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장. 달빛 아래 나란히 1
“왜 그러고 있는 겁니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저런 생각.”
지아의 말을 따라하며 윤태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 밤이죠.”
“이윤태 씨는 이 시간에 밖에 나와서 뭐 하는 건데요?”
“강지아 기자님이랑 같습니다.”
“네? 뭐가 같아요?”
“나도 고민이 많거든요.”
윤태는 혀를 살짝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저로 인해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그런 걸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준이 형이 상처를 받아서요.”
“아. 서 매니저.”
윤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주 약간은 감이 잡히는 그녀였다. 아마도 자신에게도 어떤 정보를 공유하기를 바랐을 거였다.
“그냥 말해주지 그래요.”
“아니요.”
“왜요?”
“그건 배신이잖아요.”
“배신.”
지아는 이 말을 따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잔인하게까지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같이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쪽도 같이 힘을 합치는 게 그다지 나쁜 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렇죠.”
윤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강 기자님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뭐가요?”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 건가요?”
“뭐라고요?”
지아가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자 윤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강 기자님이 나를 밀어내는 이유가 내가 제대로 된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거든요.”
“그게 무슨?”
“왜요?”
“아니요.”
지아는 윤태를 무시하고 먼저 해변으로 걸었다. 윤태는 그런 지아를 잠시 보다가 빠르게 다가갔다.
“왜 이러는 건데요?”
“이윤태 씨야 말로 왜 이러는 건데요?”
“강 기자님이 좋으니까요.”
“내가 좋아요?”
“네.”
윤태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돼요.”
“왜 말이 안 됩니까?”
“도대체 이윤태 씨가 왜 나를 좋아하는 건데요?”
“네?”
“이유가 없잖아요.”
“이유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당황스러웠다. 지아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해변으로 걸어갈 따름이었다.
“얘기 좀 하자고요.”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할 말이 있다고요. 알아요?”
윤태는 씩 웃으면서 지아를 향해서 눈을 찡긋해보였다.
“기막혀.”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해변으로 향했다. 그리고 낮에 자신이 말린 과일을 들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윤태가 막아섰다.
“뭐 하는 거예요? 비켜요.”
“얘기 좀 나누자고요.”
“할 말이 없다고요.”
“왜 자꾸 피해요?”
“뭐가요?”
“지금. 자꾸 피하잖아요.”
윤태가 검지로 두 사람의 사이를 가리키자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윤태 씨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이윤태 씨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윤태 씨에게 미안하거든요. 내가 그런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으면 이윤태 씨가 이런 곳에 있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빌미를 제공한 걸요.”
“뭐라고요?”
“사실이잖아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윤태에 지아는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윤태는 곧바로 해맑게 웃었다.
“웃었다.”
“웃은 거 아니거든요. 어이가 없어서 웃은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웃건. 어이가 있어서 웃건. 아무튼 웃은 건 사실이잖아요. 강 기자님 우리말 잘 못하시나 봐요.”
윤태의 말에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기자님을 보고 싶다고요.”
“뭐라고요?”
“강 기자님은 아니에요?”
이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데요?”
“돌아갈 지도 모르니까.”
“뭐라고요?”
“이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윤태의 말에 지아는 침을 삼켰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윤태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미리 얘기를 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강 기자님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윤태 씨를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는 사는 곳이 다르잖아요.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요. 이윤태 씨가 사는 세상이 나의 세상과 같을 거 같아요?”
“뭐가 다른 건데요?”
“달라요.”
지아는 힘을 주어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렇게 복잡한 문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이건 절대적으로 내 취향하고 맞지 않다고요.”
“나랑 키스할 때 좋았죠?”
“뭐라고요?”
“나랑 키스할 때 좋았잖아요.”
“아니요.”
지아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대답했다.
“그런 일 없어요.”
“에이.”
윤태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쭉 내밀었다.
“나는 되게 좋았는데.”
“그럼 이윤태 씨 혼자만 좋았나 보죠. 그런 희롱성 발언만 할 거라면 그냥 비켜주는 게 어때요? 그게 더 나을 거 같은데?”
“그런가요?”
“네.”
지아가 윤태를 비켜서 텐트로 돌아가려고 하자 윤태는 다시 그런 지아의 앞을 막아서며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해요.”
“이윤태 씨.”
“좋아합니다.”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윤태가 이런 식의 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당황스럽고 난처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거죠.”
“왜요?”
“네? 그러니까.”
윤태가 자신에게 고백을 하면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다르고.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가 많았다.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윤태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것도 희롱이에요.”
“고백입니다.”
“아니요.”
지아는 검지를 치켜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윤태 씨. 싫다는 여자 앞을 이렇게 막아서는 거. 이거 고백 아니고 희롱이거든요. 그러니까 비켜요.”
“그럼 희롱 좀 할게요.”
“뭐요?”
지아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지아와 다르게 윤태는 그저 덤덤한 모양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여기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잖아요.”
“소리 지를 거예요.”
“지를 거라면 진작 질렀겠죠.”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윤태의 말이 옳았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좋아하니까요.”
“이윤태 씨.”
“이렇게 진심으로 고백을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그냥 모르는 척 대충 뭉개도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게 무슨?”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됐어요.”
“좋아해요.”
“그만 하라고요.”
“좋아한다고요.”
윤태는 지아의 눈을 보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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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모르겠어.”
재율의 물음에 지웅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형.”
“됐어.”
재율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너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이유는 없어. 그건 너무나도 위험한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거짓말을 한다고 이런저런 말을 듣잖아요. 저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요?”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요.”
“모든 걸 다 사실로 말할 이유는 없어.”
지웅의 말에 재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말이 안 되잖아요.”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실을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 그거 이율배반적이잖아요.”
“그렇지.”
지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의 정체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안다고 해서 그게 어떤 해결이 되지는 않을 거야.”
“해결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솔직하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요.”
“아니.”
“형.”
“그건 솔직한 게 아니야. 그냥 너 하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그거 이기적이야.”
“이기적이라고요?”
재율은 잠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요?”
“그래.”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이곳은 섬이야. 그리고 한정된 공간이야. 이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이유는 없어.”
재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헝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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