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달걀말이 2
“일단 그 망할 놈의 개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태식의 말에 지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간을 모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저기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냥 저에게 말씀을 하세요. 지우개에게 괜히 화를 내거나 그러지 말고요.”
“아니 식당에 개가 있으면 어떤 손님이 좋아하겠습니까?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 못 하는 겁니까?”
“저는 아무 상관 없는데요?”
준재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하고 씩 웃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이 식당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네?”
이유 같은 것은 딱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엄마가 하던 곳이니까 자신이 이어서 해야 하는 거였다.
“그건.”
“그런 이유가 없다면 지금 바로 접죠.”
“그거 말이 심하잖아.”
듣고 있던 원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식이 미간을 찌푸리자 지우는 준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거기 알바생. 손님 배웅 잘 해드리고 정리 좀 부탁해. 밥값은 오늘 패스.”
“네. 알겠습니다.”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원종을 바라봤다.
“그런 거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그냥 이 식당 엄마가 하던 곳이니까.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문을 닫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엄마가 하던 곳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런 거. 이어가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의 뜻. 뭐 그런 거 제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게 이유네요.”
“이유요?”
“네. 닫으면 안 되는 이유.”
이런 게 이유가 될 수가 있는 거구나.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네?”
“뭘 어떻게 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겁니까?”
“당연하죠.”
지우의 대답에 태식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눈을 반짝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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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사람이 뭔지 알고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거야? 너 그러다가 이 식당 그냥 다 넘기는 수가 있다고. 잘 되면 자기가 운영을 하게 해달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고?”
“너는 그냥 집에만 가라. 거기 알바생. 손님 가신다는데 도대체 왜 손님 배웅을 안 하는 거야?”
“안 가.”
준재가 다가오자 원종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지우를 보며 입을 내밀었다.
“너 그렇게 사람 잘 믿고 그러면 안 돼.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거잖아. 혹시나 너한테 무슨 엄한 짓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거야.”
“너도 말했잖아. 여기 음식이 맛이 없어졌다고. 엄마가 한 거랑 다르다고. 그런 거 너는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잖아. 그 사람만 말했어. 나는 여기 손님이 주는 거 그런 거 왜 그런 건지 몰랐다고.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거야. 나 엄마 식당 제대로 하고 싶어. 엄마가 여기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지우개랑 지킬 거야.”
어느새 들어온 지우개가 지우의 발치에 몸을 웅크렸다. 지우의 반응에 원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야. 그거야 당연하지. 어머니께서 얼마나 솜씨가 좋으셨는데. 그리고 너 아주 어릴 적부터 식당을 하셨잖아. 그 전에는 지우개 식당이 아니었지만. 원래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네가 그걸 그냥 따라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엄마의 요리법을 그대로 한 거야. 누구나 다 하는 달걀말이도 맛이 다르다고 하면 그건 문제야.”
“그렇죠.”
가만히 듣고 있던 준재도 끼어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걀말이 같은 것은 아주 기본이 되는 거예요. 뭔가 더 퍽퍽하고. 이상한 느낌이라고요. 그거 달라졌어요.”
“너는 조용히 해.”
원종은 이를 드러내며 준재를 노려봤다. 준재는 입을 쭉 내밀고 테이블을 닦기 위해서 멀어졌다. 원종은 벽을 가볍게 치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전문 컨설턴트를 써.”
“비싸.”
“내가 돈 빌려줄게.”
“미쳤어?”
지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지우개도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너는 오늘 수업 없어?”
“한 학기에 세 번은 빠져도 돼.”
“미친 소리 하지 말고 학교 가. 나중에 너희 어머니께서 뭐라고 할 줄 알고. 얼른 학교 가. 알았어?”
지우가 윽박을 지르자 원종은 마지못해 가방을 들고 식당을 나섰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그 곁에 준재가 다가왔다.
“사장님을 좋아하시나봐요.”
“누가? 저 녀석이?”
“네.”
“아니.”
지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원종은 정말 좋은 친구였다. 뭐 그다지 좋은 녀석은 아니었지만. 연인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런 지우를 보던 준재가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 말씀은 사장님도 저 분을 안 좋아하신다는 거죠?”
“어? 당연하지.”
“다행이다.”
준재의 말에 지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도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준재는 지우를 보며 밝게 웃었다.
“제가 사장님을 좋아하거든요.”
“에?”
“좋아해요.”
지금 얘가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뭐?”
“좋아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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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그쪽. 그러니까 알바생에게 밥을 주고 그랬다? 잘 챙겨주고 그랬다고?”
“네.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지우는 입을 내밀고 살짝 헛기침을 했다. 유정이 워낙 여기저기 잘 퍼주는 타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아원 봉사까지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은혜를 갚겠다고 오다니.
“그런데 왜 장례식에는 안 왔어?”
“갔는데요?”
“어?”
왔다고? 지우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준재는 아이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혀를 내밀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다이어트를 엄청 한 거거든요.”
“아.”
다이어트. 지우는 문득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졌다. 조금은 통통한 몸매. 다이어트를 늘 해야만 한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전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달라질 수도 있구나 신기했다. 다른 것은 하나 기억하지 못해도 엄마의 장례식에 온 사람은 지금도 머리에 다 기억이 되었다. 순간 지우는 손뼉을 쳤다.
“그 울던 학생!”
“맞아요.”
준재도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학생이었구나. 꽤 뚱뚱했다. 100kg은 훌쩍 넘어 보이는데.
“어떻게 한 거야?”
“네?”
“다이어트.”
“열심히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열심히 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는 거지. 너무 신기했다.
“그렇구나. 아무튼 나를 좋아한다니?”
“워낙 아주머니께 많은 말씀을 들었거든요. 우리 지우가 정말 착한 아이다. 우리 지우가 정말 예쁜 애다. 아주머니께서 사장님 사진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셨는지 몰라요. 예쁘다고. 좋다고 말이죠.”
“아 그래.”
참 주책이다 싶었다. 그런다고 해서 하나도 기억이 날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아니었는데. 순간 주책 맞게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에 준재는 자신의 일인냥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우를 안았다.
“괜찮아요?”
“어? 괜찮아.”
밀어내야 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준재는 가만히 지우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지우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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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나봐.”
준재를 보내고 나서 혼자 가게에 앉은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자꾸만 복잡해졌다.
“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냥 가게를 접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을 거였다. 아. 아빠도 어릴 적 돌아가시고 엄마도 대학생 때 돌아가셨으니까 그렇게 평범한 대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속을 썩이느니 하는 것을 보면 이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를 좋아한다고.”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머리가 더 자꾸만 복잡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데 지우개가 다가와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우개. 나 잘하는 거 맞아?”
지우개는 가볍게 꼬리를 흔들었다.
“정말 잘하는 거 맞아?”
지우개는 천천히 지우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지우는 생긋 웃으면서 그런 지우개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내가 더 잘 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건데. 정말 잘 해서. 그래서 그 사람에게 이 식당을 넘길 거야. 우리 엄마 식당. 지우개 식당이 더 잘 되고 나서. 나 그냥 평범한 대학생 할 거야. 그래도 되는 거지?”
지우개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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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어봐요.”
“네?”
지우는 멍하니 태식을 응시했다. 뭘 먹어보라고 하는 건지. 지우는 태식이 내민 통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열어보니 그 안에 달걀말이가 있었다.
“달걀말이에요?”
“보면 모릅니까?”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태식을 보며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러니까 이걸 왜 주는 거냐고. 화를 삭이는 지우와 다르게 태식은 여전히 해맑은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이걸 먹어보라고요?”
“그럼 이걸 왜 주겠습니까?”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던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일단 손에 닿는 달걀말이가 기름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르지도 않았다. 뭐지? 그리고 입에 넣었다. 부드러웠다. 속이 폭신하고 이상하게 단단한 질감이 아니었다.
“이거 뭐예요?”
“달걀말이요.”
“아니.”
뭐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다 있어. 지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네. 제가 했으니까요.”
요리를 잘 하는 게 맞기는 한데 이 사람은 정말 최악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우였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필요했다. 정말로 이 사람은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가르쳐주세요.”
“일단 어떻게 했는지 알아봐요.”
“네? 그게 무슨?”
“바로 알려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쪽이?”
“아. 저는 지우에요. 장지우.”
“네. 장 사장이 일단 해보시죠.”
지우 씨도 아니고. 장지우 씨도 아니고. 장 사장이라니. 어이가 없는 호칭에 지우는 웃음이 나오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 엄밀히 말을 하자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장 사장이 맞았다.
“내일까지 알아내면 되는 건가요?”
“네. 그리고 그쪽의 달걀말이를 해요.”
“좋아요.”
하루 만에 이런 느낌을 내는 게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이 남자. 그녀에게 뭔가 기회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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