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귀환
“저리로 가면 해변이 있을 거 같죠?”
“그러게요.”
지아의 말에 멀리 바라본 윤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너머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어 보였다.
“어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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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씨는 언니와 같은 상황이 되면. 저 데리로 올 거예요?”
“당연하죠.”
윤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잠시도 망설이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맹세연 씨는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니까. 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감동이야.”
세연은 깍지를 끼고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이상한 아저씨는 안 그럴 거 같은 거 있죠? 하여간 사람이 되게 나빠. 이상해.”
“다 들립니다.”
서준의 대답에 윤한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그래도 이렇게 친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맹세연 씨는 저쪽 일 하는 거잖아요.”
“아니요.”
세연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둬야 할 거예요.”
“왜요?”
“다들 저를 싫어하거든요.”
“누가요?”
“다들.”
세연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까지는 숨길 수는 없었다. 윤한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다 세연 씨 부러워서 그러네.”
“네?”
“솔직히 세연 씨 나이에 그렇게 스타가 된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다들 세연 씨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네.”
“설마요.”
“진짜로요.”
윤한의 말에 세연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세연은 윤한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하는 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데.”
윤한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세연의 앞에 서서 눈을 보더니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다들 맹세연 씨가 부러우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런 거겠죠.”
“당연하죠.”
“부럽기는.”
재율과 걸음을 재게 놀리던 서준은 미간을 모았다.
“맹세연 씨. 아무리 본인이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모델이라는 거. 그거 혼자서 빛이 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디자이너들하고 어울리고 그래야지. 혼자서 어울린다는 이야기 엄청 많아요.”
“아니에요.”
세연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억울한 말이었다. 자신은 한 번도 디자이너들의 말을 무시한 적이 없었다.
“저는 선생님들 무시한 적 없어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것만 믿어요. 그러니까 점점 더 세연 씨에 대한 소문이 부푸는 거죠.”
“그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세연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자 윤한이 나타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 천지에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맹세연 씨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맹세연 씨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아니 매니저를 하신다는 분이. 그리고 어른이라는 분이 그건 아니죠.”
“이쪽 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말로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서준의 까칠한 대답에 윤한은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이내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못난 사람들이 이러더라.”
“뭐라고요?”
“솔직히 그쪽은 맹세연 씨처럼 될 수 없잖아요. 매니저. 그렇죠. 꼭 필요하죠. 하지만 앞에서는 빛이 나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질투를 하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할 시간이 있으면 이윤태. 그 사람이나 관리 잘 해요. 자기 배우 하나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면서.”
“이 자식이.”
서준은 곧바로 윤한의 멱살을 잡았다. 윤한도 이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서준의 멱살을 잡았다.
“뭐하는 거야?”
“어린 놈의 새끼가.”
“나이 많아서 좋겠다.”
“이런 미친.”
“두 사람 다 그만 하시죠.”
가만히 보고 있던 재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버버하는 세연의 손을 곡 잡았다.
“우리는 그냥 가죠.”
“네? 네.”
세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재율과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쓱해진 두 사람은 멱살을 놓았다.
“두, 두고 보자고.”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윤한은 서준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헛기침을 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망할 자식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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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미안해.”
“기자님이 왜 사과를 해요? 그거 기자님이 낸 것도 아닌데.”
“그래도.”
지아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냥 넘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과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할 거 같아서.”
“됐어요.”
“들어.”
지아의 단호한 말에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거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기사를 작성한 건 나야. 그걸 데스크에 내지 않았다고 해도 애초에 그런 문제를 만든 게 나라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나를 제대로 원망해. 나를 좋아하거나 그런지 말라는 이야기야. 나는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닌 거니까.”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죠.”
“뭐?”
지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윤태는 그런 지아의 손을 꼭 잡고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거죠?”
“무슨 말이야?”
“모든 것을 왜 기자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거냐고요. 결국 기자님은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안 거잖아요. 그리고 그 기사를 낸 것도 기자님이 아니고요. 애초에 그런 빌미를 준 것도 나에요. 그러니까 제발 기자님을 탓하지 마요. 그건 기자님의 탓이 아니니까. 기자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만.”
윤태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지아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꾸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어차피 그건 더 이상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잖아요?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도 더 이상 그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거예요. 우리를 그저 신기하게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말겠죠.”
“그건 그렇겠지.”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한국에서는 어떤 뉴스가 모든 이슈를 덮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냥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래서 여자들이 좋아하나봐.”
“그런가?”
지아의 농담이 섞인 물음에 윤태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해변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윤한과 세연, 그리고 서준과 재율이 보였다. 지아는 멀리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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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다친 곳 없어요?”
“당연하지.”
세연의 물음에 지아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두드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에? 뭐가요?”
“여기까지 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다시 캠프로 돌아가는 길 같은 거 찾지 못했을 테니까.”
“당연히 와야죠. 언니도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 저를 구하러 올 거잖아요. 설마 오지 않을 건 아니죠?”
“모르겠는데.”
“언니.”
지아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세연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으쓱했다. 모든 것이 다 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괜찮았어요?”
“뭐가?”
“둘이 원수잖아요.”
“아니.”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윤태 씨에게 일방적으로 잘못을 한 거지. 그걸 가지고 이윤태 씨가 나에게 화를 내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리고 이윤태 씨도 나에게 화 같은 거 내지 않고. 그러니까 오해 하지 마요.”
“알겠습니다.”
세연은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살짝 뒤를 보았다가 미소를 지어보인 후 다시 앞을 바라봤다. 뭔가 복잡한 일들이 한 번에 엄청나게 일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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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다친 게 다행입니다.”
“네.”
지웅은 윤태의 다리를 묶어주며 한숨을 토해냈다.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거기를 왜 그렇게 무모하게 내려간 겁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이 시켰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시키다니.”
길석은 지웅의 말에 발끈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자네의 뜻대로 행동을 해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거 정말 무례한 것 아닌가? 도대체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러는 것인가?”
“지금 서길석 씨에게 한 말 아닙니다. 그리고 도대체 여기에 왜 오신 겁니까? 지금 걱정이 되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그건.”
“그러면 그냥 걱정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아무도 그쪽 탓을 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그 말을 듣고 바보처럼 내려가서 다친 것은 이 멍청한 승객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뭐라고요?”
“됐습니다.”
“악.”
지웅이 매듭을 묶으면서 무릎을 때리자 윤태는 비명을 질렀다.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정도를 가지고 비명을 지르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강지아 씨처럼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잘 하라고요.”
“잘 하고 있습니다.”
“아닌 거 같던데 뭐.”
지웅은 이렇게 말하고 길석을 데리고 그의 텐트를 나섰다.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고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강지아.”
그저 원수라고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 그곳을 왔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거야?”
아무 생각없이 그저 빚을 갚으러 왔다고 하는데. 거꾸로 이쪽에서 빚이 생겨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쪽에서 엄청난 어떤 빚을 갚아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온 것만 같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데.”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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