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침묵
장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변의 모래는 단단하지 않았고. 기쁨은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인 후였으니까.
“저기.”
지웅이 채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기쁨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모래 한 줌을 뿌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모래가 석우의 위로 뿌려졌다.
“오빠. 안녕.”
기쁨은 그대로 자리에 무너졌다. 지아가 그런 기쁨의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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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러게.”
세연의 말에 지아는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길석이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잘 갔겠지?”
“정말로요?”
“그래야지.”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가지 않았다면 또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거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러네요.”
세연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말도 안 돼.”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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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합니다.”
“뭘 찾아요?”
재율의 말에 시우는 미간을 모았다.
“괜히 그 사람을 찾으러 갔다가. 남은 사람들에게까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갔을 수도 있죠.”
“그러니까 찾아야죠.”
남은 남자들은 모두 긴장이 역력했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일단은 조금씩 텐트를 옮기죠.”
“그래요. 이제 그래도 우리들 조금은 친해졌으니까.”
여자들의 동의도 필요했지만 일단 이게 나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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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여자들을 지켜주는 거 같네.”
“그래야죠.”
지아의 말에 윤한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윤한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내가 너를 지켜줘야 할 거 같은데?”
“에? 누나 그거 아니죠.”
“야. 네가 솔직히 뭘 할 줄 알아? 그 텐트를 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서 쳤던 거 아니야?”
“뭐. 그건.”
윤한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바쁘네.”
“그러게요.”
세연은 말릴 과일을 들고 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진 거 같아.”
“아무래도 달라졌겠죠.”
지아의 시선은 저 멀리 있는 기쁨으로 향했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몸을 둥글게 만 저 여인.
“언니 가지 마요.”
“아니야.”
기쁨은 어느 순간부터 모두에게 까다로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구라도 위로를 해야 하니까.
“그럼 같이 갈게요.”
“됐어. 나 과일 좀.”
“아? 네.”
세연은 황급히 과일을 지아에게 건넸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기쁨에게 향했다. 세연은 입을 내밀었다.
“하여간.”
“대단하죠?”
“네.”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윤한은 가볍게 손을 털고 그런 세연의 곁에 앉아서 과일을 받아먹었다.
“맛있다.”
“그러게요.”
“저 분의 남편은 뭘 바랐을까요?”
“자유?”
“자유라.”
윤한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찾아야만 하는 것이니까.
“그렇죠. 자유. 그것을 찾을 수도 있죠.”
“그래서 영원한 자유를 얻었네요.”
세연의 쓸쓸한 대답에 윤한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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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가 이게 뭐야?”
“왜?”
“아니.”
지아의 텐트와 멀어져서 그렇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서준은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해라.”
“뭘?”
“강 기자랑 네가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왜 안 돼?”
“이윤태.”
“안 될 이유가 뭐야?”
서준의 말에 윤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강 기자를 좋아하고. 강 기자도 나를 좋아하면. 그냥 그걸로 딱. 다 해결이 되는 거 아니야?”
“강 기자가 너를 좋아한대?”
“어?”
서준의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윤태는 어색하게 웃었다. 지아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면 누구든 나를 좋아하지 않겠어? 형도 알잖아. 내가 바로 이윤태야. 이윤태. 안 그래?”
“됐다.”
“왜?”
“너는 여기까지 와서 여자랑 그러고 싶어?”
“형.”
서준의 날이 선 말에 윤태는 미간을 모았다. 서준이 뭘 걱정하는 것인지 알았지만 이건 너무했다.
“형.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거야? 여기에 아무도 없잖아?”
“강 기자가 기자야.”
“그게 뭐?”
“나가서 무슨 기사를 쓸 줄 알고?”
서준의 차가운 목소리에 윤태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지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건 강 기자 자유지.”
“그럼 너는?”
“내가 왜?”
“또 이렇게 유배 올래?”
“유배는 무슨.”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피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이건 유배 아니야.”
“그럼 뭔데?”
“그냥 사고지.”
“그래 사고.”
서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사고였다. 하지만 모든 건 지아가 쓴 기사 때문에 일어난 거였다.
“네가 그런 식으로 여자들에게 덤비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강 기자가 기사로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지? 결국 너희 두 사람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다.”
“형 미안해.”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서준의 어깨를 가볍게 문지르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서준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아무튼 안 돼.”
“그걸 왜 형이 정하는 건데?”
“네 매니저니까.”
“말도 안 돼.”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이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내가 강 기자랑 뭘 하건 형은 상관이 없잖아.”
“왜 상관이 없어? 너희 두 사람 때문에 나도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는 건데. 나라고 여기가 좋은 줄 알아?”
“나도 싫어.”
“그럼 나갈 생각을 해!”
서준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윤태는 미간을 모았다. 서준의 분노가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너무 과했다.
“형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뭐가 안 되는 건데?”
“형이 이러면 다른 사람들도 불안을 느껴.”
윤태의 말처럼 텐트를 옮기던 다른 사람들의 침묵이 느껴졌다.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헝클었다.
“아무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형.”
“내 말 제대로 들어. 너 혼자 그러지 말고.”
윤태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서준이 멀어진 곳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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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쁨은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내렸다.
“앉아도 되죠?”
기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아는 그런 기쁨의 옆에 앉아서 가만히 과일을 씹다가 기쁨에게도 내밀었다.
“달아요.”
“괜찮아요.”
“드세요.”
“괜찮대도요.”
“드시라고요.”
기쁨은 고개를 들어 지아를 바라봤다. 공허함.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아픔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먹기 싫다는데 왜 그래요?”
“어제부터 아무 것도 안 먹고 있어요. 그러다가 쓰러져요. 그쪽이 쓰러지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냥 죽는 거죠.”
“그러지 마요.”
지아는 기쁨의 손에 억지로 과일을 쥐어주었다. 기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것을 뿌리치려다 말았다.
“나는 살 자격이 없어요.”
“우리 모두 살 자격이 없죠.”
기쁨은 물끄러미 지아를 응시했다.
“우리는 그저 서길석 그 사람이 이 섬을 나가는 것에만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거였으니까요.”
“그러게요.”
기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을 사람으로 대우를 한 거예요? 그러면 안 된 거잖아요.”
“그렇죠.”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이면 안 되었던 건데. 여기에서 뭐라도 해결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런 거였는데 말이죠.”
기쁨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아는 그런 기쁨이 주먹을 세게 쥔 것을 보았다. 이제 무슨 말을 할 거였다. 기쁨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거였다.
“우리가 모두 책임을 져야 했던 거예요.”
지아의 말에 기쁨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우리가 기쁨 씨의 남편을 죽게 만든 거예요.”
이건 무슨 신호라도 된 것 같았다. 기쁨은 미친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침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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