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당신이라는 사람
“이거 성추행이야.”
“성추행은 무슨.”
지아의 날카로운 반응에 윤태는 어색하게 웃었다.
“사고. 그냥 사고라고요. 엑시던트? 사고 몰라요. 그냥 실수. 그걸 가지고 무슨 추행까지 이야기를 해요.”
“이게 어떻게 실수야? 네가 내 목을 끌어당겨서. 아무튼 그 뜨거운 키스. 그게 어떻게 실수냐고?”
“뜨겁기는.”
윤태는 어색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거 초등학생들보다도 유치한 거였어요. 그거 가지고 이상한 말을 하면. 그거 기자님이 이상한 거죠.”
“뭐라고?”
지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너 이 미친 새끼가.”
지아가 발끈하자 윤태는 더욱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너 나 좋아하냐?”
“아니요.”
“이윤태 씨 그럼 왜 그랬어요?”
“그러니까.”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냥 이 순간에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것에 다른 생각이 든 게 분명했다.
“미안해요.”
“그게 다야?”
“죄송합니다.”
지아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이윤태 씨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나랑 있다고 해서 여자가 만만하고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 거 말도 안 되는 거야. 여자랑 그렇게 있다고 해서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거 아니라고.”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윤태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믿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말로 지아가 만만하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어.”
“미안해요.”
“됐다고.”
“미안. 하다고요.”
윤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기자님이 여자라서. 만만해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그럼?”
“모르겠습니다.”
윤태의 대답에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게 뭐야?”
“그냥.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대요? 이윤태 씨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감정 같은 것을 생각을 한 적이 없죠? 모든 것은 다 당신이 생각을 하는 대로. 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아니요.”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었다. 그리고 지아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나를 그렇게 쓰레기로 보지 마요.”
“그럼 뭔데?”
“그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태는 머리를 마구 문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그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그냥 너무 다행이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나서 너무 다행이다. 그랬는데. 그냥 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 절벽을 내려왔을 때. 또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요.”
“뭐라는 거야.”
지아는 애써 웃음을 지은 채로 넘기려고 했다. 지금 윤태가 하는 행동은 마치 고백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만.”
“좋아하나봐요.”
들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고백을.
“싫어. 취소야.”
지아는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고백을 하는 남자가 어디에 있어? 무조건 취소야. 그거 아니에요. 그거 고백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윤태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 행동은 절대로 고백이 아닐 거였다. 그냥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마음 같은 것을 지아에게 조금이나마 겨우 이야기를 하는 것 정도가 전부일 거였다.
“저도 제가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냥 기자님에게 이런 거. 그냥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대체 뭐냐고.”
지아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상황이 너무 복잡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흔들고 가벼운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냥 여기라서 그러는 거야.”
“네?”
“그러니까. 그거 들었죠? 이윤태 씨도. 막 높은 곳이나. 그런 곳에서 사랑 고백을 하면 더 효과가 크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요. 그거야.”
“아니요.”
지아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벽에 머리를 기대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요?”
“처음에는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솔직하게 말을 해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말을 한 것처럼 나를 위해서 와줬고요. 형도 와주지 않는 곳을 기자님이 와줬어요.”
“그거야 당연한 거죠.”
“아니. 당연하지 않습니다.”
윤태의 말을 듣고 나니 지아도 그의 말이 살짝 공감이 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네.”
“그리고 이건 비밀이에요.”
“알겠습니다.”
지아는 윤태를 한 번 노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동굴 밖을 내다보았다. 확실히 물이 줄어든 기분이었다.
“더 있어봐요. 물이 더 줄어들 거 같으니까.”
“네.”
지아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시간에 눈을 감았다. 그래도 윤태가 말을 걸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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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이 상황에서도 사람을 구하겠다고 그렇게 갔다는 것이 말이에요.”
“무모한 거죠.”
서준의 단호한 대답에 세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여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남자도 자신을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사건건 다 시비를 걸지.
“매니저 아저씨 친구 없죠?”
“아저씨요?”
세연의 말에 서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나이가 몇 살인지 알고 나에게 아저씨라고 하는 겁니까? 나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 아니거든요?”
“저에게는 충분히 아저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아무튼 아저씨 성격 되게 나빠요?”
“내가요?”
서준은 자신을 가리키면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이거 아직 산 세월이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시나 보네. 이봐요. 저 같은 사람이 진국인 겁니다. 사람들도 저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요. 편하고. 사람들에게 모두 다정한 그런 거라고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안 좋아하는 건데?”
세연의 단도직입적인 대답에 서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연은 서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신기하죠?”
“네?”
“참 밝아요.”
재울까지 앞으로 가자 서준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니 맹세연. 저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나에게 저렇게 막 행동해도 되는 거야? 진짜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서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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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이 더 줄었어요.”
“일단 기자님부터 가요.”
“네?”
“어차피 저는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해요. 아직 밑에 상황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저는 분명히 짐이 될 겁니다.”
“뭐라는 거야?”
윤태의 말에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같이 죽어요.”
“하지만.”
“그리고 안 죽어. 물이 줄어들고 있잖아. 이러다가 늘어나면 또다른 곳이 생길 거야. 그리고 우리 이렇게 한참 내려왔는데. 설마 또 뭐가 있으려고? 이제 정말 하류일 거야. 그러니까 약한 소리 하지 말고 나와요.”
“그래도.”
“닥쳐!”
지아의 고함에 윤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봐요. 이윤태 씨. 진짜 이런 지질함을 기사로 쓰기 전에 빨리 일어나. 그래도 이윤태 씨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은 이윤태 씨가 너무나도 멋진 오빠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건 그렇죠.”
윤태는 마지못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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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물이 줄어들고 있네요.”
“그러니까.”
지아는 주위를 바라봤다. 그래도 아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구조였다. 저 위로 가는 방법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절벽이 점점 더 낮아지는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지의류 같은 것도 점점 낮은 곳에 있었다.
“물이 우리 머리까지 오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럴 어떻게 알아요?”
“이끼. 여기 이끼를 봐요. 이끼는 습기가 있어야 하니까. 이거보다 더 위로는 물이 안 가는 거야.”
“그러네.”
정말 지아의 말처럼 벽에 붙은 이끼들은 일정 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은 꾸준히 낮아졌다.
“그럼 사는 거네.”
“내가 살린 거야.”
“알겠습니다.”
지아의 대답에 윤태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또 하루가 그냥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질 거 같죠?”
“그러니까.”
윤태의 말에 지아도 미간을 모으며 하늘을 응시했다.
“오늘은 무조건 돌아가야 하는데.”
“뭐 위험하지 않지 않겠어요?”
“추울 거야.”
지아의 대답에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지아의 말처럼 점점 한기가 들고 있었다.
“어젯밤에야 내가 가지고 있던 불이 있어서 어떻게 했지만 오늘 밤은 무리에요. 우리 둘 다 죽어.”
“안 죽을 거라면서요?”
“오늘 안에 돌아가면 안 죽는 거지.”
“그게 뭐야?”
“나 못 믿어?”
지아가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잠시 멍하니 있던 윤태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렇지 믿어야지.”
지아는 윤태를 한 번 보더니 한숨을 토해내고 부축했다. 윤태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괜찮지 않았기에 지아에 체중을 싫었다. 뭔가 지아에게 더 고마운 일이 자꾸만 생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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