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위험함
“안 먹어도 괜찮겠어?”
“어차피 과일 먹었어요.”
비상 식량에 손도 대지 않는 세라를 보며 지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나치게 아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거 다 쓰기 전에 우리는 구조가 될 거야. 어차피 사고가 난 것은 한국에서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더 관리를 해야죠.”
정수한 물을 마시며 세라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선배님은 이제 비행 안 하실 거지만. 저희는 비행 계속 해야 하잖아요. 살 찌면 바로 아웃이에요.”
“그렇지.”
나라도 텐트에 들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내일 선배가 꼭 가셔야 해요?”
“왜?”
“언제 올지도 모르고.”
“바로 올 거야.”
지웅의 대답에 세라는 입을 내밀었다. 지웅은 세라의 머리를 한 번 누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별다른 일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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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
“부탁이 있어요.”
나가기 전 윤태의 말에 지아는 멈칫했다. 도대체 무슨 부탁? 지아는 미간을 모은 채로 윤태를 응시했다.
“무슨 부탁인데요?”
“서준이 형 줌 챙겨줘요.”
“뭐래?”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 큰 남자를 챙겨주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 거야?
“내가 왜 그 사람을 채역야 하는 건데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합니다. 그러니까 기자님이 좀 챙겨주세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좀 어떻게 부탁합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에게 할 말이 고작 이런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였다.
“그게 다에요?”
“네?”
“아니 나한테 할 말이 그게 다냐고요?”
“그럼요?”
“아니에요. 됐어요.”
지아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았다. 무슨 말을 하던 듣고 싶던 대답은 아닐 테니까. 지아는 그대로 돌아섰다. 윤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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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를 기록하고 있다고요?”
“당연하죠.”
윤한의 대답에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멋지다.”
“멋있어요?”
“당연하죠.”
세연의 대답에 윤한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텐트로 돌아온 지아는 볼을 부풀렸다.
“뭐가 멋있어?”
“아니 언니. 권윤한 씨. 아니 권 작가님. 지금 여기에서 있던 일들 다 기록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돌아가면 소설로 쓴다고요.”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면 배를 타지 그래? 나는 네가 그래야 더 멋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지아의 직설적인 발언에 윤한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연은 입을 쭉 내밀고 자신의 일인냥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나서는 사람들이 대단한 거지만.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한 소리 들을 이유는 아닌 거 같은데. 언니가 너무 예민하게 행동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은 좀 그렇다.”
“미안.”
지아는 가볍게 사과를 하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불쾌하다면 사과할게.”
“아니요.”
윤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탄다고 했어야 하는데.”
“아니요.”
세연은 자신이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요.”
“그 위험한 걸 다른 사람들은 다 해도 된다는 거야?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정도로 위험하지도 않아.”
“언니 이윤태 씨 좋아해서 그러죠?”
“뭐?”
“에?”
세연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윤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도대체 왜 저런 쓸모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가 이윤태 씨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구하러 간 거고. 그러니까 지금도 이러는 거잖아요. 언니가 좋아하는 이윤태 씨가 위험하니까. 그래서 왜 이윤태 씨만 그런 일을 당하는 거냐고.”
“누가 그렇대?”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의 인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런 거였구나.”
“아니래도.”
지아는 텐트에 있기가 불편해서 다시 나섰다. 세연과 윤한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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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물은 저리로 흘러갔다가 이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며칠 바다를 살핀 지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어느 정도 파악을 하는 내용이었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 섬이 정말로 섬인지. 아니면 육지의 일부분인지를 알아야 하는 거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아예 로밍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곳이 섬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확인을 할 수 있는 것과 확인을 할 수 없는 것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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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무서워하신다면서요?”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이윤태가 그러더라고.”
지아의 대답에 서준은 미간을 모았다. 하여간 그 자식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여기저기 옮기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뭐라고 무서워할 거라고 지켜주라고 하는 거야.”
“에? 그런 말을 해?”
“그러니까.”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윤태가 부탁한 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돌아갔으면 좋겠어.”
“돌아가면?”
“다 수습을 해야지.”
“무슨 수습?”
“내가 다 해야지.”
지아의 대답에 가만히 서준은 그녀를 응시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기가 도대체 뭘 더 수습을 어떻게 할 건데? 자기는 그냥 기사를 쓴 거고. 그거 낸 건 데스크인 건데.”
“그래도 그 데스크가 그걸 그런 식으로 제출할 기사를 쓴 게 나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거니까. 진짜 싫다.”
지아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안아 몸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기자라고 하면 무조건 정의로울 줄 알았는데. 막상 기자가 되니까 그러지도 않은 거 같아.”
“그렇지.”
“미안해.”
지아는 혀를 내밀고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서 그거 수습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 특히나 매니저에게 왜 그거 못 막았냐고 안달이었겠지.”
“그렇지.”
서준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아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도 그 순간이 원망스러우니까.”
“고맙습니다.”
“뭐가요? 서 매니저님.”
“그래도 이렇게 사과를 해주니까.”
서준의 말에 지아는 그를 응시했다. 서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엎어진 물이니까. 이제 와서 이런 사과를 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적어도 마음이 편하기는 하네. 그리고 강 기자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뭔가 더 진심으로 다가오고.”
“나 진실한 여자거든.”
“그러셨어요?”
“그래서 돌아갔으면 좋겠어.”
지아는 먼 하늘을 바라봤다. 비행기 하나 지나가지 않는 곳. 도대체 이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야 뭔가 다시 할 말이 생길 테니까. 그리고 기사를 정정하고 나면 멋지게 사표를 내야지.”
“그건 반대.”
“왜?”
“강 기자 자기 같이 그렇게 멋진 사람이 없으니까.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지만, 자신의 잘못을 그렇게 쿨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다들 피하고 외면만 하지.”
“그런가?”
지아는 혀를 살짝 물었다. 자신도 결국 같은 사람일지 몰랐다. 처음에는 데스크 핑계만 댄 거니까. 윤태에게 고마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 자체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다.
“서 매니저 배우 하나는 잘 뒀어.”
“그럼.”
서준은 가슴을 두드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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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문제는 없네요.”
“그러게.”
보트에 탄 사람들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 없었다. 그리고 섬을 돌아서는 순간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가기 힘들겠는데.”
“그러게.”
그들이 해변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반대로 가니 깎아질 듯한 절벽이 있었고, 해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섬으로 보이죠?”
“그러게.”
“저기로 갈 수 있지 않아요?”
시우가 동굴을 가리켰다.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리로 가서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리로 갈 수 있겠네.”
생각보다 섬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로 들어가고 나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은 넓은 편이었다. 조심스럽게 배를 대고 내렸다. 지웅은 곧바로 벽을 만졌다. 물기가 일정 높이 이상을 오지 않은 것처럼 이끼는 특정 선을 지킨 채로 그 아래에만 있었다.
“이쪽에 있는 거 더 나을 수도 있겠는데요? 비가 오더라도 비도 안 맞을 수도 있을 거 같고.”
“그래도 너무 어두워요.”
윤태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은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동굴은 꽤나 깊었다.
“이게 어디까지 이어질까?”
“아마 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다행인데.”
더 들어가려던 지웅이 멈칫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가죠.”
“네?”
“더 갔다가 오늘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섬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은 알았으니까 우리는 반대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웅의 말에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하던 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도 별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죠.”
일단 이 정도만 확인한 것으로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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