것을 하나하나 다 독에 붓고 할 그런 여유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게 그렇게 큰 차이가 날까요?”
“공기에 닿으면 뭔가 묵은내 같은 게 생길 수밖에 없어요. 잘 되는 집은 도정도 자기가 한다고요.”
“하지만 그런 곳이 아닌 걸요.”
지우의 대답에 태식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뭔가 대단한 한정식 가게가 아니라고요. 여기에 오시는 분들은 일단 빠르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편하게 드시기를 바라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식당 살리지 않을 겁니까?”
“죽은 적 없어요.”
태식은 물끄러미 지우를 응시했다. 도대체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그 시선을 피했다.
“알고 있어요. 모든 음식에는 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 하지만 그거 혼자 하기에 버거울 수도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 다 합니다.”
“다른 사람들 안 해요.”
“그래서 안 할 겁니까?”
“하기는 할 거에요. 그런데 좋게 말할 수 없어요? 늘 그렇게 까칠하게. 하여간 사람이 되게 이상해.”
지우는 입을 쭉 내밀고 주방으로 향했다. 태식은 그런 지우를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준재가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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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 분 원래 아시는 분이세요?”
“누구?”
“그 컨설턴트?”
“아니.”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무례한 사람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저는 사장님께서 그 분을 모르시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왠지 오늘 보니까 그 분은 사장님을 아시는 거 같더라고요.”
“나를?”
준재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진 지우였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단골이라고 하더라고.”
“단골이요?”
“응. 그러니까 알겠지.”
“단골 아닌 거 같은데?”
“어?”
“아니에요.”
준재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데 공연히 이상한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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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다 먹었네. 더 줄게.”
“괜찮은데?”
“어?”
“밥이 맛있으니까 괜찮아.”
평소에 반찬만 열심히 먹던 원종이 밥만 있어도 괜찮다며 먹는 모습을 본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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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구나.”
지우는 밤에 혼자 앉아서 가만히 밥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지우개가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런데 지우개. 너 그 사람 아는 사람이야?”
지우개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건지.
“아는 사람이면 먼저 아는 척을 했겠지. 그렇게 나를 보고 모르는 척 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어렵네.”
식당 일이라는 것은 그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늘 엄마가 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 정말 잘 하는 거 맞아?”
지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괜히 유정의 모든 것을 자신이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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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요.”
“뭘 말입니까?”
“밥이 중요하다는 거요.”
지우의 말에 태식은 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습니까?”
“제 친구도 그러더라고요. 반찬이 없어도 남은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그 이야기는 밥이 중요하다는 거죠.”
“당연한 거죠. 밥이 맛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밥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혹시 나 알아요?”
“네?”
밑도 끝도 없는 지우의 질문에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우리 알바 생이 봤는데. 그쪽이 나를 아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해서요. 그게 너무 궁금하거든요.”
“그렇습니까?”
태식이 자신을 바라보자 준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로 주방으로 향했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는 그쪽이 생각이 안 나거든요. 도대체 나를 어디에서 본 거예요?”
“나를 어디에서 본 건지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겁니다. 왜 그런 것에 하나하나 다 신경을 쓰는 거죠?”
“이상하잖아요.”
지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 고맙긴 했다. 태식의 말대로 하나하나 하고 나니까 뭐가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를 도와주는 거. 그거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나는 그냥 여기에서 받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잖아요. 나중에 식당을 운영할 거라고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요. 그것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세도 다 내고. 여기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지우는 태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신이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태식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어감에 따라서 확시히 아는 것이 있었다. 그 누구도 이유 없는 선행을 베풀지는 않았다.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건지 말을 해줘요. 그래야 지금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모두 사라질 테니까.”
“그런 거 생각할 이유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곳의 단골이었고. 이곳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냥 여기에 손님이 다시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닙니까?”
“좋죠.”
지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식당에 손님이 늘어나고 맛있어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 태식에 대해서 다소 묘하게 느껴지는 이 상황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니 나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그거 말을 해줘도 되는 거잖아요. 꼭 그렇게 숨겨야만 하는 거예요?”
“숨기는 게 아닙니다.”
“오케이 딱 걸렸어.”
지우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을 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는 그쪽이 나를 알고 있다. 뭐 그런 의미로 해석이 되는 거죠.”
“그런 겁니까?”
“그런 거예요.”
지우의 단호함에 태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헛기침을 했다.
“도대체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무슨 일이 있엇던 것인지 궁금한 게 있었다면 처음 봤을 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물어봐서 달라질 게 없잖아요.”
“하지만.”
“됐습니다.”
지우의 말에 태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우는 다급하게 그를 잡았고 태식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더럽게.”
“뭐라고요?”
지우가 당황한 사이 태식은 그대로 식당을 나가버렸다.
“뭐야?”
지우가 놀라서 자신의 손을 만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번도 더럽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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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나 손 더러워?”
지우가 손을 내밀자 지우개가 지우의 손을 핥았다.
“우리 착한 지우개.”
지우개는 가만히 지우의 손길을 느꼈다.
“착하다.”
지우개마저 없었더라면 지우에게 남은 것은 없을 거였다. 그래도 지우개가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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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맛있어졌어.”
“네? 고맙습니다.”
유정이 있을 적부터 오던 단골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하니 뭔가 당황스러웠다.
“그 동안은 별로셨어요?”
“별로는 아니지.”
아저씨는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 젊어서 그런가. 뭔가 정성? 그런 것은 잘 느껴지지 않으니까. 다른 느낌이 들지.”
“정성이요?”
한 번도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아직 정성 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 같은 것이 없었다.
“저는 엄마가 아니잖아요.”
“그게 이유가 되나?”
“네?”
“자네 어머니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다 정성을 쓰셨어. 그래도 이제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거 같군.”
“그래요?”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뭔가 묘한 느낌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한 적이 없는 그녀였다.
“일단 밥이 맛있고, 달걀말이. 이것도 좋아. 앞으로 다른 반찬도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습니다.”
놀랐다. 밥을 그저 파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칭찬을 들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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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계세요?”
“왔어?”
준재가 식당에 오자 지우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 들었어.”
“무슨 칭찬요?”
“밥 맛있다고.”
“맛있다니까요.”
준재는 더 이상 듣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준재의 반응에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고마워.”
“뭐가요?”
“네가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줘서. 내가 다른 것을 볼 여유 같은 게 생긴 거니까. 이제 하나하나 또 달라질 수 있겠지. 일단 이 마음가짐. 이거부터 달라질 수가 있을 테니까.”
“그런가요?”
준재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래서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나보다.”
준재는 이 말을 하고 그대로 주방에 들어갔다.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별 거 아닌 거 같은 말에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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