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소주와 달걀말이 2
“저 사람이 앞에 앉은 그 순간 딱 알겠더라고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소주를 한 잔 비운 여자가 엷은 미소를 짓다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입을 열었다.
“아. 더 이상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나 혼자서 이 남자를 좋아하고. 기다리고. 사랑해달라는 말을 하는 거구나. 나 혼자서 그런 거였는데. 내가 정말 미련하고. 또 멍청한 거였구나.”
여자의 말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해본 그런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겪는 그런 거.
“알고 있어요. 내가 버티면 우리 두 사람은 그냥 이어질 수 있다는 거.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그러면 된다는 거.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 거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연인이라는 거. 연애라는 거. 서로가 좋아야 겨우 할 수가 있는 건데. 혼자서 좋아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지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그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해요.”
“뭐가요?”
“그런데 미련이 남는 거 있죠?”
“누구나 그렇겠죠.”
지우는 어색하게 웃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두 남자는 어떻게 생각해?”
“뭘?”
원종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모양새였다.
“아니 솔직히 연애라는 게 늘 뜨겁기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바쁜 것도 알고 그러면 이해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바빠서 나왔으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거지. 그렇게 나와서 무심하게 있을 건 뭔데?”
“피곤하니까. 그리고 다른 일도 신경이 쓰이니까. 앞에 있는 사람에 가장 신경을 써줘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 신경을 쓰라고. 그 신경을 앞에 없는 사람에게 쓰지 말고. 하여간 남자들은 이래서 안 돼.”
지우의 말에 준재는 입을 살짝 내밀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일단 손님이 먼저 연락을 해보지 않고 기다려보시는 건 어때요?”
“네?”
“음. 저희가 무슨 말을 하건 결국 결정은 손님이 내리시는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뭔가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한 번 쉬었다가 가시는 것도 필요하실 것 같아 보이거든요.”
준재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자 여자도 어색하게 말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는 그런 문제였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일단 그래야 겠어요.”
“나중에 꼭 들려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럼 우리 짠할까?”
지우의 제안에 모두 소주잔을 들었다.
“우리 모두의 현명한 연애를 위하여.”
다들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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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아까 그 손님처럼 그러신 적 없으세요?”
“왜 없겠어.”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정리를 하며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도 이미 겪은 일이었다.
“누구나 다 그런 일 한 번은 있지 않나? 아주 잘난 사람 말고는. 누구나 다 그런 감정 같은 건 한 번씩 느껴보지. 뭐 내가 그 여성 손님인 적도 있고. 반대로 남성 손님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죠.”
준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더하지 않았다.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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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 잠깐만.”
지우는 앞치마에서 봉투를 꺼내 준재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일당.”
“네? 저 돈 필요 없는데.”
“아니.”
준재가 손을 뒤로 하자 지우가 억지로 그의 손을 잡아서 봉투를 쥐어주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아는 것처럼 우리 가게가 사람을 쓸 정도로 그렇게 돈을 잘 벌지는 않으니까. 주휴 수당도 안 챙겨주고, 야근 수당도 못 줘. 이렇게 못돼먹은 사장 밑에서 일한다고 한 건 너니까.”
“네.”
준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그런 준재의 미소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왜 너에게 잘해줬는지 알 거 같아.”
“네? 왜요?”
“그냥 너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네. 세상에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거. 뭐 그런 느낌이 든다.”
지우의 말에 준재는 입을 살짝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의 말은 참 고마운 말이었다.
“사장님 좋아하는 거 알죠?”
“시끄러워.”
“진심이에요.”
준재의 눈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그러니까.”
“답을 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준재는 곧바로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걸요. 그래서 지금 사장님에게 어떤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 대답을 하라고 하면 뻔한 걸? 너는 싫다. 너는 아니다.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런 말 들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내가 좋아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나를 좋아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좋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은 준재보다도 더 무게가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못났어.”
“아니요. 예뻐요.”
준재는 씩 웃으면서 밝게 웃었다. 지우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지우개가 그녀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아 추워. 들어가.”
지우개는 식당으로 익숙하게 들어갔다.
“그럼 갈게요.”
“어? 어.”
준재는 그대로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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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준재 그 녀석 뭘까?”
지우개는 고개를 들어 지우를 응시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헥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 너무 못나고. 너무 한심한 사람인데. 도대체 왜 내가 좋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지우개는 지우의 몸에 가볍게 몸을 비볐다.
“내가 이상한가?”
지우개는 낮게 낑낑거렸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지우개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고마워.”
지우개도 없었더라면 견딜 수 없을 시간들이었다. 모든 것은 다 지우개가 있어서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네가 있으니 내가 사네.”
지우개는 가볍게 꼬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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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아졌네요.”
“그렇지.”
달걀말이를 보고 뿌듯해하는데 옆에서 준재가 나타나자 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준재는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준비할게요.”
“어? 어.”
지우는 입을 쭉 내밀고 가슴을 만졌다. 괜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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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어?”
“안녕하세요.”
어제 그 여자였다. 여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지우는 준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주문을 받고 카운터로 왔다.
“김치 하나요.”
“하나?”
“네. 하나요.”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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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돼지 나왔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너도 최돼지라고 부르라니까?”
“미친.”
지우는 툴툴거리며 입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여자는 한참이나 자리에 있었다.
“어제 그 분이지?”
“어? 어.”
지우는 원종이 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그의 양볼을 잡고 자신을 보게 만든 후 미간을 모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실례야.”
“어제 같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상하다니까.”
원종은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태식이 가게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달걀말이 줘요.”
“네? 네.”
또 웬 달걀말이. 지우가 달걀말이를 가져가자 태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어제만 그렇게 만들 줄 알았는데 오늘도 신경을 써서 만들었네요. 그리고 아직 따뜻한데?”
“그냥 제가 조금 더 바쁘면 계속 따뜻한 거 줄 수 있더라고요. 냉장고에 있는 게 아니라도. 그게 나은 거 같아서요.”
“그렇죠.”
그때 여자가 손을 들었다.
“저기 사장님 저도 달걀말이 좀 먹을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지우는 재빨리 주방으로 가서 달걀말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여자의 테이블에 놓았다.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여자의 감사 인사에 지우는 뭔가 멍해졌다.
“어제 그렇게 충고를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누구나 마찬가지죠.”
“여기는 그래서 지우개 식당인가봐요.”
“네?”
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가 개가 있어서 지우개 식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
“그건 왜 그러냐면.”
“사람의 아픈 마음을 지워져서 그런 거죠?”
“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지우가 해명을 하려고 하자.
“맞습니다.”
곧바로 준재가 미소를 지은 채로 끼어들었다. 준재는 씩 웃으면서 소주를 가져와서 지우의 곁에 앉았다.
“지우개 식당에서는 모든 슬픔을 지워주거든요.”
“일단 슬픔은 아니지만 고민은 지워줬어요.”
“그러면 되는 거죠.”
“그렇죠.”
여자는 조금 더 밝은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여유롭게 여자의 잔에 술을 따랐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실 거예요.”
“네. 그럴 거예요.”
여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로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부르르 떨고 입에 달걀말이를 넣고 우물거리고 더욱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달걀말이는 처음이에요.”
“고맙습니다.”
지우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태식을 돌아보니 태식은 입을 내밀고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이나마 식당이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우개 식당.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지워준다는 거. 되게 신기한 말이었다. 지우는 가슴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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