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생각나는 사람
“미친 거 아니야. 강지아.”
지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꾸만 윤태와의 키스가 생각이 나서 머리가 복잡한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언니 어디 아파요?”
“어? 아니.”
세연이 텐트에 들어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웠다.
“무슨 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
“그러게요. 그럴 일이 없는데.”
세연은 고개를 갸웃하고 입을 내밀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고 살짝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이 식량을 어떻게 하지?”
“그러게요.”
세연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는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서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이거 분명히 다 버릴 거예요.”
“어?”
지아는 너무 적어서 고민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세연은 그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여기에서도 약간 자급이 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대충 위치를 보면 겨울도 오지 않을 거 같아요.”
“겨울이 없다.”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이 없다는 말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그리 짧지 않을 거 같았다.
“여기에서 어서 나가야 할 텐데.”
“한국에서 사람들이 오겠죠?”
“모르겠어.”
지아의 솔직한 고백에 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신경이나 쓸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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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비서실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 국민들이 거기에 몇이나 타고 있는지 그것도 파악이 되지 않은 겁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무슨.”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거기 지도부터 구해 오세요. 아니. 거기에 도대체 몇 명이나 타고 있었던 건지. 그거부터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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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하세요.”
아침에 마주한 지아와 윤태는 어색하게 서로를 응시했다. 뭔가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나시네요.”
“이윤태 씨도.”
지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괜히 윤태를 마주하는 것이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 뭐예요?”
“뭐가?”
“이윤태 씨랑.”
“뭐가?”
세연은 여전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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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단하세요.”
“네?”
세라의 칭찬에 지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저라면 그러게 하룻밤 같이 있지 못했을 거 같은데요. 거기에 내려가는 거 어려운 일이잖아요. 특히나 그 어두운 시간에. 거기에 내려가면 뭔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 뭔가 무섭잖아요.”
“그런가?”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기분이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런 거 중요하지 않아.”
“정말로요?”
“그럼. 거기에 사람이 혼자 있으니까. 그게 걱정이 되는 거지.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신경을 쓰면 아무 것도 못할 걸.”
“그렇죠.”
세연은 지아의 말에 순순이 공감했다.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개를 주웠다.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거 다 먹을 수 있나?”
“일단 다 가지고 가는 거죠. 그리고 못 먹을 것은 없는 거 같아요. 여태 탈이 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좀.”
지아는 조개를 이리저리 살폈다. 혹시라도 이걸 먹고 누군가가 탈이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냥 이렇게 막 주워가는 거야? 그리고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더 먹는 거고?”
“일단은 식량을 자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식량이 있잖아.”
“아니요.”
세연은 검지를 흔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언니나 저는 그걸로 꽤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남자들은 아닐 거예요. 이미 그거 부족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도 봤어요. 왜 남성과 여성을 같이 배급을 하냐. 그러면서 말이에요.”
“말도 안 돼.”
지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여기에서도 그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있어?”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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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릴 게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걷으라는 말이야.”
길석의 대답에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정말 너무나도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곳에서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 그거 모르시고 이러시는 겁니까?”
“다 같이 살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아니 여자들이 남자보다 당연히 덜 먹어야지. 여자들이 부끄러운지 모르고.”
“뭐라고요?”
세라는 곧바로 발끈하며 나섰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디 어린 게 따박따박. 네가 그러고도 지금 승무원이야? 서비스직을 한다는 게. 이러니까 안 되는 거지.”
“지금 여기 항공기 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저희는 조난을 당한 건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뭐라는 거야?”
“이봐요.”
길석이 목소리를 높이자 지웅은 앞으로 나섰다.
“여기에서 이러신다고 해서 달라질 거 없습니다. 저희들은 뭐 하나 빼돌린 것 없고 정확히 나눴습니다. 도대체 왜 저희에게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러신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너희들이 무슨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우리가 돈을 대고 이 비행기를 탔는데. 도대체 왜 책임을 안 지려는 거야? 우리가 구조가 되도록 뭔가를 해야 하는 거잖아.”
“저희가 뭘 합니까?”
지웅은 침을 삼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희도 더 이상 해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고소할 거야.”
“하세요.”
“뭐라고?”
“저도 고소당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하겠지만요. 얼른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웅의 말에 길석은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못 마땅한 표정을 짓고 멀어졌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세요?”
“응.”
세라의 물음에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의 일들을 제대로 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뭔가 미안했다.
“내가 더 제대로 해야 하는 건데.”
“선배님께서는 이미 제대로 하셨어요.”
“그래도. 아무튼 괜찮아. 그러니까 우리도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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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의 일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매일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모두가 하는 일들은 비슷했다. 여자들은 간단하게 채집을 하고 남자들은 탐색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무조건 저 너머로 가야 해요.”
“하지만 갈 수 없잖아요.”
재율의 제안에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해변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아요. 그리로 가면 뭐가 있는지 알아내는 건 아직 쉽지 않을 거예요.”
“구조보트.”
윤태는 고개를 들었다. 지웅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 입을 살짝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거면 일단 해안을 볼 수는 있겠네요.”
“좋네.”
“그런데 누가 탑니까?”
“그건.”
“제가 탈게요.”
재율이 손을 들었다. 지웅은 미간을 모으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이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안 됩니다.”
“왜 안 되는 거죠?”
“한 사람이 계속하면 당연히 그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다른 사람 없습니까?”
지웅의 물음에 모두 눈치를 살필 다름이었다. 재율이 다시 손을 들려는 순간 시우가 손을 들었다.
“제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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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어?”
“뭐가?”
“거기가 어디인지 알고?”
“안전해.”
“안전?”
시안은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저었다.
“네 말처럼 안전한 곳이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왜 네가 가야 하는 거냐고? 꼭 네가 가야 하는 거면 내가 갈게.”
“내가 자진해서 간다고 한 거야.”
시우의 말에 시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누나. 우리는 셋이나 있어. 그 만큼 더 열심히 뭔가를 해야 하는 거야. 안 그래?”
“너를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혹시라도 그 남자처럼 막 떨어지고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누나가 올 거잖아.”
시우의 대답에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아니야?”
“보내.”
생선을 말리던 시인의 말에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언니 어떠헥 그럴 수가 있어? 시우. 우리가 어떻게 키웠는데. 거기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야.”
“어차피 다른 남자들도 가. 그리고 우리 여기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거잖아. 우리 이렇게 유난하게 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조금 더 많이 받은 거 알지?”
“그건 알지만.”
지웅은 세 사람에게 조금 더 많은 식량을 줬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우리는 텐트도 두 개나 얻었어. 남자는 같이 써야 하는데. 시우가 우리 동생이라서 따로 쓰는 거라고.”
“그래도.”
“괜찮을 거야. 그렇지?”
“응.”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이 자신을 믿어주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더 일어나겠어?”
“그렇지.”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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