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어색한 기류
“앞으로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웅의 경고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두 사람 모두 사고를 당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오늘 그리고 채집도 못했다고요.”
“그건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세연이 나섰다.
“솔직히 그쪽이 해야 하는 일을 언니가 해줘서 오히려 더 편하고. 대충 넘어가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왜 해야 하는 겁니까?”
“뭐라고요?”
“맞아. 맹세연 씨.”
세연이 발끈하자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지웅이 책임을 지거나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일만 해도 대단한 거야. 다른 일까지 맡기면 안 되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 지금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이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면 안 돼.”
“하지만.”
“게다가 버드스트라이크야. 비행 실수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쪽에 책임을 묻는 것은 그만 하는 게 좋을 거야.”
지웅은 지아를 보고 살짝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세요.”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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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서준의 사과에 윤태는 그를 바라봤다.
“형이 뭐가 미안해?”
“네 말처럼. 내가 너를 지켜야 하는 건데. 매니저로가 아니라. 멍청한 동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아니야.”
윤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서준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이었다. 자신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거였다.
“거기를 내려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굳이 그렇게 가지 않아도 괜찮은 것을. 왜 그런 건지 몰라.”
“내가 너를 말렸어야지. 천하의 이윤태가 얼마나 덤벙거리는 사람인지 다 알고 있는데. 너를 너무 믿었어.”
“뭐라고?”
서준의 농담이 섞인 말에 윤태는 입을 쭉 내밀었다. 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다행이야.”
“뭐가?”
“살아와서?”
“이 섬에서 죽을 일은 없을 거 같아.”
“그런가?”
서준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윤태의 옆에 누웠다.
“우리 같이 돌아가자.”
“그래야지.”
윤태도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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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식량은 이렇게 배분을 할 겁니다. 각자 가지고 계신 것. 그대로만 하죠. 그건 말 그대로 비상식량이니까. 알아서 처리를 하시면 될 겁니다. 드시건 말건.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지웅의 행동에 대해서 길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책임을 안 지겠다는 거야? 뭐야? 우리가 도대체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저희 책임이라는 겁니까?”
“당연하지!”
길석의 외침에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다.
“도대체 제가 뭘 더 해야 한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책임을 져야지.”
“책임이요?”
지웅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쪽이 일하는 비행기가 사고가 났는데 이런 식으로 고객들을 무시해도 되는 거야? 내가 누구인지 알아?”
“저는 이 비행이 마지막이었고. 지금쯤이면 엄밀히 제 사표는 수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뭔가를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까?”
“그래도 그 비행기를 타서 우리를 서비스한 거 아니야. 끝까지 책임을 지고 그래야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죠?”
가만히 듣고 있던 지아가 나섰다.
“도대체 저 분들이 왜 그래야 하는 건데요?”
“민폐나 끼치는 여자 주제에.”
“뭐라고요?”
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길석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아를 노려봤다.
“어디 젊은 여자가.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나서고 그래? 이코노미에 타서 뭘 모르는 모양인데.”
“이 비행기. 다 이코노미였어요.”
지아의 지적에 길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 분들 실수라고 해도 뭐 하자는 거야? 애초에 비행기에 식량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고 있던 사람 있어요. 여기 승무원이었던 분들이 우리에게 나눠주지 않았으면. 우리가 알 수 있어요?”
“뭐라는 거야?”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라고요. 오히려 저 분들에게 그 많은 음식을 지키라고 하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누가 저걸 훔칠 수도 있고. 차라리 우리가 각자 하는 게 맞아요. 더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아도 괜찮고. 나는 찬성이에요.”
“나도 찬성.”
지아가 손을 들자 윤태도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준이 손을 들었고, 이어서 윤한과 재율, 그리고 세연이 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손을 들자 길석은 혀를 끌끌 찼다.
“이 사람들 여기에서 살아나갈 생각을 안 하는 거네. 살아갈 생각을 하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지금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다 같이 살자는 거예요.”
지아의 말에 길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음식을 가지고 가장 멀리 있는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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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고마웠습니다.”
“아니요.”
지웅의 감사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저 당연한 말을 한 것이 전부였다.
“아까 그 분이 이상한 거였어요. 그건 그쪽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뭐 책임을 질 수 있는 있죠.”
“아니요.”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혹여나 아까 그 아저씨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분명히 이것저것 더 귀찮게 행동을 할 거야.”
“기자라고 하셨죠?”
“네? 네.”
“확실히 기자 같네요.”
“그거 욕이죠?”
“아뇨.”
지아의 말에 지웅은 순간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원래 그렇게 따지고 드는 성격이에요. 뭐 하나 쉽게 넘기지 못하고. 이게 뭐 좋은 성격이죠.”
“그러게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런 성격이어야 하는 거였는데 이건 너무 어려웠다.
“그나저나 서울에서는 우리를 알고 있을까요?”
“사라진 것이나 뭐 다르 건 알겠는데. 일단 여기까지 구조대를 보내거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어요.”
“왜요?”
“확실히 살아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여기에 섬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렇구나.”
지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지웅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표정을 지으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비행기라도 건지기 위해서 누군가는 올 거니까요.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할 테니까요.”
“그렇겠죠?”
“당연하죠.”
지웅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아에게 초콜렛을 건넸다.
“이게?”
“고마워서요.”
“아니요.”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을 막 받을 수는 없는 거였다. 이런 곳에서 초콜렛 같은 것은 아주 중요할 거였다.
“이건 가지고 계세요.”
“아니요. 저 초콜렛 안 좋아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웅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지아는 그 초콜렛을 손에 꼭 쥐었다. 이런 곳에서 초콜렛 같은 것이 얼마나 귀한지 그녀가 더 잘 알고 있기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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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아저씨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세연의 말에 윤한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승무원 분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데. 도대체 왜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걱정이네요.”
“뭐가요?”
“이제 모두 스스로가 자신의 식량을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이거 은근히 귀찮은 일일 거 같은데요.”
“나는 사람들을 믿어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윤한과 다르게 세연은 그저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여기에서는 누가 가져갔는지도 쉽게 알 수밖에 없어요. 이 상화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우숩죠. 그리고 우리들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건 모르죠.”
“하여간 나빠.”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삐뚤었어요?”
“현실적인 겁니다.”
“애초에 현실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 혼자서 현실적이어서 뭐 어떻게 하자고요? 우리가 지금 현실적인 상황이에요?”
“네?”
세연의 말에 윤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옳을 거였다. 자기들은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여기에서 현실을 찾는다는 것. 어쩌면 그게 더 우스운 것일 수도 있었다.
“뭐. 그럼.”
“적어도 나는 그쪽 거 안 먹어요.”
“내가 줄 겁니다.”
윤한은 세연을 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연은 아랫입술을 물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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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좀 괜찮아요?”
“응.”
세라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사람들 너무해요.”
“뭐가 너무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누구에게라도 털어야 하니까.”
지웅은 자리에 앉아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앞으로 더 심해지겠지.”
진아의 심드렁한 대답에 세라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더요?”
“그럴 거야.”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사람들이 무슨 일을 당한 거지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지. 곧 다들 알게 될 거라고.”
“조난이라는 거.”
세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난이라는 말. 뭔가 무서운 말이었다. 과연 무엇이 또 벌어질지 그녀로는 알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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