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새로운 희망
“기지국에서 신호가 왔답니다.”
“뭐라고?”
비서실장의 말에 대통령은 눈이 커다래졌다. 그 말은 뭔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거였다.
“어느 나라라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뭐라고?”
“태평양에서 울리기는 했는데. 그곳은 공해로 분류가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나라에서 그것을 관리하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가까운 나라는?”
“없습니다.”
“없다고?”
“네.”
대통령의 얼굴이 구겨졌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하더니 뭐가 하나 해결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건가?”
“근처에 기자는 배도 없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한국에서부터 보내야 합니다.”
“그럼 보내야지.”
“하지만.”
“이전이야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해서 보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은가?”
대통령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이제 그곳에 국민이 있다는 말이니 그곳에 가도 된다는 소리였다.
“최대한 빠르게 보내야 하네.”
“의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의심?”
“대통령 님에 대한 의심 말입니다.”
대통령은 순간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나 대통령으로의 권위가 아니었다.
“거기에 내 아들이 있어.”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찾아야 하네.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하면 적어도 시신이라도 찾아야만 하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일단 국무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일단 총리를 불러오게.”
비서실장은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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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뭐?”
“안 된다고요.”
세라의 단호한 말에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지웅의 이런 반응에도 세라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 이건 우리가 여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왜 공유해요.”
“선배 뭘 가지고 있는 건데요?”
“너는 몰라도 돼.”
나라의 물음에 세라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세라 씨.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숨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뭘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뭘 어떤 식으로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솔직하게 나올 거라고 누가 말을 할 수가 있는 건데요? 그리고 저희들은 지금 여성이 너무 많아요. 만일 서길석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요?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런 거면 우리는 이미 죽었어요.”
나라의 단호한 말에 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유나라 씨.”
“아니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 그렇게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요.”
“그걸 유나라 씨가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사람은 어떤 상황이 오면 또 달라지는 거라고요.”
“그렇겠죠.”
지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람들을 다시 묶을 것이 필요했다.
“차석우 씨가 그렇게 되고 나서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묶어줄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그게 오히려 우리들을 다시 끊을 수도 있어요. 더 멀어질 수도 있는 거라고요.”
세라의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각자가 뭘 숨기고 있었는지. 뭘 감추고 있었는지. 그것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질 거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문자 메시지를 숨기고 있었다.
“여기에서 전파가 터진다는 거. 그거 다들 화를 낼 거예요. 그리고 보석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러네.”
지웅은 혀로 이를 훑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또 다른 복잡한 수학 문제가 눈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이건 생존이에요.”
“다수결로 하죠.”
옆에서 듣고 있던 진아가 미소를 지으며 툭 던졌다.
“나는 공유에 찬성.”
“나도 찬성.”
“미치겠네.”
나라까지 손을 흔들자 세라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사무장님 잘 생각하셔야 해요. 여기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고요. 그러면 최대한 오래. 정말 최대한 오래 여기에서 버텨야만 해요. 그러기 우해서는 우리의 것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지킨다.”
“그래야 한다고요.”
지웅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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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 사람은 어떤 생각이야?”
“공유해야죠.”
“공유.”
세연의 말에 윤한은 미간을 모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안 될 걸요?”
“왜?”
“당연하죠.”
지아의 물음에 윤한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원하는데 그게 공유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세요?”
“하지만.”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누기를 바란다고 믿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서 살아나가야 하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밟아야 하죠.”
“설마.”
“그 중 하나가 일어난 거잖아요.”
윤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 인터넷에서 그거 본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거기에서 나온 거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섬에서 죽는 이유라고 돌아다니는 거요. 독이 든 식물이나 동물을 잘못 먹고 죽는 거. 그리고 잘못된 탈출. 신기루 같은 걸 보고 밖으로 나가는 거. 그리고 너무 오래 여기에 있어서 희망이 사라지는 거. 마지막 하나가 생존자들의 내부 갈등. 지금 그 중에서 갈등이 일어난 거라고요.”
“무서워.”
“사실이잖아요.”
세연은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이런 얘기 좀 하지 마요. 그래도 우리 여기에서 나가야 하는 건데. 안 그래요? 그래야지.”
“나갈 수 있을까요?”
“나갈 수 있어.”
지아가 힘을 주어 말을 하자 윤한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도 좋아요.”
“권윤한.”
“누나도 그렇지 않아요?”
“뭐가?”
“여기 안전해요. 위험한 동물들도 없다고요. 고기가 좀 먹고 싶기는 하지만 생선이 잡혀요. 곡물이 필요하지만 대신 과일 같은 건 있죠. 어제 카사바 비슷한 것도 발견해서 녹말도 추출했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에서 살 수는 없어.”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곳을 나가야 했다. 여기에서 안주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스웠다.
“적어도 우리 셋이랑 그쪽 넷은 공유를 해야지.”
“나는 싫어요.”
“윤한 씨.”
세연도 놀란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요?”
“그쪽에서 모든 것을 다 공유한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그렇다는 말은 오랜 생존에 부정적이라는 거예요.”
“나는 언니 말에 찬성이에요.”
“세연 씨.”
“그리고 자꾸 그러면 다시 생각을 할 거예요.”
“뭘?”
“그러니까.”
“말도 안 돼.”
윤한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지금 나 혼자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 아니라고요. 지금 세연 씨를 생각을 하는 거고. 그리고 누나를 생각을 해서 그러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 세 사람은 뭉쳐야 한다고 믿으니까요.”
“너는 나를 믿니?”
“당연하죠.”
“왜?”
“그거야. 뭐 말로는 설명 못하지만.”
“나도 그래.”
지아는 손가락을 튕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구지웅 씨가 믿음이 가.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믿고 싶어. 너도 구지웅 씨가 이상하지 않다는 건 알잖아.”
“그건 그렇죠.”
윤한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밀고 가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요?”
“너 뭘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세연의 단호한 태도에 윤한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라디오를 꺼냈다.
“이게 뭐야?”
“건전지만 있으면 들을 수 있는 라디오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잖아.”
“그러게.”
세연은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그렇게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누군가가 가져갈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공유해야지.”
“누나.”
“어머.”
세연은 윤한의 가방을 뒤지다가 봉투를 꺼냈다. 윤한이 그것을 가지고 가려는 순간 봉투가 찢어지고 바닥에 약들이 떨어졌다.
“이거 아스피린 아니야?”
“그러니까.”
윤한은 무슨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시안 씨? 시인 씨? 아무튼 그 사람이 그렇게 아파하는데. 너는 왜 이 약을 주지 않았던 거야?”
“저도 살아야죠.”
“권윤한.”
“누나는 숨기는 거 없어요?”
“뭐?”
“누나는 뭐 갖고 있는 거 없냐고요?”
“없어.”
“정말 그래요?”
“그래.”
지아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너 나를 못 믿니?”
“못 믿어요.”
윤한은 단호한 눈으로 지아를 바라봤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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