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어른의 자격
“저기.”
“어? 알바.”
원종이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준재가 그를 붙잡았다.
“왜?”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원종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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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일단 네가 그 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나에게 맡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네.”
“나를 뭘 믿고?”
원종의 물음에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원종도 믿지 못한다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사장님을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믿을 수 있죠.”
“내가 너 미성년다라는 것을 말을 한다고 하고 이 돈을 다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게 문제야?”
“뭐 그러면 할 수 없고요.”
준재의 대답에 원종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혀로 이를 훑더니 아랫입술 살짝 물고 머리를 긁적였다.
“뭐 나쁜 거 아니지?”
“나쁜 거라뇨?”
“네가 뭐 엄청난 빚을 져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내가 뭐 그것을 막는 거라던가. 뭐 그런 문제. 아무튼 이런저런 거.”
“아닙니다.”
준재의 날카로운 대답에 원종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거 같았다. 이건 또 무슨 난리인 건지.
“오케이.”
“고맙습니다.”
“너나 나나 정정당당한 대결을 하고 싶으니까. 뭐 이건 너랑 나만 아는 뭐 그런 비밀로 하고. 오케이?”
“당연하죠.”
원종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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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같이 들어와?”
“이 앞에서 만났어.”
당황한 준재와 다르게 원종은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늘 자신이 앉는 자리에 앉았다. 준재는 재빨리 앞치마를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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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손님이 좀 늘어난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
준재의 말에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즘에 손님이 늘었다. 늘 오던 사람들도 꾸준히 오고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거 같았다. 변화가 있었고 이전과 비슷했다.
“매일 메뉴를 바꾸는 거 어때요?”
“어? 이미 백반이 있잖아.”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오늘은 카레. 뭐 내일은 스테이크. 대충 이런 식으로 바꾸는 메뉴요.”
“됐어.”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홍대나 연남동 같은 곳에서 그런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식당은 그런 곳과 달랐다. 일단 찾아오는 사람들이 달랐으니까.
“괜히 그러다가 원래 오시던 분들이 더 낯설어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 그건 뭔가 좀 그렇잖아.”
“그런가?”
지우의 대답에 준재는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생각은 해보세요.”
“생각? 카레 누가 먹겠어?”
“모르죠?”
“뭘 몰라.”
“일단 해봐요.”
준재가 한 번 더 부추기자 지우는 심호흡을 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준재의 말을 들으니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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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를 한다고요?”
“이상할까요?”
태식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뭔가 새로운 메뉴를 하는 게 좋죠.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와서 뭔가를 먹을 수 있을 거고요. 그런 기특한 생각을 어떻게 했습니까?”
“아. 사실 제가 한 게 아니라. 준재가 생각을 해보더니 그런 게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미리 사온 재료들을 꺼내며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자신은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거 같아서 뭔가 좀 민망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나아져야 하는 거니까.
“일단 한국 풍으로 해보려고 가루를 사오기는 했는데. 준재가 꼭 고형 카레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섞으면 더 좋을 겁니다.”
“섞어요?”
“네. 아마 그러면 맛은 더 풍미가 강해지면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맛이 될 거예요. 가정에서도 그렇게 먹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구나.”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형 카레의 패키지를 살폈다. 늘 집에서 카레를 먹고 싶으면 가루로 하거나, 그나마도 엄마가 떠난 이후에는 아주 오랜 시간 먹지 않은 음식이었다.
“신기하다.”
“뭐가요?”
“그냥 카레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서요.”
지우의 순수한 감탄에 태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이제 카레를 만들어 볼까요?”
“뭐야?”
지우는 순간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종이접기 하는 김영만 선생님 같았어.”
“그래요?”
태식도 지우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고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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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습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버터가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차라리 마가린이 더 몸에 나쁘다고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 큰 통에 가득 카레를 할 건데 이 정도는 들어가야죠.”
“맞아.”
지우는 손가락을 튕기며 태식을 바라봤다.
“카레 양이 너무 많지 않아요?”
“뭐가요?”
“아니. 손님들이 카레를 주문을 할지. 주문을 하지 않을지. 그런 것도 모르는데 너무 많잖아요.”
“일단 손님들에게 모두 다 카레를 드려야죠. 처음에 만든 달걀말이도 그렇게 주문을 받았잖아요.”
“아.”
태식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달걀말이를 가장 처음 주문한 손님도 그냥 시킨 손님이었다. 일단 만들어야지 사람들이 주문을 하고, 어떤 음식이 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였다.
“좋아요.”
“자 일단 여기에 고기를 넣고 볶을 겁니다.”
“질겨지지 않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더 부드러워질 겁니다. 나중에 또 뭉근해지게 하루 종일 끓이고 그럴 거니까요.”
“하루 종일요?”
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카레가 그렇게 품이 많이 들어요?”
“카레가 원래 품이 많이 드는 음식입니다. 그냥 집에서 먹는 카레랑 다른 지우개 식당만의 카레가 되어야죠.”
“그건 그렇지만.”
지우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태식은 지우가 보지 못하게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양파를 넣어줘요.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야 합니다. 양파는 단맛을 내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설탕의 단맛과는 다르니까. 크게 부담을 갖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죠.”
태식은 익숙하게 이것저것 재료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지우는 그런 태식을 따라 열심히 메모하며 하나씩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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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아니야?”
“그게 불만이세요?”
“아니 뭐.”
준재의 물음에 원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우가 열심히 하는 것이 불만이거나 그럴 리는 절대로 없었다. 그냥 태식이라는 저 망할 자식하고 같이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전부였다.
“아니 하필이면 저 자식이랑 이러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고 해도. 나도 손님이야. 손님. 내가 왔는데 너무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열심히 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알바가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
준재의 대답에 원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알바가 있는 거겠지.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뭔가 푸대접이었다.
“아니 내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니까 이러는 거야. 알바. 너 때문에 지우가 다 알고. 그러고 나서 지우가 나를 지금 너무 불편해해서 이렇게 제대로 대접을 안 하는 거잖아. 전부 네 탓이야.”
“아닐 걸요?”
준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원래 사장님 그 전부터 손님 되게 안 좋아했어요. 뭐 남자다운 매력이 있어야 남자로 보지.”
“내가 뭐가 어때서?”
원종은 팔에 근육을 만들어 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 병장 제대한 사람이야. 대한민국에서 멀쩡한 남자라고 인증을 한 사람이라고. 군대도 안 다녀온 녀석이.”
“그거 뭔가 차별적인데?”
“뭐가 차별이야?”
원종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바뀔 건 없지. 그래도 장돼지가 저기에 있는 건 괜히 불편한데 말이야.”
“그게 문제 아닐까요?”
“뭐?”
준재는 미간을 모으며 원종의 앞에 앉아서 입을 쭉 내밀고 검지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사장님을 부르면 안 된다고요. 사실 사장님 정도면 표준이죠. 다른 여자들이 마른 거지. 사장님이 둥뚱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장돼지. 뭐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라고요.”
“나도 알아.”
원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 나이를 먹고도 지우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녀의 별명을 부르면 뭔가 더 친한 것 같은. 뭔가 더 유대가 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건 나랑 장돼지 사이의 일이니까 끼어들지 마.”
“그건 아니죠.”
“뭐가 아니야?”
“저도 사장님을 좋아하니까요.”
준재의 고백에 원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돼지가 미쳤냐? 미성년자 좋아하게.”
“곧 성인입니다.”
“그래도.”
“그거 말하면 진짜 나도 아저씨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거예요. 나는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 그러니까 옆에서 계속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다. 뭔가 치사하다. 이렇게 세뇌를 하고 그럴 거라고요.”
“유치해.”
“알아요.”
원종은 준재를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하지만 원종도 자기 할 일이 있으니 계속 여기에만 신경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지우의 일에 관해서는 협력을 해야만 하는 관계였다.
“일단 동맹?”
“오케이. 좋아요.”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원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유치한 거 같이 하고 계시죠.”
“둘이 친한 거 같아.”
지우가 만든 카레를 가지고 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원종의 앞에 한 접시 내려놓고 어깨를 으쓱했다.
“먹어봐. 내일하고 맛은 또 다르겠지만. 일단 지금 만든 거.”
원종은 준재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한 입 먹었다.
“맛있어. 풍미도 느껴지고. 이거 단맛도 많은데? 별로 불편하지 않고.”
“너 미슐랭 같아.”
지우의 칭찬에 원종은 어색하게 웃었다.
“일단 우리 식당의 가장 단골손님도 나쁘지 않다고 했으니까 내일부터 메뉴에 내도 될 거 같은데? 잘 했어. 알바생.”
“제가 늘 잘 하는 사람입니다.”
준재가 씩 웃으면서 브이를 그리자 원종은 아무도 모르게 그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잘못된 끈을 잡은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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