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얼른 가요.”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연이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자 윤한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직 어둡잖아요.”
“윤한 씨가 거기에 있었으면 언니는 분명히 빨리 가서 구하자고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빨리 가야 한다고요.”
윤한은 잠시 멍하니 세연을 보다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려는 순간에 지웅이 나타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금 가실 겁니까?”
“아마도요.”
“같이 가죠.”
“네. 알겠습니다. 나가 계시면 준비할게요.”
지웅과 세연이 텐트를 나가고 나서 윤한은 이리저리 목을 풀며 기지개를 켰다. 귀찮기는 했지만 세연의 말도 옳았다.
“하긴. 누나라면 나갔겠지.”
윤한은 입을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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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윤태는 아까부터 뭔가가 자신을 때리고 있다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가 그게 지아라는 사실에 겨우 미소를 지었다.
“왜요?”
“얼른 일어나라고!”
지아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에 윤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뭐야?”
물이 넘실거렸다. 윤태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이게 무슨?”
“물이 분 거야.”
“왜?”
“모르지.”
지아의 당연한 대답에 윤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래서 여기에만 모래톱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저 위는 무리죠?”
“아무래도.”
전날은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던 다리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류로 가지.”
“네?”
“거기로 가면 뭔가 답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상류로 가면.”
“상류로 가서 길이 나오지 않으면?”
“하지만 하류로 가면 이 불어난 물이 더 무리가 될 거예요. 우리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요.”
“겁쟁이네.”
지아의 말에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
지아는 눈을 반짝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그냥 있으면 안 되는 거니까.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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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불었어.”
“말도 안 돼.”
세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어젯밤 그곳은 물이 한 가득이었다.
“하지만 어제 낮에는 괜찮았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거.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어제 보름이 떴잖아요.”
윤한의 말에 세연은 입을 막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웅은 혀로 입술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되었을 거 같습니까?”
“일단 하류로 가죠.”
“하류는 왜요?”
“떠내려 갔건. 위험을 알고 갔건. 무조건 하류로 향할 거예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 일단 찾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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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네.”
윤태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윤태가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순간에 동굴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지아는 윤태의 발목에 손을 대려고 했지만 윤태가 너무 아파해서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모르죠.”
지아의 단호한 대답에 윤태는 침을 삼켰다.
“다행히 물이 여기까지는 닿지 않는 모양이에요. 이끼 같은 것도 이 아래에 있으니까. 하지만 정확히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니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신기하네.”
“너무 간단한 거 아닙니까?”
“왜요?”
“아니.”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게 말하잖아요.”
“그럼 여기에서 어떻게 해?”
“여기에 왜 있는 겁니까?”
윤태의 질문에 지아는 입을 내밀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가 안 가는데요?”
“아니 나랑 같이 있으면 기자님도 죽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나를 두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는 거야?”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어차피 나 혼자서 가지도 못할 거야.”
“왜요?”
“물이 급속도로 불었잖아. 나도 여기에 있는 거 차라리 다행이야. 오히려 자기가 이렇게 다쳤으니까 여기에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자기도 여기에 있을 생각 같은 거 못했을 거 아니야?”
“그건.”
그럴지도 몰랐다.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고 벽에 기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뭐가요?”
“조난.”
“그래도 살았잖아.”
지아의 미소에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게 산 건지 모르겠어.”
“산 게 중요하죠.”
지아는 윤태의 맞은 편에 앉은 채로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산다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적어도 우리는 그 비행기의 다른 승객들보다는 운이 좋은 거니까.”
“운이 좋았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겠죠.”
“까칠해.”
지아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꼭 나가야겠어.”
“왜요?”
“이윤태가 얼마나 무신경한 사람인지. 얼마나 삶이 어둡고 응? 그런 사람인지 내가 다 말을 할 거야.”
지아의 말에 윤태는 잠시 멍하니 있다 웃음을 터뜨렸다. 지아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더 버텨봐.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올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 올 테니까.”
지아의 말에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지아 기자님은 모든 것이 그렇게 쉽습니까?”
“아니.”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살면서 쉬운 것은 하나 없었다. 모든 것은 힘들었다.
“나에게 쉬운 것은 하나 없어. 그러니까 믿는 거야. 그렇게 힘든 시절을 다 보냈는데. 여기에 와서 주저앉는 거. 그거 되게 우습고. 나 그런 거 하나도 안 하고 싶으니까. 그런 거 너무 싫으니까.”
지아의 대답에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희망이라도 가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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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그럼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어떻게 구할 거예요?”
“그런 말 할 시간 없습니다.”
하지만 지웅의 단호함에도 누구 하나 먼저 나서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려는 사람은 결국 가야 하는 것은 그들일 거였다.
“나도 같이 가죠.”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헝클었다.
“나도 책임이 있는 거 같으니까.”
“거기 승무원은 가지 말지.”
사람들에게서 들린 말에 지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서 그래도 리더라는 사람인데. 거기에 갔다가 괜히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저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세라의 반응에 길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당신이 가서 죽지 그래.”
“뭐라고요? 이 아저씨가.”
“그만들 하시죠.”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쩌면 위험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이 가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러면 지금 서준 씨. 권윤한 씨. 그리고.”
“저요.”
세연은 손을 들었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렇게 가시죠.”
“저도 가겠습니다.”
표재율. 대학생이라는 사람이었다. 지웅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남자가 많은 것이 유리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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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참 내 뜻대로 아무 것도 안 되는 사람이야. 어쩌면 그렇게 안 풀리는지 신기할 정도라니까.”
“그런가요?”
“응.”
지아의 말에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를 위로하려는 말이었지만 고마웠다.
“나는 내 인생이 도대체 왜 그 모양인지 너무 화가 났다니까?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기자잖아요.”
“기자가 대단해 보여요?”
“그럼 아니에요?”
“안 대단해요.”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대단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윤태도 이렇게 만들고.
“그때 내가 데스크에 제대로 받았으면 그런 기사 나가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면 악플도 없었을 거고. 그러면 여행을 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나 뭔가 되게 억울한 일을 당한 거 같아.”
“억울하기는 제가 억울하거든요.”
“없던 일 아니라며?”
“그건.”
지아가 공격을 하자 윤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뭐 다행이죠. 어떤 일이건 이렇게 풀린다는 게. 그리고 더 다행인 것은 뭔지 알아?”
“뭔데요?”
“물이 줄어들고 있다는 거야.”
“정말로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입구로 향했다. 정말 아까보다 수위가 낮아진 것 같았다.
“다행이다.”
“우리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지아의 말에 윤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뒤로 후다닥 밀려나다가 잘못해서 지아의 팔에 걸려서 넘어졌고 지아도 그를 도와주려다 그의 위에 포개졌다.
“그러니까 이건.”
“실수죠.”
지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윤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지아의 입에 입술을 가져갔다. 지아는 눈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 지아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지금 뭐 한 거예요?”
“그러니까.”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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