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윤태와 지아
“그 다리로 거기를 가겠다고요?”
“이제 괜찮습니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지아는 씩씩한 표정을 짓는 윤태를 보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다리로 안 괜찮아요.”
“제 걱정을 하는 거예요?”
“걱정은 무슨.”
지아는 입을 내밀고 윤태의 시선을 피했다.
“나중에 복귀 안 해요?”
“무슨 복귀요?”
“배우 해야지.”
“아.”
윤태는 지아가 무슨 말을 하나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평생 여기에서 살지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여기에서 안 나가려고요?”
“나가고 싶죠.”
윤태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내밀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머리가 그냥 넘어가지 멍해졌다. 그리고 머리를 만졌다. 어느새 검은머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색이 다 빠졌네.”
“기자님 흰머리 있다.”
“네?”
지아가 놀라서 머리를 살폈다. 윤태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뭐가 재밌어요?”
“네?”
“내가 이윤태 씨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거. 그게 우스운 거예요?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게 재밌어요?”
“기자님.”
윤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저 장난처럼 간단하게 한 말이었는데 지아가 민감하게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거 기자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나 늙었어.”
“기자님.”
“늙었다고.”
지아는 혀로 이를 훑으며 돌아섰다. 윤태는 멍하니 있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닥을 한 번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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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윤태 씨 좋아해요?”
“어?”
지아가 텐트에 돌아오자 세연이 곧바로 다가왔다. 지아는 얼굴을 붉힌 채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좋아하는 거 맞는 거 같은데?”
“뭐?”
“그게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세연은 입을 내밀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언니가 왜 그러나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였네. 이윤태 씨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거기도 내려간 거네. 그런 거였어. 우리 언니 엉큼하고 그래.”
“뭐가 엉큼해?”
지아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열심히 짐을 챙겼다. 세연은 무릎을 안고 자리에 앉은 후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보트를 타고 움직이려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도대체 뭘 바라고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
“그래도 뭔가 다른 걸 찾기를 바라니까. 여기에 계속 있다가 그냥 죽을 수는 없는 거니까. 안 그래?”
“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세연의 말이 옳았다. 어쩌면 여기에서 그냥 안정을 찾는 편이 훨씬 더 옳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고 그냥 안전할 거였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여기가 섬이 아닐 수도 있지.”
“그건 아닐 걸요?”
“왜?”
“정말 섬이 아니면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오겠죠. 안 그래요? 모르니까 안 오는 거지.”
“그렇겠지.”
세연의 말이 옳았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 구하러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침을 삼켰다.
“그런데 뭐하러 들어온 거야?”
“그냥 쉬려고요.”
세연은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추울 텐데?”
“시원해요.”
지아의 걱정에 세연은 멍하니 있다가 모로 누워서 지아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입을 쭉 내밀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정말로 언니 이윤태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이윤태 씨에게 아무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런 거 없어.”
“그러면 내가 좋아해도 되는 거죠?”
“어?”
세연의 물음에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세연이 하는 이야기가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요.
세연은 씩 웃다가 이내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언니 그 사람 좋아하는 거 맞네?”
“뭐라는 거야?”
“내가 그 사람 좋아한다고 하니까 지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에요? 나 이윤태 씨 같은 사람 관심 없어요. 모델 쪽에 그 사람보다 멋진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 내가 왜 그래야겠어요.”
“아니 그러니까.”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윤태가 멋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였다. 윤태가 멋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뭔가 당황스러웠다. 지아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자 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언니 뭐가 복잡해요?”
“그러니까.”
“여기는 섬이에요.”
“어?”
“우리는 조난을 당한 거고. 어차피 우리는 거기에 돌아갈 수 있을지. 돌아갈 수 없을지 몰라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언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을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조금 더 솔직하게 언니 감정에 충실해도 괜찮아요. 다른 거 하나 따지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은 거라고요.”
“아니.”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렇게 간단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을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복잡했다.
“모르겠다.”
“뭘 몰라요?”
“다.”
지아는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세연은 지아의 손을 꼭 잡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언니는 이미 한 번 저질렀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더 저지르면 되는 거예요. 아무 것도 어렵게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언니가 믿는 거. 그냥 그대로.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내 말 알아요?”
“그렇지.”
“그런 거라고요.”
지아는 침을 삼켰다. 간단한 거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간단할 수도 없었고. 간단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다시 돌아갈 거야.”
지아는 세연의 손을 빼냈다. 세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돌아갈 거라고. 돌아갈 거야. 돌아가야만 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돌아가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다시 기자가 될 거고.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거 너무 우스운 거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기자고. 그 사람은 연예인이고 배우야. 나보다 더 높은 곳을 날 수 있는 사람이야.”
“왜 언니가 날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사실이니까?”
지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숙였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지아는 손뼉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자.”
“언니.”
“바닷가에 가서 미역이라도 줍자.”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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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뭐 준비를 할 게 없을까요?”
“아마 없을 거예요. 다른 걸 준비하고 싶더라도 얼마나 걸릴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괜히 준비 많이 해갔다가 바로 올 수도 있는 거고. 해류가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도 모르잖아요.”
“그렇죠.”
지웅의 대답에 윤태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은근히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일단 내일 가도록 하죠.”
“네. 내일이면 더 잘 걸을 수 있을 겁니다.”
윤태의 말에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정말로 갈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죠.”
윤태는 씩 웃었다. 지웅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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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까?”
“됐어.”
서준의 물음에 윤태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형 물 무서워하잖아.”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랬냐? 그냥 물을 덜 좋아하는 거야. 그거 가지고 무서워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그게 그거지.”
윤태는 쿡 하고 웃음을 터드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리에서 묘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나서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원망스럽게 보지 않겠어? 이미 충분히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내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보여줘야지.”
“그래서 하려는 거야?”
“어느 정도는?”
윤태의 대답에 서준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뭔가 답답했다. 왜 그렇게 한심하게 대답을 하는 건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너 너무 유별나.”
“내가?”
윤태는 자신을 가리키며 낮게 웃었다.
“형 여기는 한국이 아니잖아. 우리는 조난을 당한 거고. 결국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뿐이야. 우리는 두 사람이고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거고.”
“미움이라.”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쩌면 여기는 낙원일 수도 있어.”
“낙원?”
“아침과 저녁의 날씨가 크게 다르지 않고. 물고기도 잘 잡히고 있고. 산에 과실수도 많으니까.”
“그래도 돌아가야지.”
“돌아가겠지.”
서준의 힘없는 대답에 윤태는 미간을 모았다.
“형 괜찮아?”
“어? 어. 괜찮지.”
서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태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혹시 여기에 있는 게 답답하고 그런 거면.”
“아니래도.”
윤태는 여전히 서준을 의심스럽게 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누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곘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여기에서는 너무나도 여유로우니까. 그리고 바쁘게 막 이것저것 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게 너무 편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렇지.”
윤태도 공감을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우리를 찾고는 있겠지?”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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