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우개 식당[완]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14장. 지우개 카레]

권정선재 2017. 1. 9. 23:18

14. 지우개 카레

이걸 밤새 끓이신 거예요?”

알바가 하라며.”

아니.”

 

아침에 출근한 준재는 입을 떡 벌렸다. 그 큰 카레솥을 지우는 밤새 지켜본 모양이었다. 꽤 퀭하기는 했지만 지우의 표정은 밝았다.

 

색도 더 진해지고. 안에 있는 재료들도 살짝 뭉개져서 이제 뭐가 들어갔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 같아.”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그냥 밤에는 놔두시고. 아침에 제가 오면 저보고 시키셔도 되잖아요.”

아니.”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 일까지 맡기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준재개 식당이 아니라 지우개 식당이잖아. 내가 이 식당을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 그 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너무 우스운 거고 말이야.”

그래요?”

 

준재는 지우를 보며 가만히 웃어보였다. 이런 준재의 표정에 지우는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

내가 그렇게 유치하니?”

아니요.”

나 어른이다.”

알고 있어요.”

 

지우의 투정에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순간 멈칫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 저도 어른인데요?”

원종이 녀석에게 들었어.”

?”

녀석도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 그냥 바로 나에게 말을 한 게 아니라. 혼자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말을 한 거니까 녀석을 원망하지 마. 그냥 내가 알고 있어야 할 거 같다고. 네가 미성년자인 것에 대해서 나도 알아야 한다고 말을 한 거야. 너를 무시하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야.”

그건.”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종을 믿었는데 이렇게 쉽게 지우에게 사실을 이야기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사람 이상해.”

뭐가 이상해?”

비밀이라고 했다고요.”

비밀은.”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원종이는 진짜로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야. 그 녀석이 원래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그러는 녀석이 아니거든. 그런데 도대체 네가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네 편을 그렇게 들면서 말하더라.”

?”

 

지우의 말에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종이 그랬다고 하니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일부러 속이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솔직히 나도 나이를 묻지는 않았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원종이 녀석이 하는 말이 모두 옳더라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사장님.”

대신 돈은 나중에 줄 거야. 너 이거 가지고 나중에 노동부에 신고하고 그러면 안 돼. 알았어?”

.”

 

준재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도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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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 카레야?”

한 번 만들어봤어요.”

 

손님들의 반응은 모두 좋았다. 이걸 가지고 진짜로 주문을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같죠?”

그러게.”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맛있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괜히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저 잘한 건데 뭐 보너스 없나?”

맛있는 거 해줄게.”

에이. 영화 볼래요?”

영화?”

 

지우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죠?”

그래. 어차피 저녁에는 손님도 줄어드니까. 오늘 심야 영화. 심야 영화 보러 가자. 그거면 될 거야.”

좋아요.”

 

준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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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지우와 같이 극장에 간 준재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단둘이 영화를 보는 줄 알고 왔는데 이미 극장에는 준재와 태식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영화를 보자고 했지. 우리 둘이서 보자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이 누나 감옥 가기 싫거든?”

무슨 감옥이요?”

너 미성년자니까.”

 

지우의 대답에 준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치사해.”

뭐가 치사해? 내가 뭐 약속을 안 지켰어? 아까 내가 한 말 잘 기억을 해보라고. 둘이서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지우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웃자 준재는 입을 더욱 내밀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그래도 밤에 할 일이 없나봐요.”

그러게.”

 

원종은 태식을 의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컨설턴트라 그래서 바쁜가 했는데.”

바쁩니다.”

 

태식은 차가운 어조로 대답하며 원종을 노려봤다.

 

그래도 이 시간에까지 일을 하는 건 아니죠. 노예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 시간에는 쉬어야 하는 거죠.”

. 저는 그쪽이 지우를 노예처럼 부리시기에. 뭐 본인도 노예라서 그런가. 뭐 그런 생각을 했죠?”

뭐라고요?”

그만해.”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길어질 것 같자 지우가 입을 내밀고 두 사람을 막았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서 서로를 노려보는 것을 멈췄다.

 

이제 시작할 거 같은데 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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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뭐야?”

 

극장을 나서며 지우는 세 남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들. 무슨 남자들이 그렇게 무서운 걸 못 봐요? 그냥. 그냥 영화잖아요. 영화.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거. 그거 가지고 왜들 다들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내가 진짜 창피해서 살 수가 없네.”

너무 리얼해서 말입니다.”

맞아.”

 

태식의 말에 원종이 보태자 지우는 두 사람을 노려봤다.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시선을 피했다.

 

다시는 나한테 영화 보자는 이야기 하지 마. 준재 너도. 알았어?”

? .”

 

세 사람은 혼자서 멀어지는 지우를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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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이제 와?”

그게.”

 

준재가 센터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센터장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손이 준재의 얼굴로 날아왔다. 준재는 그 손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다.

 

일어나.”

 

준재는 익숙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점검을 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내가 미리 하지 않았어? 그런데 센터에 없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하신 적 없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그게.”

이런 거지 새끼가.”

 

곧바로 센터장은 준재의 머리를 무차별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준재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늘 있었던 일. 이 정도 일을 가지고 비명을 지르거나 그럴 이유는 그에게 없었다.

 

독한 새끼.”

 

한참을 때리고 나서야 센터장은 허리를 폈다.

 

방으로 가.”

 

준재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

 

룸메이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만 상처가 없으면 되는 거였다. 몸은 다른 사람들이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지우가 걱정하는 것은 너무 싫었다.

 

진짜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준재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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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얼굴이 왜 그래?”

. 넘어졌어요.”

 

준재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지우는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준재의 얼굴을 살피고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쉬어.”

하지만.”

너 이 얼굴로 사람들 대하는 것도 알바생의 자세가 안 된 거야.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

아니에요.”

 

지우의 말에 준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의 말이 옳았다. 이 얼굴로 장사라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잠시만.”

?”

 

지우가 준재를 붙잡고 있는 사이 태식이 들어섰다.

 

거기 컨설턴트 씨.”

? 저요?”

여기 그럼 또 누가 있어요?”

.”

 

태식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이 꼬맹이 좀 커버해요.”

?”

오늘 얘가 일을 할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에요. 나는 가게를 비울 수가 없는 사람이고. 그래도 둘이 남자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거 같고. 저 얼굴. 저거 넘...서 그렇다는데 내가 볼 때는 아무리 봐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남자끼리 좀 풀고 오지 그래요?”

넘어져?”

 

태식이 자신의 얼굴을 살피자 준재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영수증은 필수에요.”

?”

그래야 나중에 비용 처리 해드리죠.”

 

태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기 사장님.”

쉬다 와.”

 

준재가 무슨 말을 하자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성실하게 근무했으니까. 하루는 쉬어도 괜찮아. 주휴수당. 뭐 그런 것도 있으니까. 안 그래?”

여기 5인 미만이라 해당 없습니다.”

 

태식의 까칠한 말에 지우는 바로 눈을 흘겼다. 태식은 헛기침을 하며 그런 지우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잘 쉬어.”

고맙습니다.”

 

준재는 아이처럼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괜히 미안했다. 자신이 뭔가를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저 아이의 아픔에 대해서 이렇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했다.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