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망가진 일상 2
“왜 자꾸 피하려고만 하는 건데요?”
윤태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금 강 기자님의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지금 본인이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요. 그래서 피하는 거라고요.”
“그래. 피하는 거야. 내가 지금 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 너는 왜 그러는 건데?”
“좋아하니까.”
“그만 하라고.”
지아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더 이상 이런 말을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될 거였다.
“우리 결국에 한국에 돌아갈 거야. 그런데 이런 사이가 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자기가 말을 한 것처럼. 한국에서 우리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엮일 이유가 없었던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다행이죠.”
“다행?”
지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기고 윤태를 응시했다.
“이윤태 씨. 내가 만만하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나에게 이래?”
“좋아하니까요.”
“그만 하래도?”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이런 식의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좋아한다고요.”
“아니.”
지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살짝 몸을 뒤로 젖혔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강 기자님.”
“제발 이러지 마.”
“뭘 이러지 마요?”
“네가 이러면 내가 불편한 거 안 보여?”
“뭐가 불편한 건데요?”
“다.”
지아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도 냉정한 목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윤태 씨. 이 섬에서 내가 그렇게 만만해? 다른 사람보다 나는 뭐 쉽게 넘어갈 거 같니? 그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저보다 기자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기자님께서 이렇게 저를 피하시는 이유도 알 거 같아요. 서준이 형이 부탁해서 그렇죠. 그러니까.”
“알면 관둬.”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윤태를 단념을 시켜야 하는 거였다.
“자기는 배우야. 배우면 배우처럼 행동해. 자신의 감정 철저하게 숨겨. 그게 옳은 거고. 정답이야.”
“이 섬에서는 배우가 아니잖아요. 이 섬에서는 나는 그냥 이윤태잖아요.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 건데요?”
“그게 정답이니까.”
지아는 가볍게 윤태의 어깨를 두드리고 멀어졌다. 윤태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지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윤태는 이마를 짚고 멀어지는 지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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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괜찮아?”
“어.”
시우의 물음에 시안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우를 본 이후로 시안은 그다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괜찮대도.”
시인의 걱정스러운 말에 시안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본 것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었다. 시인은 자신보다 훨씬 더 유약한 사람이었으니까. 자기가 본 게 맞는 거였다.
“떠났더라고.”
“어디로?”
“무덤으로.”
“그래?”
시우의 말에 시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는 안 될 텐데.”
“일주일 있다가 오기로 했어.”
“그래도.”
“그 정도 시간은 있어야지.”
“그렇겠지.”
섬은 이런 식으로 서서히 각자의 걱정을 먹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 다 다른 걱정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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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요?”
“네. 안 됩니다.”
지웅의 단호함에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하던 탐사에요. 어차피 하던 거. 계속 하겠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그거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해요.”
“하지만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거. 그것도 이상한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지웅의 말에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일단 섬의 탐사를 마쳐야만 했다. 그래야 다른 방법이 있는 거였다.
“새들이 가지고 온 그 물건들. 그거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맞다는 거. 다른 그 누구보다도 사무장님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 혼자 갈게요. 부탁해요.”
“더 안됩니다.”
“왜요?”
“서길석 씨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의 이름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아는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지금 긴장했죠?”
“네.”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을 숨겨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은 참아요.”
“얼른 가야 해요.”
“왜요?”
“계절이 바뀌고 있잖아요. 달라진 계절은. 또 다른 어떤 위험을 우리에게 선사할 거예요. 그거 위험해요.”
“그렇겠죠.”
지웅은 입을 내밀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잡히는 물고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이제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파토는 점점 더 거칠어져 가고 있었다. 곧 진짜 겨울이 올 거였다.
“저쪽은 전파가 터져요.”
“그런 거라면 여기도 터집니다.”
“네?”
지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여기도 터진다고요?”
“네. 터지더라고요.”
“왜.”
지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도대체 왜 지웅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걸까?
“여기는 한국이 아닙니다. 외교부의 문제가 오더군요. 이 상황을 굳이 사람들에게 알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불안. 그것만 더 증폭시키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방법일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중요한 것을 혼자서만 쥐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다 같이 나눠야 하는 거죠.”
“그럼 달라집니까?”
“달라지죠.”
지아는 단호한 눈빛으로 지웅을 쳐다봤다.
“그럼 서길석 씨가 그런 식으로 나가지 않았을 거고. 차석우 씨가 그 악마를 따라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차석우 씨가 그런 식으로 주검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고. 한기쁨 씨가 아파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차피 배터리가 없습니다.”
“보조 배터리가 있어요.”
“뭐라고요?”
“윤한이에게 있어요.”
지웅의 눈썹이 가늘어졌다. 결국 이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게 많군요.”
“그렇죠. 여긴 커피도 있고요.”
“라면도 있습니다.”
“라면.”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쪽도 뭘 가지고 있는지 공유할지. 공유를 하지 않을지 정해요.”
“네. 알았어요.”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지웅을 바라봤다. 이 섬에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공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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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그러니까.”
세연과 윤한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 섬에서 전파가 터진다는 이야기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적어도 어느 나라인지만 알면 그래도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거잖아요. 더 나을 수도 있는 거고요.”
“애석하게도 그 문자를 확인하게 전에 휴대전화가 꺼져버려서 확인을 할 수가 없대. 그래서 보조배터리가 필요한 거고.”
“보조배터리.”
윤한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였다. 윤한도 나름의 방도로 가지고 있던 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야?”
“뭐가요?”
“내가 쓰러져 있던 순간. 왜 아무런 정보도 공유가 되지 않았던 거야. 왜 모두 이렇게 각자 갖고 있던 거야.”
“그러게요.”
윤한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깨어나지 못했을 때 다들 갈등이 심했어요.”
“무슨 갈등?”
“서로를 믿지 못했거든요.”
“왜?”
지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더 뭉쳐야 하는 거였다.
“왜 그런 건데?”
“여기에 대통령 아들이 있대요.”
“대통령 아들?”
지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이 중에서는 대통령의 성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지금 대통령은 정. 아무튼. 없잖아. 그런데 도대체 이 중에서 왜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돈 거야?”
“모르죠.”
“그래서?”
“서로를 의심했어요. 누가 일부러 뭐 비행기를 격추를 시킨 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부터.”
“그걸 믿어?”
지아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된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였다.
“그럼 누가 뭘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겠죠.”
“그런데 짐들은 어떻게 멀쩡해?”
“누나는 쓰러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거든요. 비행기는 절반만 여기에 떨어져서 엄청난 충격이 있었는데 폭발은 없었어요. 적어도 이쪽은. 나머지 반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요.”
“그럼 떨어진 후 물에 의해서 옮겨졌을 수도 있네.”
“그렇죠.”
“그래서 짐은?”
“위에 있는 걸 다 내린 거예요.”
지아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충 궁금한 것들은 다 해결이 된 거였다. 여전히 의심이 가는 것들은 많았지만.
“그럼 모두 모여야겠네.”
“그렇겠죠.”
“다들 동의를 할까?”
“모르죠.”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한 고비를 넘어가면 또 다른 고비가 있는 거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우리가 죽을 이유는 없는 걸 거였다. 일단 모두 힘을 합쳐야만 했다. 그래야 살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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