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어쩌다 우리[완]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9장. 구원자]

권정선재 2016. 11. 23. 01:42

9. 구원자

미친 거 아니야?”

 

아래를 본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까마득한 절벽 저 밑에 윤태가 홀로 있었다.

 

여길 어떻게 안 다치고 간 거야?”

운이 좋았죠.”

 

서준의 심드렁한 대답에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저기 내려갈 방법 없어요?”

?”

아니 저기에서 올라올 방법은 없어 보이고. 누구 하나 같이 내려가서 저기에서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친 거 아닙니까?”

 

서준이 다소 거칠게 말렸지만 지아는 단호했다.

 

서 매니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이윤태 어두운 곳에서 혼자 못 있는 사람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렇다고 쳐도.”

여기 내려갈 수 있기는 하겠네요.”

 

아까 윤태가 내려간 길을 본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좁기는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남자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라면 이 정도 폭도 크게 무리 없이 내려갈 것 같기는 해요.”

안 됩니다.”

 

서준이 지아를 막아섰다. 하지만 지아는 단호했다. 지아는 윤한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윤한이 서준이 잡았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누나 얼른 가요!”

강지아 씨!”

 

지아는 세연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연도 지아를 보고 미소를 짓고는 그녀의 허리에 줄을 잘 감았다. 그리고 나무에 한 번 매단 후 그 끝을 잡았다. 지아는 천천히 그 좁은 턱을 밟았다.

 

무섭네.”

 

하지만 윤태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했다. 이 정도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강지아 씨!”

시끄러워요!”

 

서준은 어느새 풀려나서 아래를 보며 외쳤다.

 

위험합니다!”

그렇게 정신 사납게 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요!”

 

지아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무서웠다. 특히나 어두운 밤은 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윤태에게 빚을 갚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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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윤태는 소란스러움에 절벽 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지아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윤태는 뒤로 물러났다.

 

뭐 하는 겁니까!”

내려가는 중이에요!”

 

아니 누가 그걸 모르는 거냐고.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지아가 저러니 괜히 자신이 미안해졌다.

 

내려오지 마요!”

여기에서는 올라가는 게 더 힘들어요!”

 

지아는 윤태가 생각했던 그 작은 틈을 디뎠다. 그리고 줄이 짧아지자 심호흡을 하고 허리에서 줄을 풀었다.

 

강지아 씨!”

 

하지만 지아는 윤태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더욱 더 빠르게 내려왔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내려선 후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서웠다.”

뭐 한 겁니까?”

무서웠죠?”

 

지아의 미소에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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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 뭐야?”

대단하죠?”

 

윤한의 미소에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저렇게 내려간 것을 보면 줄 길이만 길면 여기 오르락 내리락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뭔가 다른 걸 할 수도 있을 거고.”

안 됩니다.”

뭐가 자꾸 안 됩니까?”

 

서준의 반응에 윤한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해야죠.”

우리 아직 해변도 다 파악하지 못했어요.”

여기가 섬이 아니면 파악할 이유가 없죠.”

그건.”

 

윤한의 말에 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윤한의 말이 옳았다. 섬이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섬이 아니라면 휴대 전화가.”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로밍이 안 될 수도 있죠.”

 

세연도 미소를 지으며 윤한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언니 말을 들으니까 이윤태 씨 어두운 거 정말 싫어한다면서요? 이걸로 다행 아니에요?”

그렇죠.”

 

서준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저도 내려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서준의 말에 윤한은 단호히 괘를 저었다. 아주 밝은 낮에도 헛디뎌 떨어진 곳이었다. 보나마나 남성이 발을 디디기에는 너무 좁은 곳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시간에 내려가는 것은 죽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저 밑에 지금 먹을 것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캠프로 다시 돌아가죠.”

?”

 

세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그들만 두고 간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요?”

어차피 저 밑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 그래요?”

 

윤한의 덤덤한 말에 세연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의 말이 틀린 부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돌아가죠.”

 

세연은 한숨을 토해내고 아래를 바라봤다.

 

언니!”

!”

우리는 돌아갈게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아래에서도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돌아가! 어차피 여기에 있어도! 할 것도! 없잖아! 텐트만! 좀 던져줘!”

알았어요!”

 

세연은 팔짱을 끼고 두 남자를 바라봤다. 윤한과 서준은 절벽 아래로 원터치 텐트를 던졌다.

 

언니! 아침에 올게요!”

 

그래! 날 밝으면 봐!”

 

세연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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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왜 내려온 겁니까?”

그러게.”

 

윤태의 물음에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내려와야 할 거 같았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지아는 더욱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당신에게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 있어서. 내가 여기에 와서 당신이 혼자서 이 어두운 시간을 보내지 않게 했으니까 나 빚 같은 거 이제 없는 거예요.”

 

.”

 

윤태의 얼굴에 애매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로 어깨를 으쓱했다.

 

고작 그런 걸로 남의 인생 망친 거 해결 안 되는 거 알죠?”

말은 제대로 하지? 내가 이윤태 씨 인생을 망친 게 아니라 이윤태 씨가 빌미를 준 거라고 말이죠.”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나요?”

그게 무슨?”

형이 다 말했어요.”

 

윤태의 말에 지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절벽 위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지 말라니까.”

아니 왜 본인이 한 것도 아닌데 그걸 사과를 하고 그러는 겁니까? 강 기자님이 잘못한 거면 모를까. 도대체 왜 혼자서 그 욕을 다 먹냐고요? 그 기사를 낼 생각도 전혀 없었잖아요. 왜 그랬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기사를 썼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 기사를 썼어. 그래서 이윤태 씨에게 제대로 엿을 먹인 거고. 그걸 내가 내고자 하거나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그런 거랑 관련 없이 내가 그 기사를 쓴 사람이니까.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해요.”

이상한 사람이네.”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아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랜턴을 바닥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무섭지도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가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나랑 있는데 무서워요?”

내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나는 이윤태 씨가 무서워할까봐 내려온 건데?”

 

지아의 미소에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에 스틸 사진을 찍을 때 정전이 되었잖아요. 그때 이윤태 씨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그걸 기억해요?”

당연하죠.”

 

벌써 10년도 다 된 일이었다. 윤태가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 보자 지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밝게 웃었다.

 

이봐요. 이윤태 씨. 자기가 보기에는 내가 어수룩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쪽에서 꽤 오래 버텼어.”

그러네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랜턴은 너무 불빛이 작았다.

 

불이라도 피울까요?”

뭐 피울 거 있어요?”

없죠.”

그냥 얘기나 해요.”

 

지아는 웃음을 참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게 될 테니까. 그거면 되는 거지. 나는 이윤태씨한테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전부이니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또 기사를 쓰려고 나에게 이것저것 묻는 것은 아니겠죠?”

써야지. 당연히.”

 

지아는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우리가 이런 섬에 조난을 당한 것도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뉴스가 될 거 같지 않아요?”

뉴스는 무슨?”

다들 궁금해할 거라고요.”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할까요?”

그러게.”

 

지아가 너무나도 순순히 동의하자 윤태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되게 무서운 거 아시죠? 진짜로 아무도 우리 찾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그게 뭐요?”

?”

 

우리 나름대로 여기에서 잘 살고 있어요. 사실 서울에서보다 여기가 더 행복하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하나도 안 행복합니다.”

 

윤태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도 뭔가 더러운 것이 잔뜩 묻은 기분이었다.

 

피부가 죽은 기분이라고요.”

오히려 메이크업을 안 하니까 피부는 더 좋아질 걸요? 내가 그거 하나는 장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아의 명랑한 댇바에 윤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일단 막막했다.

 

우리 여기에서 나갈 수 있겠죠?”

나갈 거야. 무조건.”

어떻게 알아요?”

 

지아는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 아직 월급을 못 받았거든.”

?”

이윤태 씨야 잘 나가는 스타니까 나 같은 월급쟁이의 마음을 모르는 거 같은데. 월급 못 받고 죽을 수 없어. 나는 무조건 갈 거야. 나 여기에서 죽으며 누가 좋아할 거 같은데? 절대로. 절대로 안 될 거야.”

농담.이죠?”

 

윤태의 표정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진심인데?”

 

윤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아는 그런 윤태를 보면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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