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자존감 1
“이런 걸 쓰고도 만난다고요?”
“네. 그래도 만나고 싶어요. 한 번도 엄마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지우는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장지우 씨.”
“아저씨 그만. 이거 사장님 일이에요.”
준재의 말에 태식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자신이 관여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태식의 사과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나쁜 말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정말로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그런 거였으니까요.”
“이해를 해주니 고맙습니다.”
“당연하죠.”
지우는 혀를 살짝 내밀고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분이야?”
“그냥 차가운 분?”
“그래?”
준재의 대답에 지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갑다. 그냥 이런 말을 듣고서는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왜 여태 나타나지 않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걸까? 정말로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할 때는 다른 곳에 있고.”
“만나서 물어야죠.”
“그렇죠.”
태식의 지적에 지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야 하는 거였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도 열심히 장사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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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장사가 끝이 났다.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장사가 끝이 날 줄이야.
“그런데 사장님은 재료를 더 준비 안 하세요? 그러면 어차피 저랑 아저씨랑 있는데 손님도 늘어나잖아요.”
“아니. 미쳤어? 안 그래도 지금 이거 준비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야. 우리 한 번도 못 쉬었어.”
“맞아.”
태식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 네가 돈을 너무 좋아해서 그냥 손님이 무조건 많으면 땡큐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말이야. 식당이라는 게 그렇게 손님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더 나은 음식을 제공해야지.”
“누가 뭐 대충 팔자고 했어요? 그냥 지금 시간이 너무 이르니까. 더 오래 장사하면 좋다고 한 거죠.”
“태권도.”
지우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배우기로 했잖아.”
“그거 진심이에요?”
“그럼.”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배워야지. 그래야 그런 거지 같은 놈들이 안 나타나지. 그리고 우리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지금보다 손님 더 늘어나면 안 그래도 파김치 같은 상태인데 이거 감당이나 할 수 있겠어?”
“그럼. 그럼.”
태식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준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지우를 향해서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영화?”
“사장님 영화 보러 안 가신지 오래잖아요.”
“하지만.”
준재의 말에 지우는 멍해졌다. 그런 평범한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시간이 확실히 오래 되기는 했다.
“그래도 막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지우개를 맡아줄 사람도 없고. 나 혼자서는 영화를 못 보고.”
“그럼 저랑 보면 되죠.”
태식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준재가 먼저 손을 들어서 해맑게 웃었다.
“내가 먼저 사장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 거니까.”
“어허. 그건 반칙이지.”
“무슨 반칙이요?”
“나도 장지우 씨 좋아한다니까?”
갑자기 들어오는 태식의 고백에 지우는 얼굴이 붉어졌다. 지우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에? 나 지금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닌데. 나 진짜로 장지우 씨를 좋아해요. 아직 장지우 씨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정식으로 고백을 하는 일은 조금 더 미루기로 한 거지만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맞아요.”
준재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그런 식으로 하는 거 반칙이에요.”
“야. 장유유서 모르냐. 일단 장지우 씨가 우리 두 사람을 다 만나봐야 누가 좋은지 알지. 안 그래?”
“그런가?”
“그만.”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우는 양팔을 벌려서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둘 다 왜 그러는 거예요?”
“뭐가?”
“아니 그러니까.”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둘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벌써 끝났어.”
원종이 식당에 들어오자 준재와 태식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원종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개랑 놀아줄 사람 나타났네.”
“맞네요.”
원종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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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석이라뇨?”
“왜? 내가 내 돈으로 끊을 거라는데.”
“안 돼요.”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커플로 앉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뒤에 사람들 많은 거 안 보여요? 자리 여기로 주세요. 네 그렇게요.”
지우는 자신의 카드와 포인트 카드를 내밀었다. 태식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카드를 내밀려고 하자 지우가 막았다.
“내가 낼 거예요.”
“왜 장지우 씨가요?”
“내가 보고 싶은 걸 골랐으니까.”
“아저씨 때문이에요.”
“꼬맹이 너 때문이야.”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팝콘 먹을래요?”
“내가 살게요.”
“됐어요.”
지우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뒤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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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뭐하니?”
지우개에게 간식을 주며 원종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여간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지우개가 애교를 부리자 원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지우개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래. 너랑도 시간을 보낼 사람이 있어야지. 그래야 지우가 좀 숨을 쉬고 살지. 그래. 친구가 뭐냐. 이 정도는 해야지.”
원종은 하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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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던 지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두 사람이 왜 그러는 건지. 가방에서 틴트를 꺼내려는데 바닥에 떨어져서 칸막이로 들어갔다. 지우는 틴트를 주우러 칸막이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밖이 시끄러웠다.
“아까 그 뚱뚱한 여자 봤어?”
“그러니까. 민폐야.”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렇게 뚱뚱한 여자가 두 남자를 옆에 끼고.”
“그러니까 웃기지도 않아.”
“가관이라니까. 미쳤나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지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게다가 그 구두 뭐니?”
“그러게. 돼지가 무슨 하이힐을.”
지우는 자신의 신발을 쳐다봤다. 힐. 정말 오랜만에 신은 힐이었다. 아니. 대학을 다니다가 만 이후로는 한 번도 신지 못했던 거였다.
“꼴에 예뻐보이고 싶나봐.”
“남자 하나는 어려보이던데.”
“돈이 많나?”
“그런가?”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꼴불견이라니까.”
“그러게요.”
지우가 옆에 나타나자 여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우는 두 사람을 향해서 미소를 지어보이며 거울 속의 자신을 살폈다.
“왜요? 더 말을 하지?”
“뭐, 뭐가요?”
“아니. 그 꼴불견 이야기 궁금해서.”
“왜 남의 이야기를 엿들어요!”
“그러게.”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여자를 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 왜 남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를 해요? 경우가 없고 무식하게 보이게.”
“뭐라고요?”
“이러니까 멍청한 남자들이 여자의 적은 여자다. 뭐 이런 소리나 하지. 그쪽. 그리고 되게 추해. 얼굴. 그거 고쳤는데. 되게 추해. 자기 만족은 못하고 남들에게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거. 그거 되게 웃겨.”
“무, 무슨.”
“그리고 그쪽.”
지우가 자신을 가리키자 다른 여자도 움찔했다.
“거기도 가슴에 있는 거 없는 거 다 모아서 브라 두 개 찬 거 다 티가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요. 웃기지도 않아.”
지우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누가 들을 수 있는 장소니까 그런 식의 대화 하지 마요. 한 번만 더 그러면 그 얼굴 다 갈아버릴 지도 몰라. 어차피 뭐. 그쪽들은 자기 돈으로 다 갈아버릴 거 같긴 하니까.”
지우는 이 말을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심장이 미친 듯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우리 그냥 갈래요?”
“왜요?”
“아니.”
이런 말을 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대충 넘기려고 하는데 아까 그 여자들이 다시 지우에게 다가왔다.
“너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태식과 준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겁니까?”
“이 거지 같은 게 도대체 누구한테 뭐라는 거야?”
“미친 년 아니야!”
여자들의 목소리가 ᅟᅥᆿ지자 준재가 곧바로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요.”
“너는 뭐니?”
“이 여자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야.”
지우가 준재의 손을 잡아 끌었지만 준재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단호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겁니까?”
“화장실에서 우리에게 악담을 퍼붓고 갔다고. 못 생긴 거면 알아서 잘 해야지. 뭐 하는 거야?”
“그쪽은 남의 뒷담화나 하고 그건 잘 한 거예요?”
“미친 년이. 남의 말이나 엿듣고!”
지우는 숨을 크게 쉬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이 떨렸다. 순간 태식이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태식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게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네.”
“뭐라고?”
“우리 같은 남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옆에 있어서 질투가 났나?”
“무슨.”
여자들은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 그렇게 살지마.”
“그리고 그 몸으로 어디를 다니니!”
지우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당신들은 그 심보를 가지고 세상 살겠습니까?”
“뭐?”
준재의 말에 두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 뭐라고 했니?”
“개념을 밥 말아 먹었나? 얼굴은 무슨 가부키니? 아주 천박하기 짝이 없게.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 외모를 가지고 헛소리를 지껄일 시간이 있으면 열심히 책이나 읽으면서 심신수양이나 하세요. 개념 찾고.”
“뭐, 뭐라는 거야?”
“한 번만 더 이 여자한테 뭐라고 하면 고소할 겁니다.”
태식은 동영상을 찍으며 씩 웃었다.
“웃어요. 그래야 잘 나오지.”
“미, 미친 거 아니야.”
“가자.”
두 사람이 가고 나서 태식과 준재는 다시 지우의 옆에 앉았다.
“괜찮아요?”
“네.”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니까.”
“일단 좀 쉬어요.”
지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우니까 공원 어때요?”
“좋다. 공원.”
“저기.”
하지만 지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준재와 태식은 이미 미소를 지은 채로 그녀를 기다렸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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