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우개 식당[완]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12장. 신경 쓰이는 놈들]

권정선재 2017. 1. 4. 00:35

12. 신경 쓰이는 놈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속이 복잡한 지우와 다르게 준재와 원종, 그리고 태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식당에 나란히 상주한 채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저기 다들 여기에서 왜 이러세요? 이러면 손님들이 올 수가 없죠.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는데?”

사장님 자리 많은데요?”

 

준재의 말에 태식과 원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이 이렇게 분위기 팍 잡고 있으면. 그건 안 되는 거지. 안 그래요?”

나는 컨설턴트. 이쪽은 알바. 그러니까 일단 이쪽 손님. 이 손님부터 내보내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태식의 말에 원종은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세상 천지에 손님을 쫓아내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쪽부터 나가시죠. 컨설턴트라고 하면서. 달걀말이. 그리고 밥. 그 다음에 하는 일 없잖아요. 그러니까 당장 나가요.”

아뇨 일 있는데요?”

무슨 일이요?”

현미 있습니까?”

현미요?”

 

지우는 당황했다. 아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불똥이 이리로 튀는 거냐고. 지우는 입을 쭉 내밀고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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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마셔야 하는 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뭔가 신경을 썼다고 하면 그래도 기분이 좋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미를 가볍게 볶으니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이걸로 차를 끓이는 거예요?”

뭐 그런 식으로 해도 괜찮기는 한데. 그냥 이대로 차가운 물에 넣고 놔둬도 현미 향이 날 거예요.”

신기하다.”

 

지우는 가만히 현미를 응시했다. 살짝 볶아진 현미는 누룽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묘하게 달랐다.

 

가끔 식당에 가면 결명자나 보리차를 주는 경우는 있잖아요. 그런데 현미를 주는 곳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해야 하는 거죠.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손님들은 뭔가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러게요.”

 

지우는 밝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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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너 이렇게 하면 안 돼. 내가 이렇게 매일 간식도 주는데 말이야. 저 사람이 오면 콱 물라고.”

 

식당을 나서던 태식은 원종의 말에 뒤를 노려봤다. 원종은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왜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그럽니까?”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

 

태식의 말을 가만히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원종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푹 숙였다. 태식은 낮게 웃고 멀어졌다. 그가 멀어지는 기척을 느끼고 나서야 원종은 다시 고개를 들어서 그쪽을 노려봤다.

 

저 망할 자식은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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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신기하네요.”

그렇지?”

 

준재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로 따로 끓인 것도 아닌데 묘하게 현미 맛이 올라왔다.

 

구수한 것이 꽤 괜찮아. 너무 과하다면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거 같고.”

딱 좋아요.”

그러니까.”

 

지우는 따뜻한 물에 우린 현미 차를 마셨다. 뭔가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차에 비해서 맛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옅은 맛의 숭늉 같은 것을 먹는 기분도 들었다.

 

여기 백반 하나요.”

.”

 

지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준재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할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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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직접 사라고요?”

당연하죠.”

그건.”

 

태식의 말에 지우는 당황했다. 채소는 유정이 살았을 적부터 늘 그녀에게 가져다주는 집이 있었다.

 

이건 우리가 늘 대는 집이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 대한 의리도 있고. 함부로 막 바꾸는 것은 아니죠.”

아니 장사를 하는데 의리 같은 것을 따질 여유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냥 뭔가를 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이라면 새로운 곳을 찾고 단가를 낮춰야 해요.”

싫어요.”

 

지우는 다른 때랑은 다르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물러나야 하는 부분의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오랜 시간 의리 같은 것도 있고. 함부로 그런 업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에요.”

그걸 바꿔야 지금 장지우 씨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거 모르는 겁니까? 지금 이대로 하면 돈 못 벌어요.”

그거 제가 직접한다고 해서 더 큰 돈을 벌지 못해요. 그리고 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주시고요. 굳이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거래하는 게 더 나아요. 저는 바꾸지 않을 거예요.”

 

태식은 물끄러미 지우를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살짝 내밀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침을 삼킨 후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건 그쪽이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요?”

저기 뭔가 지금 착각을 하는 거 같아요. 나는 그쪽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한 거지. 그쪽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쪽은 그냥 나를 도와주면 되는 거라고요.”

그냥 돕고 있는 겁니다.”

아니요.”

 

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지우의 반응에 태식은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은 고마워요. 하지만 그게 뭔가를 완벽하게 바꾸어버리는 거라면 싫어요. 나는 더 나아지고 싶은 거지. 지금 이것을 바꾸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요. 알아들어요?”

알고 있습니다.”

 

태식은 마지못해 고개를 그덕였다. 어차피 여기에서 다른 말을 한다고 해도 지우의 뜻을 접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 오늘은 어묵 볶음 이야기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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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더 벌고 싶지 않으세요?”

.”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식당 내가 하는 것도 아니야. 엄마의 이름으로 하는 거지. 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인건비야. 갑자기 굴러들어온 알바생 인건비가 조금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아. 이거 하면서 뭔가 엄청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 보험금에서도 돈이 나오는 거 안 쓰고 있고. 내가 뭐 사치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매일 식당 문을 열어야 하니까 어디 다닐 돈도 필요 없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게 치사하게 살지 않아도 돼.”

하지만 사장님의 공간이잖아요. 그래도 아주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더 많은 돈을 벌어도 괜찮아요.”

아니.”

 

준재의 대답에 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를 더 생각하다가는 저 멀리 가버릴 것 같았다.

 

처음에 내가 이 식당을 맡았을 때. 처음에는 진짜로 매출이 안 나왔거든. 그래서 채소 대금을 못 내는데. 다 괜찮다고 해주시더라고. 어차피 엄마 신용으로 하는 거라고. 그 말이 너무 감사하더라고. 내가 아닌데. 내 엄마가 한 건데. 그걸 모두 나의 덕으로 얻는 것 같아서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군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나도 언젠가 다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 안 하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준재는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갈피 같은 것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어묵 볶음 맛있네요.”

그렇지?”

뭐가 달라진 거예요?”

일단 어묵을 한 번 데치고. 그 다음에 가볍게 파 기름을 내서 볶은 거야. 아무래도 그러니까 이상한 냄새도 안 나네. 그리고 기름도 너무 많이 하지 않고. 알바생이 언제까지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알바생이 내 옆에 있는 동안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하려고.”

계속 있을 거예요.”

아니.”

 

지우는 머리를 뒤로 넘긴 채로 고개를 저었다. 준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녀였다. 이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네 이야기는 안 들려줘?”

?”

네 이야기가 있을 거 아니야.”

아니요.”

 

준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이야기를 할 게 뭐가 있어요.”

아니 지금 학생은 아니잖아. 그러면 혼자 사는 거야? 엄마가 뭘 어떻게 해준 건데? 나 아무 것도 못 들었어.”

그건.”

 

준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활작 웃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이제 갈게요.”

? 어디를?”

시간 늦었잖아요. 이제 손님도 더 오지 않을 거 같고. 저는 내일 올게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알바생!”

 

지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준재는 식당을 나가버렸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지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

 

하여간 이상한 녀석이야.”

 

준재가 나가기가 무섭게 지우개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지난 번 손님이 한 번 놀란 이후로는 들어오지 않는 지우개였다. 지우는 가만히 지우개의 목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체온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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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또 그렇게 다녀와?”

죄송합니다.”

 

센터장은 차가운 눈으로 준재를 노려봤다.

 

네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른 애에게 네 자리를 줘야 한다는 거 정말 모르는 거야? 왜 자꾸 이렇게 다녀?”

죄송합니다.”

 

준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햇다. 어른이 되면 이곳을 바로 나갈 거였다.

 

왜 이제 와?”

미안.”

 

룸메이트의 물음에 준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또 난리를 쳤어. 네가 뭘 하는지.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봐. 말은 저렇게 해도 너 없으면 큰일이 나는 거잖아. 그 만큼 돈을 못 받는 거니까. 우리에게 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이렇게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이것만 해도 고마운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룸메이트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걸로도 고마운 거지.”

 

준재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복잡했다. 바지 속은 지우가 건넨 돈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내일 또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이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어른이 되면 나가야 하잖아.”

.”

 

준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런 것은 생각을 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너야 똑똑하니까.”

 

룸메이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준재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