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몰랐어도 좋았을 걸
“왔어?”
반기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준재를 반기고 만 지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런 지우의 행동에 준재는 멍해졌다. 자시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너무 미안했다.
“사장님.”
“일단 일 하자고.”
지우는 손뼉을 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준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
“확실히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인 거 같기는 한데 이전처럼 확실하게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네.”
“안정적인 거 같군요.”
“그래요?”
장부를 보며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확실히 일정 수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되니까 원래 백반을 드시던 분들이 오지 못해서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분 하나하나 다 신경을 쓸 수는 없는 거지. 그래도 이제는 이전보다 나은 상황인 거니까.”
“그런가?”
준재는 커피를 타서 가져오며 태식을 바라봤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지우는 준재에게서 커피를 받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아니요.”
“저기.”
지우가 입을 열자 태식은 곧바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원종도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아차린 듯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됐어?”
“그게.”
준재는 한숨을 한 번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얘기 좀 하실래요?”
“어?”
준재의 말에 지우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태식을 보고 눈짓을 하고 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종을 쳐다봤다.
“가시죠.”
“어디를?”
“얼른요.”
“뭐.”
원종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고 지우를 향해 웃어보이고 식당을 나섰다. 태식과 원종이 나가자 지우개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똑똑한 지우개.”
사람들이 강아지를 싫어할 수도 있어서 낮에는 식당에 들어오지 않는 지우개는 늘 저녁이면 식당에 들어왔다.
“무슨 말?”
“그게.”
준재가 어떻게 말의 시작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지우개가 지우의 허벅지에 양발을 올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지우는 가만히 지우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싫대?”
“네?”
“나를 보는 게?”
“아니.”
지우가 너무나도 솔직하게 묻자 준재는 침을 삼켰다.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
“꼬맹이가 혼자서 감당을 하게 하겠다?”
“내 뜻이 아닙니다.”
태식의 말에 원종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쪽도 되게 이상한 거 알죠?”
“뭐가 말입니까?”
“갑자기 나타난 거니까.”
원종의 경계가 가득한 말투에 태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식을 바라보던 원종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런 겁니까?”
“만일 그런 게 있더라도 그건 그쪽하고 지우 사이의 문제 아닙니까? 내가 뭔가를 할 건 아니죠.”
“그렇죠.”
“다만 부탁이 있어요.”
원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열었다.
“지우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마요.”
“그쪽이 뭡니까?”
“좋은 친구.”
“그게 전부입니까?”
“네.”
원종은 잠시도 망실이지 않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좋은 친구라면 자신은 그것을 해줄 거였다. 지우가 필요한 것. 그저 그 정도를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쪽도 제발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건지. 그 선을 제대로 챙겨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는 거죠.”
“그렇겠죠.”
태식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뭘 원하는 것인지 뭘 해야 하는 것인지 너무 어려웠다.
“지우 씨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견딜까요?”
“아니요.”
원종은 여전히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어색하게 웃고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견딜 이유는 없는 거죠. 그쪽이 사라지고. 저 꼬맹이가 사라져도. 그래도 나는 남을 거니까.”
“그쪽이 먼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겁니까?”
“설마.”
원종은 상처를 받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친구니까요.”
“친구.”
그 말이 묘하게 입에서 거슬렸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제 장사가 너무 잘 되네요.”
원종은 쪼그려 앉으면서 낮게 내뱉었다.
“그쪽이 원하는 만큼 식당이 잘 되는 거. 이제 된 거 아닙니까? 이제 지우에게서 이 식당을 가져갈 거 아닙니까?”
“그래야죠.”
원종은 물끄러미 태식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뭔가 묘하게 불편해서 태식은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이 식당 지우에게 전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져갈 겁니까?”
“이 식당이 존재하는 한 장지우 씨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 그쪽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원종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식당은 지우에게 어떤 짐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벗어나고 싶지만 달아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더 잘 해야 하는 거죠. 나는 친구니까. 지우에게 힘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죠.”
“그걸 하기 싫어하는 거 같습니까?”
“들켰습니까?”
원종은 머리를 긁적이며 숨을 한 번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걸로 정한 겁니다.”
태식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원종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결정한 거였다.
“지우를 위해서요.”
“장지우 씨는 좋은 친구를 뒀군요.”
“당연하죠.”
원종은 브이 자를 그리면서 씩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태식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뭡니까? 유치하게.”
“유치했나요?”
“네.”
“그랬구나.”
원종은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그저 지우가 행복하기 바라요.”
===============
“그러니까.”
“그런 거구나.”
머리가 복잡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 데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궁금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다. 뭐 대충 그런 거 아니야?”
“네.”
준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이미 다 예상을 했던 거였는데. 그렇게 예상한 것들이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내가 밉다.”
“사장님.”
“됐어.”
준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지우는 일부러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의 잘못이 아니었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도 알지 못했을 거야. 이 정도를 가지고 뭐 화를 내. 그냥 별 거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지우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지우는 눈물을 훔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왜 이러지?”
“사장님.”
“괜찮아.”
준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자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위로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야.”
“사장님.”
“괜찮대도.”
지우는 애써 웃어보였다. 하지만 지우가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기만 했다.
“도대체 왜 이러지?”
지우는 아랫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숙였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그런 지우의 곁에 앉아서 지우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가져왔다. 지우는 준재의 어깨에 그대로 기대서 울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를 보기는 해야 하는 거잖아. 내가 자기 딸이면. 내가 딸이니까. 적어도 그래야 하는 거죠.”
“미안해요.”
“아니.”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준재의 잘못이 아니었다. 준재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잘못 산 걸까?”
“아니요. 사장님은 너무 잘 살았어요.”
“거짓말.”
지우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어서 피가 나오자 준재는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었다.
“예쁘다.”
“너 뭐해?”
“우리 사장님 예뻐.”
“미쳤어.”
지우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는데 웃어버렸다.
“웃었다.”
“너 뭐야?”
“사장님이 웃었네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웃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준재는 그런 지우를 품에 꼭 안았다.
“미안해요.”
“네가 왜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거야. 너는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안 거야.”
“내가 더 잘 했어야 했어요. 내가 사장님에게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준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아니.”
지우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렇게 준재가 명확하게 말을 해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망설이고 또 혼자만의 상상을 펼쳤을 거였다.
“네 덕에 그래도 정리를 할 수 있었어.”
“정말 괜찮은 거죠?”
“응.”
준재는 몸을 떨어뜨려서 지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우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요.”
“어?”
순간 지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 소설 창고 > 지우개 식당[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6장. 갈림길 1] (0) | 2017.03.03 |
---|---|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5장. 갑작스러운 고백] (0) | 2017.03.01 |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3장. 대면] (0) | 2017.02.24 |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2장. 어색한 두 사람] (0) | 2017.02.22 |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1장. 선전포고] (0) | 2017.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