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장. 아버지 1
“도대체 그 말이 뭐냐고.”
지우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준재의 고백을 듣고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장지우. 너 양심이 없는 거 아니니? 그렇게 어린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냥 고맙다고나 하고.”
자신이 생각을 해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준재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고백을 해준 사람이었다.
“고백이라.”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 건지 아무런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꼬맹이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뭘요?”
“내가 양보를 한 거니까.”
“양보는 무슨.”
부엌에서 기다리던 태식의 말에 준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저씨가 겁을 내고 물러난 거잖아요. 그런 거면서 무슨 나를 위해서 그런 것처럼 말을 하고 그래요?”
“어허. 내가 무슨 겁을 내고 도망을 갔다고 그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그거 되게 오해를 할 말이다. 너.”
“그럼 아니에요?”
“아니야.”
태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준재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어?”
“고맙다고요.”
“뭐가?”
태식은 미간을 모으며 경계를 했다.
“뭔가 있었어?”
“있었죠.”
“설마.”
“그런 건 아니에요.”
태식이 음흉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준재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태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이제 갓 미성년자를 벗어난 너 같은 어린 아이를 가지고 뭔가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겠니?”
“아저씨가 뭘 모르시네.”
“뭘 몰라?”
“요즘 연하남이 대세거든요.”
“그건. 잘 나가는 연하남들 이야기지. 너처럼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꼬맹이는 아니거든요.”
태식의 농담에 준재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와 이렇게 투닥거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형진이는요.”
“아까 와서 자더라. 술이 떡이 되었더라고.”
“자유를 즐기네요.”
“너도 좀 즐겨.”
“아니요.”
준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런 것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자신은 이미 지우에게 모든 것을 저당 잡힌 후였다.
“사장님의 어머니가 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신 그 순간부터. 저는 그 모든 은혜를 갚으려고 한 거니까요.”
“너 설마 그래서 장지우 씨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당연하죠.”
준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에요.”
“그럼 다행이고.”
“그럼 들어갈게요.”
“그러던지.”
준재는 한 번 웃어 보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저 녀석 이상하단 말이야.”
“저 잠시 나갔다가 올게요.”
“야.”
준재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나가려고 하자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지금 손님 많은 거 안 보여?”
“금방 올게요.”
“다녀와.”
태식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에이. 왜 그래요? 다녀와.”
준재는 고개를 꾸벅하고 식당을 나갔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사장님. 자꾸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두 사람이 지금 미치는 거 안 보여요? 손님 너무 많아요.”
“감사한 일이죠.”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꽤나 달라진 모양새였다.
“이제 식당 주인 같네.”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네.”
태식은 다시 바쁘게 몸을 놀리기 시작했다.
“서명을 했군.”
“네.”
지우의 아버지는 물끄러미 계약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상하게 보일 테지.”
“아닙니다.”
“그렇게 봐도 되네.”
지우의 아버지는 덤덤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약서를 안주머니에 넣고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나타날 자격이 없어.”
“하지만 이미 나타나지 않으셨습니까?”
“자네의 실수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지우의 아버지는 단호했다.
“자네가 그 아이에게 나의 존재에 대해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네. 자네가 나에 대해서 말을 하는 그 순간부터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게 된 거야. 내가 없었으면 되는 아이가 그리 된 걸세.”
“아니요.”
준재도 물러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단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혼자가 되신 나이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에요. 아직 어렸다고요. 그때는 누가 곁에 필요해요.”
“자네가 무얼 아나?”
“그러는 사장님은 무얼 아십니까?”
준재의 되바라진 질문에 지우의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편한 날에 내가 식당에 찾아가지.”
“불쑥요?”
“그래. 불쑥.”
살짝 언짢은 목소리.
“이 계약서에 쓰여있네.”
“그것도 되게 우스운 것 아십니까?”
“뭐라고?”
“사장님이 그 계약서를 받고 얼마나 아파하셨는지 아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식당 일이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준재는 먼저 고개를 숙이고 차에서 내렸다. 이 정도를 가지고 속이 후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차는 이윽고 멀어졌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지?”
“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준재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준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네가 식당을 나갈 이유가 있어? 네가 식당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데 말이야.”
“바로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준재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거였는데.
“내가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더 미안한 거지.”
“왜요?”
“당연한 거 아니야?”
“하나도 안 당연해요.”
준재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뭐래?”
“일단 계약서를 드렸어요.”
“그래?”
괜찮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괜찮아질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재에게 내색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고마워.”
“아니요.”
준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걱정을 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오늘은 늦었네?”
“그러게.”
지우가 건네는 차를 받으며 원종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많다. 이제 나도 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이것저것 일을 막 시키고 그러더라고.”
“좋은 거지.”
“그럼.”
원종은 손가락을 튕기며 동의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이제 오지 마.”
“어?”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장지우.”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 이상 원종에게 부담스럽게 뭔가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도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거잖아. 그런데 언제까지 나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고 그럴래?”
“그러지 마.”
“최원종.”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그리고 나도 친구라고는 이제 너 하나 겨우 남았다. 너무 그러지 마라.”
원종의 말에 지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친구는 원종 딱 한 사람이었다.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하게 생각을 하지 마. 전에 너희 어머니가 나한테 공짜 밥을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알아?”
“그래?”
“그럼. 네 친구라고. 그런데 내가 지금 너한테 이 정도도 못하냐? 가게 일을 돕는 것도 아니고 저녁에 잠시 들러서 이야기나 하는 건데. 그리고 나도 이렇게 힘들단 이야기 누군가에게 해야지. 안 그러면 못 견뎌.”
지우는 자신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해주는 원종이 너무 고마웠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아니야. 그래도 네 얼굴을 보니까 힘이 난다.”
원종은 기지개를 켜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지우개가 가게로 들어와서 원종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지우개도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러게. 지우개도 너를 좋아한다.”
지우는 지우개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 나 아버지한테 계약서 드렸어.”
“잘 했어.”
원종은 미소를 지은 채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너무 고마웠다.
“뭐 먹을래?”
“아니. 늦었어. 나 이제 갈게.”
“그냥 이렇게 가?”
“차 마셨잖아.”
원종은 빈 잔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내일 또 올게.”
“너무 힘들면 오지 말고.”
원종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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